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지 동시조집 『날씨는 그날그날 대지의 마음씨야』(도토리숲, 2025)
유이지 작가는
위례 산자락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아동문학을 전공, 대학원 재학 중 2017년 《월간문학》에 동시 〈학교 앞 소라문구점〉이, 《아동문학평론》과 《한국동시조》에 동시조 〈반지하 집〉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2022년 어린이문화대상 신인상 받음. 동시조집 《나, 깍두기야!》와 동시집 《나를 키우는 씨씨》, 그림책 《깍두기》가 있다.
유이지 작가의 동시조집 『날씨는 그날그날 대지의 마음씨야』는 정겨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동시대적 공감을 회상하게 한다. 아울러, 현재의 어린이들에게도 생명의 소중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작가가 구축해 내는 동시조의 세계를 몇 편의 동시조를 통해 배워보자.
꽃 허리 휘어져도
아가야,
미안하다.
화분에 물 줄 때도
미안하다,
목말랐지.
어쩌다 개미를 밟아도
아이고,
미안하다.
― 「미안 할머니는」 전문 (p17)
생명의 소중함은 이리도 숭고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아서 ‘미안 할머니’가 된 할머니의 삶 자체가 정말 아름답다. 그런 따뜻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그런 할머니를 가진 화자의 마음에서 진한 자긍심이 느껴진다. 아무리 작은 것도 살아있는 것은 존중받아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쁜 일
슬픈 일에
두고두고
보내라고
할머니 한자 이름
적어 두고 가셨어요.
두둑한
할아버지 마음까지
흰봉투에 담았어요.
― 「할아버지 없더라도」 전문 (p27)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간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할머니가 걱정되었다. 꼭 찾아가야 할 애경사에 도리를 못 할까 봐 봉투에 할머니의 한자 이름과 돈까지 넣어서 미리 준비를 해주셨다니 얼마나 뭉클한가.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참 많이 그리워하실 것 같다. 그 봉투를 사용할 때마다 눈물이 났을 것 같다. 이토록 자상한 할아버지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산에서 살았지요.
길가로 나왔지요.
살려고 나왔지요.
사람들과 살려고요.
밟아서
퍼뜨리는 게
날 살리는 거예요.
― 「질경이」 전문 (p35)
질경이가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밟혀서 번식하는 방법으로 살아났다. 이렇게 동시로 질경이가 말하는 자기소개다. 밟히고자 낮은 곳을 선택해서 모질게 살아남은 질경이가 지혜롭다. ‘사람들과 살려고’ 산에서 길가로 나온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를 선택한 식물이라니 사랑스럽다.
저렇게도
파랗게
맑고도 맑은 것은
큰 나무가
하늘을
비질했기 때문이지.
구름을
나뭇가지로
쓸어 냈기 때문이지.
― 「가을 하늘이」 전문 (p47)
큰 나무가 바람에 흔들거리며 열심히 하늘을 쓰는 모습. 나도 보았다. 큰 나무들이 부지런히 하늘을 쓸었기 때문에 우리가 티 없이 맑은 가을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왜 진즉 하지 못했을까? 마음에 티끌 하나 없는 유이지 작가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젠 맑고 푸른 하늘을 볼 때, 큰 나무들이 한 일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눈만 뜨면 걸어 나와
나무 대문
열어 두지.
아무리 아픈 날도
대문부터
열어 두지.
사람들 걱정할까 봐
활짝
열어 두지.
― 「빨간 대문집 할머니는」 전문 (p58)
살아가면서 나 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할머니는 한평생 그랬을 거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말이다. ‘아무리 아픈 날도 일어나 대문부터 열어 두’는 마음이 감사하다. 대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는 것은 누구라도 들어오라는 신호이고, 집주인이 건강하다는 표현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정겨운 시골 문화가 떠오른다.
흰쌀밥에
감자미역국
무 나물에
물 한 그릇
멀리 간 딸
생일 아침
부뚜막에
놓아 두지.
두 손을
앞으로 모아
딸 위해
기도하지.
― 「부뚜막 생일잔치」 전문 (p65)
생일날 가족이 함께 있는 경우라면 좋겠지만, 부뚜막이 있던 시절에는 딸이 타지에서 공부하거나, 돈벌이를 위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그런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일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인 현대에도 꼭 필요한 정서라는 생각이 든다. 멀리 있는 딸을 위해 부뚜막에 생일상을 차리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이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떨어져 살아도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은 정말 특별하고 따뜻하고 소중한 정서다.
그것을 주는 이를
가난하게 하지 않고도
그것을 받는 이를
부자로 만듭니다.
잠깐만 짓는 것 같지만
그 기억은
영원합니다.
― 「미소는」 전문 (p89)
미소는 나에게 손해를 주기는커녕, 내가 주는 것인데도 나는 물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해맑은 아이의 미소는 엄마를 행복하게 할 것이고, 엄마의 인자한 미소는 아이를 평생 사랑받았던 기억으로 행복을 장착하고 살아갈 것이다. 마음에 이미 미소를 품고 자라날 것이다. 살면서 순간순간 미소를 건져 올려서 자기와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동시조의 운율이 저절로 정겨운 옛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동시조가 그리움을 빚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의 경험을 통해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요즘의 어린이들에게 파급되는 효과는 정답게 어울려 살아가는 고유의 민족정서라고 생각된다.
유이지 작가는 「시인의 말」에서
아동문학이란 “잊힌 것들을 다시 불러와 나를 설명하는, 내가 빚어낸 것들과 내가 거쳐온 아이 적의 삶에 묻어 있는 상처를 보듬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4년 1월에 발행한 책 [나를 키우는 씨씨]에서도 온 마을과 자연이 자신을 키웠다는 것을 보여 주었듯이 이번 책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등 온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연 속에서 자라 온 따뜻한 정서를 만날 수 있었다.
가난했지만, 정을 나눌 줄 알았던 세대. 잔잔하고 맑은 생태 동시를 만난 것 같다. 어울려 살고, 나누며 살아가는 옛 정서가 그리워지는 시대인데, 유이지 작가의 새로운 동시조집에는 그런 따스한 정서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마운 정서를 잊지 않도록 책으로 펴낸 유이지 작가님께 축하와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