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산책>
혹독한 추위가 지나가고 따뜻한 바람이 대지를 적신다.
추위에 움츠려져 있던 어깨가 펴지며 온몸이 밖으로 나가서 걸으라고 외친다.
그동안 움츠린 채 많이 걷지 않았던 탓인지 다리가 뻣뻣해진 듯, 엉치에서부터 오른쪽 다리 아래로 길게 찌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나의 뻣뻣해진 다리를 위해서도 양재천을 다시 걷는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고 속으로 외치며.
그동안 양재천의 나무들은 추위를 견디며 어떻게 변화였을까 궁금하여 길옆의 나무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걷는다. 1월 중순의 양재천 나무들은 나목인 채로 겨울 칼바람을 이긴 듯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커다란 나무들이 벌거벗은 채 팔을 하늘로 벌리고 서 있는 그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본다. 나무가 신선한 새 잎을 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예쁜 낙엽으로 자신을 치장할 때는 그 지엽적인 모습에 홀려 나무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였던 것 같다. 모든 장식이 없는 지금, 나무는 나무 본래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다. 장식 없는 솔직한 모습의 나목들이 왠지 측은하면서도 생명 원래의 모습처럼 여겨져 겨울 나목의 모습은 나의 눈에 아름답게 보인다.
벚나무 무리들이 열을 지어 봄을 기다리고 있다. 자세히 보니 가지 끝에 열린 꽃망울도 봄을 기다리며 조금씩 부풀어 오르고 있다.
끝이 뭉텅 하게 잘린 양버즘나무가 태연히 서있다. 나는 양버즘나무줄기를 마구 자르는 형태에 분노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을 닮은 이 나무는 꿋꿋이 살아나서 아름다운 나뭇잎을 늘어 뜨린다. 참 장한 버즘나무이다.
그런데 양재천의 나무들은 그냥 나목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세하게 , 또는 대담하게 새순을 내밀며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겨울은 나무가 휴식하며 새 생명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여겨왔지만 실제 그 기간은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새 순이 움트는 모습은 경이롭고 가슴 찡한 광경이다.
양재천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나무는 버드나무일 것이다. 산책로 길가에 심어진 황금버드나무에 물이 오르면 나무는 더욱 황금색을 띤다.
목련의 가지 끝마다 꽃봉오리들이 뭉쳐있고 칠엽수의 가지 끝에도 새 순이 생생하다.
은행나무 가지마다 새순이 돋은 것이 마치 작은 전구를 달아놓은 듯하다.
제주도에서는 유채화가 피고 강원도 강릉에서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알린다. 집안 베란다의 화분에서는 수국의 새순이 제법 싱그럽게 올라온다.
기상이변 속에서 나무들은 얼마나 지혜를 발휘하며 꽃 피울 시기를 견주고 있을지 그들의 해답이 궁금해지는 1월 중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