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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끝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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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덕 Mar 04. 2024

소리 내 울지도 못하는 나는

이어폰 뭉치가 서글펐다


꼬인 이어폰 줄을 풀지 못해서,

나는 길 한가운데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이어폰 줄이 꼬여서 풀리지 않는다는 게 서러웠다. 지가 뭐라고 묶이고 꼬여서는 나의 작은 행복의 순간을 망치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울며 서있다가 울며 걷다가 결국 울며 주저앉고 말았다. 그 모습을 누가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떨치지 못해 소리를 눌러가며 울었다. 눌려 나오는 울음소리는 애처롭고 청승맞아서 주변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손에 잘 들고 있다가 잠시 주머니에 넣은 이어폰이 꼬여 도저히 풀리지를 않았으니까.

똑바로 하라는 누군가의 말도 실망이라던 누군가의 눈빛도 심지어는 실망했다며 똑바로 살라고 악을 쓰는 내가 믿었던 사람을 마주한 순간에도 이렇게까지 서러움에 사무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사실 서러움은 문득 스친 생각 하나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이들에게 여전히 닿고자 하는 일은 나의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그 짧은 찰나의 자괴감이 훑고 지나갔을 때, 웃으며 털어내려던 그 순간에 차라리 눈물이 고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들은 이미 나를 빼고 자신들의 삶을 다져 견고하고 수월하게 이어가고 있을 텐데. 결국 나의 노력은, 사람을 노력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에 가까울 즈음 그제야 서럽기 시작한 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반가움, 그리움, 증오, 궁금함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혹시 기억하고 있나 하며 조마조마해하는 순간들이 비참했다. 그때 그러지 말걸 하는 그런 생각글이 구차했다. 이제라도 잡으면 잡힐까 내가 잘못했다고 하면 그래 네가 잘못했다며 슬쩍 돌이켜줄까 찰나라도 기대하는 내가 싫었다.

내가 싫어졌다. 상처받고 싶지 않다. 상처받지 않으려면 주지 말아야지, 열지 말아야지, 들이지 말아야지. 네가 날 끊어내기 전에 내가 널 끊어야지.


너는 나쁘다. 네가 아닌 나를 미워하게 하는 네가 밉다.


엉키고 묶여 한 덩어리가 된 이어폰 줄을 다시 들여다본다.

왜 이런 순간에도 너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냐며, 이런 게 네가 말하는 사랑이냐고 악쓰던 그 쉬어버린 목소리가 맴돌아서. 끝내 다시 길 한 구석에 주저앉아버린다. 어느새 비까지 쏟아지며 내 옷과 몸을 적신다.


어떻게든 온통 젖은 몸을 일으켜 옮기는 발걸음에 치덕치덕 소리가 난다.

손에 꼭 쥐고 있던 이어폰 뭉치-이제는 이어폰이라 생각하기도 힘들게 너덜너덜해진-를 길거리에 던져진 아무 쓰레기봉투에 던져버린다.

꼬인 이어폰과 꼬여버린 관계. 떠나버린 너와 살아가는 나는 그냥 이렇게 아무렇게나 던져진다. 해야만 하는 역할을 잃은 존재는 버려진다. 주울 수도 없이 망가져서는 끝을 맞는다.

기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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