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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말놀이 동시집

한명순 동시집 『배우가 되고 싶다』(아침마중, 2025)를 읽고

by 민휴


한명순 작가는

인천 출생,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유아교육과 수료, 1990년 《아동문예》 동시 등단, 동시집 『고양이가 뿔났다』 외 7권 출간, 중고등음악교과서에 「옹달샘」이 초등국어 교과서에 「이슬과 풀잎」 「귀뚜라미」 등이 실림. 대교눈높이아동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외 다수 수상했음 – 작가소개에서 발췌



순수한 감성으로 따뜻하고 감동적인 동시를 쓰는 한명순 작가의 이번 동시집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놀이, 재미의 증폭, 할머니, 가족 사랑, 자연의 소중함 등을 다뤘다. 더 짧게 표현하면, “말놀이를 통한 재미와 감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난기 넘치는 아이다운 발상의 동시들이 보여서 작가의 순수한 동심이 잘 전달된다.




아파트 마당

긴 나무 의자,


누가 다녀갔나?

따뜻하다.


나도

누군가를 위해


따스함,

남겨두고 싶다.

― 「빈 의자」 전문 (p29)


타인을 위해 따스한 행동을 하겠다는 마음은 얼마나 선한 이타심인가. 자그마한 행동이 큰 감동을 주는 파장이 느껴진다. 이웃의 따스함은 나도 베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그러한 마음이 이 세상을 살만한 세상으로 만든다는 것을 배운다. 빈 의자를 따듯하게 만드는 일은 햇살의 몫인 줄 알았는데,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 뭐든지 배우면 잘 할 수 있어.

엄마가 늘 하시는 말.


수영 못하던 형이

수영 선수가 된 것처럼


피아노 칠 줄 모르던 동생이

피아노 대회에서 상 받은 것처럼….


나도 배우면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유명한 배우가

될 수 있을까?

― 「배우가 되고 싶다」 전문 (p51)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는 엄마의 교육 철학이 보인다. 형은 부지런히 노력해서 수영 선수가 되었고, 동생은 피아노 대회에서 상도 받았다. 나도 배우면 무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화자는 배워서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한다. 형이랑 동생에게 비교당했을 것 같다. 배우면 잘할 수 있다는 말에서 차라리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장난 같은 간절함이 드러난다.






건널목을 지날 때

조심해!


동생 울리고 나서

미안해!


친구랑 헤어 질 때

좋아해!


엄마 품에 안길 때

포근해!


해, 해, 해,

들어도 또 듣고픈


밝고 따뜻한

해의 말.

― 「해의 말」 전문 (p57)


사랑해! 다정해! 친절해! 축하해! 응원해! 따뜻한 “해의 말” 편 마디, 나도 찾고 싶어졌다. 늘상 쓰는 말인데도 이렇게 멋진 동시로 써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작가만큼 따뜻하지 못한 탓일까? 멋진 심성을 가진 작가가 부럽다. 따뜻해! 따뜻해! 덧붙이고 싶어진다.





― 지각하겠다.

어서 일어나렴.


나를 흔들어

깨우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는


걷어찬 이불을

덮어 주시네.

― 「할머니 손」 전문 (p66)


우리네 할머니의 다정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자는 아이를 깨워야 일상이 시작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재우고 싶은 마음.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잠을 깨우는 것을 미안해하는 자상하고 정 깊은 할머니의 따스운 마음이 와락, 느껴진다. 엄마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엄마는 당차게 이불을 걷었을 수도 있었을까? 할머니의 마음은 엄마와는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아파 누우면

할머니도 내 옆에 누우시지.


― 얼마나 아프냐?

― 뭐가 먹고 싶냐?


이마를 만져보고

배를 쓸어주고


나보다 더 앓으시지.

끙끙 더 앓으시지.

― 「내가 아프면」 전문 (p74)


아이가 아프면 대신 아파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마음을 할머니의 행동을 보면 너무도 잘 알 것 같다. 아이가 아파할 때 어쩌지 못해서 더 끙끙 앓게 되는 할머니의 사랑이 너무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 배가 아프면 할머니가 배를 쓸어 주셨던 생각이 난다. 딱히, 약을 먹은 것도 아니었지만 신기하게도 배앓이가 나아지곤 했던 기억. 할머니의 큰 사랑이 아픈 배를 낫게 했다.「할머니 손」과 「내가 아프면」에서처럼 할머니께 따뜻한 사랑을 받는 아이는 얼마나 행복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조마조마

아슬아슬


잠자리 한 마리

꽁무니에

가을 햇살 달고

장대 끄트머리에 내려앉는다


조용조용

사뿐사뿐


발꿈치 들고

몰래 다가가면

햇살 튕기며 멀어져 가는

잠자리 은빛 날개


더 높게

더 맑게

다가오는

가을 하늘.

― 「가을 하늘」 전문 (p114)


한명순 작가 특유의 짙은 감성이 느껴진다. 꽁무니가 빨간 잠자리를 관찰하며 가을로 풍덩 빠져든다. “꽁무니에 가을 햇살 달고”, “햇살 튕기며 멀어져 가는” 시적 표현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진다. 잠자리 한 마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가을을 한껏 잡아당기는 장면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시가 이미지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동시다. 아름다운 이 가을, 정말 맞춤한 서정이다.





『배우가 되고 싶다』를 읽으며 웃다가 감동했고, 따뜻한 정서와 감성에 행복한 시간이었다. 진즉 동시집을 보내 주셨는데, 바빠서 읽기를 미뤄 두었었다. 이 책에, 가을에 관한 글과 삽화가 많아서 가을이 참 따뜻한 계절이라는 것을 알았다. 따뜻한 심성을 가지신 한명순 작가님께서도 행복한 가을날을 보내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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