brunch

동백이 쿵,

정우영

by 민휴

오늘의 시 한 편 (89).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동백이 쿵,


정우영


쿵쿵 떨어졌다. 한밤중에.

그 진동 어마어마하여 화들짝

깨어나 민박집 마당으로 나간다.


여진은 없다. 붉은 꽃숭어리들이 여기저기 다소곳이 앉아

있을 뿐, 마치 소피보는 것처럼. 미안해요. 일 보세요, 속으

로 민망해하며 눈 돌렸으나, 저 꽃들 이미 여길 벗은 전신들,

무슨 순환이 더 필요하겠나.

쭈글치고 앉아 한분 한분 토닥였다.

사느라 애썼다고, 가서 편안하시라고.

꽃이라고 하여 어찌 고통이 없겠는가.

땅은 썩어가고 햇볕이 불덩어리라면.

나오느니 신음인데 하염없이 목은 탄다면.

환멸을 견디느라 물든 심장들 어루만진다. 붉게 젖은 슬

품이 손바닥 타고 올라 퍼진다. 떨리는 입 들어 하늘에 고하

려다 접는다. 찬찬히 둘러보니 다들 묵언참선 중. 꼿꼿이 말

라가며 심은 발원들 환히 맺히소서. 한걸음 물러나 읍하고

들어오는데 시큰한 향이 방 안까지 따라와 고물거린다.


본래 없던 향기마저 터뜨려 경각 들추는

꽃들, 저 꽃들에게 나는 무엇일까.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꽃이라고 하여 어찌 고통이 없겠는가.


(여리디여린 생김새로 비와 바람, 햇빛 등 많은 고통속에서도 예뻐야 하는 형벌을 수행하고 있는 꽃들의 운명을 어쩌면 좋을까. “쭈글치고 앉아 한분 한분 토닥였다.”라는 시인의 마음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을 뚫고 피어난 꽃들에 유난히 애정이 가는 것은 그런 마음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처럼 고난 속에서 꽃을 피운 꽃들이 어찌 장하지 않겠는가. 나무에서 땅에서 마음에서 세 번 핀다는 동백에 진심으로 찬사를 보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