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두 얼굴
뉴욕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이 두 군데 남았다. 뉴욕의 상징, 아니 미국의 상징이라고 할 ‘자유의 여신상’과 미국의 비극의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가 그곳이다. ‘자유의 여신상’이 자유롭고 번영하는 미국을 상징한다면 ‘그라운드 제로’는 쇠퇴해 가는 미국을 상징하여 대조를 이루는 곳이다. 그래서 일부러 우리 여정의 맨 마지막까지 방문을 남겨두었던 곳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그라운드 제로’ 보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인류가 고안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사악한 범죄 행위가 테러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테러행위는 극한의 공포를 유발하고 사회에 엄청난 상처를 남기게 되니 더욱 조열하다. 월 스트리트에서 일하던 뉴욕의 엘리트들 수천 명이 테러 앞에서 희생된 걸 생각하면 내 마음속에 분노와 함께 쓰러져간 그들을 위한 애도의 마음이 절로 인다. 아마도 맨해튼에서 일하고 있는 딸과 사위 때문에 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 항(New York Harbor)에 위치한 리버티 섬(Liberty island)에 세워져 있으므로 여신상을 만나려고 하면 배를 타고 가야 한다. 개인적으로 패리를 탈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자유의 여신상과 월가를 포함하여 그라운드 제로까지 둘러보는 현지 여행 상품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행여나 우리를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안내한 가이드를 다시 한번 만나려나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젊은 가이드가 나타나 그 기대는 무산되었다. 딸이 하루 휴가를 내어 우리와 동행하였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역에 내린 우리는 거리구경을 하며 선착장이 있는 배터리 파크(Battery Park)까지 걸어 갔다. 점심시간이어서 인지 아니면 무슨 날인지 거리에는 먹고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뉴욕은 항상 먹고, 쇼핑하고,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나 매일이 무슨 축제일처럼 보인다. 세상에서 뉴욕 빼고 이런 곳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노랗게 단풍이 든 허니 로커스트 가로수에는 벌써 작은 전구가 달려 크리스마스가 가깝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기괴하게 쏫은 회색 건물들 아래지만, 활기찬 뉴요커들로 인해 뉴욕은 생명의 도시가 되는 것 같았다. 역시 도시를 살리는 것은 사람들이다.
배터리 파크(Battery Park)는 맨해튼 남단에 위치하고 있어 뉴욕항을 가로지르는 브루클린 다리(Brooklyn Bridge)와 맨해튼 다리(Manhattan Bridge) 모습이 가까이에서 보였다. 이 두 다리는 이스트강 위에 세워져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연결하고 있는 유명한 다리들이다. 브루클린 다리가 1883년에, 맨해튼 다리가 1909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1883년, 조선에서는 민영익, 유길준 등이 보빙사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근대 문명과 산업기술을 견학하기 위하여 미국을 다녀갔다. 이들이 뉴욕에 들렀다면 막 준공된 브루클린 다리를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이 두 다리는 그 당시 욱일승천하던 미국의 힘의 산 증거이기도 하다.
가이드와 여행팀을 만나 리버티 섬으로 가는 페리에 올랐다.
페리는 브루클린 다리와 맨해튼 다리 아래를 지나 방향을 북쪽으로 틀면서 허드슨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뉴저지에서 건너보고, 뉴욕의 고층빌딩에서 내려다보기도 했지만 강 위에서 바라보니 맨해튼이 또 새로운 모습으로 보였다. 한없이 이어지는 맨해튼의 고층 빌딩들이 우리를 빼꼼히 바라보고 있는 것도 같았다. 빌딩들의 숲이 또 다른 매력을 만들어 내는 곳이 맨해튼임을 다시 실감하였다.
마침내 뉴욕의 상징인 여신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났다. TV 등에서 너무나 여러 번 보았던 자유의 여신상인지라 여신상 자체의 모습이 놀랍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여신상이 가까워지자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배가 여신상 앞에 잠시 머물렀다.
실제 근처에서 보니 이 조각상이 상당히 큰 주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상의 높이만 46미터이고 받침대까지 포함하면 93미터나 되는 높이라는 것이다.
여신의 머리 위에는 7개의 뿔(7 대양과 7 대륙의 자유를 상징)이 있는 왕관이 쓰여있었고 오른손에는 횃불(세계를 비추는 자유의 빛을 상징)이, 왼손에는 미국 독립선언서가 들려 있었다.
이 조각상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가 미국에 기증한 것이다. 철골구조에다 외피는 구리로 입혔다고 하는데 철골구조의 설계는 구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이 하였고 조각은 프레데릭 오귀스트 바르톨디(F rederic Auguste Bartholdi)가 맡았다고 한다. 구리는 산화되어 그 본래의 황금빛을 잃고 현재는 청록색으로 남아있다. 어느 시대의 사람까지 구릿빛의 여신상을 바라보았는지 궁금하였다. 나 개인적으로는 번쩍이는 황금빛보다는 오히려 청록색으로 바뀐 여신상이 더 낫다고 생각되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자유의 여신상이 여기에 세워지기까지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측은 미국의 독립에 기여한 자신들의 공적을 뽐내기 위해 이 조각상을 선물하겠다고 먼저 제안하였단다. 하지만 동상을 제작하는데 드는 비용을 조달하는 것이 쉽지않았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측에서 1884년 여신상을 완성하였고 동상은 350여 개의 부품으로 분해되어 미국의 뉴욕 항까지 운송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 측이 문제였다. 미국 측에서 약속한 받침대 공사는 자금 모금이 큰 난관에 부딪히면서 좀처럼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뉴욕 월드> 신문 발행인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가 나서서 대중 모금 운동을 시작하였다(1885년). 그는 1달러 이하 기부자도 이름을 신문에 게재하는 방식으로 10만 명 이상의 기부자를 이끌어 내었다. 퓰리처 덕분에 1886년 4월에 기단이 완성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유의 여신상은 1885년 6월에 뉴욕항에 도착한 이래 무려 1년 가까이를 기다려야 했던 셈이었다. 이러한 난관을 겪었기에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인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가족도 다른 관광객들처럼 뉴욕의 상징 앞에서 사진을 한 장 남겼다. 딸과 함께한 사진이어서 지금 봐도 가슴이 뭉클하다.
자유의 여신상을 본 감격을 뒤로하고 우리는 월 스트리트(Wall Street)로 갔다. 뉴욕증권거래소가 있는 미국 금융의 중심지이다.
월 스트리트라는 이름의 유래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이곳에 세워진 방어용 성벽(wall) 때문이다.
알다시피 뉴욕은 네덜란드 식민지인 뉴암스테르담 시대(1640년대)로부터 시작되었다. 네덜란드 식민지는 영국과의 전쟁, 원주민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지금의 월 스트리트 자리에 길이 약 2.4km의 방어용 나무 성벽을 건설하였다. 이 성벽은 현재의 트리니티 교회(Trinity Church) 근처에서 이스트강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다 1664년 영국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더 이상 성벽의 필요가 없어지면서 철거되었다(1699년). 땅의 주인은 바뀌었고 성벽은 제거되었지만 월 스트리트라는 거리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
월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구조물이 월 스트리트 황소상이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5분 거리인 볼링 그린 공원(Bowling Green Park) 근처에 그 유명한 황소상이 서 있다. 황소는 주식시장에서 강세장을 상징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황소의 음낭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이 나이에 부자를 꿈 꿀 수는 없겠기에 가이드를 따라 황소상 앞까지 갔지만 이상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이 조작상은 이탈리아 조각가인 아르투로 디 모디카(Arturo Di Modica)가 1989년에 설치하였다고 한다. 1987년 블랙 먼데이로 미국 증시가 대폭락 하자 모디카는 경제의 회복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황소를 제작하여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몰래 설치하였다고 한다. 길이 5미터, 높이 약 3.4미터, 무게가 약 3.2 톤에 달하는 거대한 청동 횡소상을 어떻게 옮겼는지 궁금하였다.
뉴욕시 당국에서는 처음에는 불법 설치물이라고 이를 철거하려고 했으나 시민과 언론이 열광하자 현재 위치로 옮겨 재설치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사람들이 행운을 바라며 황소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세계 어디를 가건 사람들의 염원이 되는 물건들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내재된 욕망을 드러내는 것같아 흥미롭다.
월가를 거처 마침내 세계무역센터가 있었던 그라운드 제로로 이동하였다. 마침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곳을 보고 싶은 마음과 보고 싶지 않은 마음과의 갈등이 내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는 원래 폭발이나 큰 파괴가 발생한 지점의 중심을 뜻한다.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는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된 현장을 뜻한다.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2001년 9월 11일, 무장 테러리스트들이 납치한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강제 충돌하면서 두 건물이 붕괴되었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테러의 유형이 새로운 데다 무자비하기 짝이 없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역사는 미국을 9.11 테러 사건의 전과 후로 나누어 설명할 정도로 9.11 테러가 미국과 미국민에게 미친 충격과 영향력은 대단하였다.
이 충격의 자리에 현재는 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이 세워졌고 지금 우리는 그것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그라운드 제로에는 두 개의 거대한 정사각형 분수가 설치되어 있었다. 중앙으로 물이 깊게 떨어지는 이중의 폭포구조를 하고 있었는데 폭포는 거대한 심연을 연상시켰다. 작가는 사라진 생명과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하여 이런 건축물을 세웠다고 하는데 물이 흘러가는 그 깊은 심연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뚝하고 떨어졌다. 마음이 슬펐다. 일본의 나가사키의 평화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분수가 떠 올랐다. 나가사키의 분수를 세계에서 가장 슬픈 분수라고 생각했었는데,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의 폭포는 세계에서 가장 슬픈 폭포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가장자리 난간에 새겨진 2,977명의 희생자 이름을 보는데 또다시 슬픔이 몰려왔다. 이날 희생자 중 누군가의 생일인 모양이었다. 이름 위에 꽂힌 하얀 꽃이 더욱 슬픔을 자극하였다.
희생자들의 배치는 단순한 알파벳 순서가 아니라 친한 그룹끼리 묶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마음이 애잔해졌다. 예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났다. 하버드대학의 연구팀에 의하면 사람들은 전생의 인연에 따라 이승의 인연을 짖는데, 집단적으로 생을 옮겨 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은원이 있던 사람들의 그룹이 다음 생에서도 은원을 만들며 계속 삶을 이어간다는 의미였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친했던 사람들의 그룹으로 배치한 그 노력이 특별한 의미로 여겨졌다.
수천 명의 엘리트들이 한순간에 사라졌지만 쌍둥이 빌딩은 서반구에서 가장 높다는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One World Trade Center)로 재탄생했고 그 자리에는 또다시 수천의 뉴 엘리트들로 채워져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움직여 갈 것이다. 희생자들이 어느 세상에선가 다시 태어나 아쉬웠던 지구인의 삶을 고쳐 살기를 염원해 보았다.
9.11 테러사건은 미국 사회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토안보부가 신설되고 애국법(Patriot Act)이 제정되어 개인의 자유가 크게 제한을 받게 되었고 공항 및 항공의 보안이 강화되었다. 대테러전쟁을 일으켜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한다면서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에 이어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다. 이 두 전쟁으로 2021년을 기준으로 약 8조 달러 이상의 경비가 지출되었고 국방 예산이 급증했으며 재정적자와 부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정의로운 빅 브라더의 위치에 설 형편이 되지 않게 되었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주도하던 미국이 보호무역적 태도로 전환하게 된 것이 마음이 변심한 탓 만은 아닐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구호는 미국의 다급한 형편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라운드 제로 근처에 있는 서바이블 트리(Survivor Tree) 아래에 섰다. 이 나무는 9.11 테러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나무이다. 나무 종류는 배 나무의 일종인 콜리어 페어(Callery pear tree)라고 하였다. 이 나무는 현재 회복력과 희망, 치유를 상징하는 나무로 숭상받고 있다. 그 지독한 화염 속에서 살아난 나무가 기특하여 나도 이 서바이블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야 살아남아 주어 고마워”라고 속삭여 주었다.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 앞에 월드 트레이드 센터역이 있다. 9.11 테러로 파괴된 후 2016년에 완전히 새로 지어진 곳이다.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역사가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곳이었다.
이번에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월드 트레이드 센터역의 외관을 이루는 오큘러스(Oculus)를 바라보았다. 오큘러스는 라틴어로 ‘눈(eye)’ 또는 ‘작은 원형 창’을 뜻한다고 한다. 특히 건축에서는 천장 등에 난 원형 채광창을 뜻한다고 한다. 이 건축물은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가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펼친 새의 모양으로 설계하였다고 한다. 이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9.11 테러가 발생한 그날, 그 시각(매년 9월 11일 오전 10시 28분)이 되면 위 천정이 열리면서 자연광이 정중앙에 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날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렇게 미국은 충격적인 테러사건을 수습하고 그 자리에 멋진 기념물과 건물을 지었다. 9.11 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을 끝까지 찾아내 제거하였다. 그러나 그 후 미국이 말려든 테러와의 전쟁으로 국력이 얼마나 소모되었으며 미국인들이 느낀 좌절감은 또 어떻겠는가! 미국은 더 이상 안전한 나라도 아니고 세계의 경찰역할을 자임할 처지에도 있지 않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워졌던 전후 세계의 질서도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대한 미국의 세기를 되돌려 놓겠다면서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약해진 미국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은 세계에 신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나는 큰 형님을 잃고 각자도생의 길로 나서야 하는 자유진영 국가들의 고뇌를 이곳에서 진하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