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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의 상처와 만나다

천선란 소설 [노을 건너기](창비, 2024)를 읽고

by 민휴

천선란 작가는 우주와 외계인에 관심이 많아 SF를 좋아합니다.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소설을 쓰고 있어요.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 [노랜드] 장편소설 [천개의 파랑] [나인] 연작소설 [이끼숲] 등이 있습니다. - 책소개에서



가장 외로웠던 나를 만나러 간다.


“한 번은 꼭 끌어안아 주어야 해.”


나의 뿌리이자 상처, 그것을 끝끝내 사랑하기 위하여


흔들리는 세계 속에서도 스러지지 않는 사랑과 연대를 그리며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은 천선란의 신작 소설 『노을 건너기』가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 서른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스스로의 무의식으로 들어가 과거의 ‘나’를 만나는 우주 비행사 ‘공효’의 이야기다.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의 나를 만나면 어떤 말을 해 줘야 할까’라는 고민에 대한 따스한 답이 읽는 이의 마음 곁에 다정히 머무른다. 또한 투명하게 빛나는 일러스트레이터 리툰의 그림은 노을이 펼쳐진 환상 세계로 독자를 이끌며 아름다움을 더한다. 자신의 과거를 안아 주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성장의 통증을 오롯이 감당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커다란 감동이 될 작품이다. - 교보문고, YES24 소개





우주 비행사 공효는 자신의 무의식 세계로 들어가 AI가 구현해 낸 어린 '나'와 동행하는 자아 안정 훈련을 시작한다. 오래전 올려다보던 붉은 노을이 펼쳐진 배경 속, 어린 공효를 만난 어른 공효는 잊고 있던 상처들을 떠올리는데......, 공효는 광막한 우주에서 자신을 괴롭힐 과거와 화해하고 이 노을을 건널 수 일을까? - 책 뒷면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과거의 어린 나와 만난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내면의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달래 주는 일은 지금을 살고 있는 나를 치유하는 일일 테니까. 오래된 기억은 왜곡되기도 하는 것이라서 상처의 원인마저 불확실한 경우도 있다.


우주비행사, AI 등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같지만, 먼 미래는 아닐 것이다. 세계적인 AI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더 가까운 미래가 아닐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공효는 캡슐 알약 하나를 먹고 의료용 침대 위에 누웠다. 공효는 느끼지 못할 테지만, 몸에 들어간 캡슐이 녹으며 그 안에 있던 나노봇이 뇌로 이동할 것이다. 그렇게 꿈을 꾸듯 공효는 AI가 구현해 낸 어린 자신을 맞닥뜨릴 예정이었다. 정말 그게 가능할까? 공효는 의심을 가득 품고 눈을 감았다. (p7)




어린 공효의 상처와 공포로 대변되는 거미를 함께 물리치는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은 매달리기보다 포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란, 기록이나 시험 통과가 아니라 엄마의 기일이 오면 찾아오는 무기력함. 예고도 없이 밀어닥치는 자기혐오, 앞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 따위였다. (p47)



모든 선택의 기준에 어린 공효가 있었다. 깊이 잠수하며 숨을 힘껏 참은 것도, 무중력 공간에서 기뻤던 것도, 출구 없는 우주로 나아가고 싶었던 것도, 좁은 복도에 서서 하늘을 노려보던 어린 공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p64)



어린 공효가 어른 공효를 두 팔로 안아 주면서 과거와 화해하고, 현재의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서 끝을 맺는다.


"모두가 각자 품고 있는 그 노을을, 무사히 건너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천선란 작가의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페이지를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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