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통(育通)」 — 육아에서 얻은 통찰
명절의 모양이 바뀌다
이번 추석부터 우리 집은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명절의 일정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추석 전날과 당일에는 처가댁에 먼저 들어가 차례를 지내고,
그 이후에는 캠핑장에 가기로 했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이 변화를 낯설게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습니다.
명절의 형식보다, 그 안에서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에 마음이 갔습니다.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명절은 그저 좋았습니다.
맛있는 걸 많이 먹을 수 있었고, 푹 쉴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다릅니다.
먹는 즐거움은 줄었고, 명절은 오히려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그 사이, ‘명절’의 의미가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번 명절에 문득 떠오른 건 영화 코코였습니다.
사람은 죽어도, 기억에서 사라지면 비로소 완전히 사라진다는 이야기.
생각해보면 존재란 결국 ‘기억을 통해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DNA가 생물학의 계보를 잇는다면,
기억은 삶의 의미를 잇는 또 하나의 혈통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증조할머니의 납골당을 찾았을 때, 저는 빈손으로 갔습니다.
허례허식보다 중요한 건, 그분을 기억하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들들은 차 안에서 잠들었고, 그 시간에 저는 아내에게 증조할머니와의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마치 기억을 손에서 손으로 건네주는 일처럼, 그 순간의 대화가 조용히 이어졌습니다.
이제 명절은 형식을 지키는 날이 아니라 기억을 이어주는 날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도 결국 그것 아닐까요.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는지가 아니라 어떤 기억을 남기고, 어떤 이야기를 전할 것인가.
사람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그의 기억이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있다면 그 존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올해의 추석은 그래서 잔잔하게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형식은 비워냈지만, 그 자리에 기억이라는 온기가 남았습니다.
당신은 어떤 기억으로 누군가의 존재를 이어주고 있나요?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의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