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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Jun 18. 2024

내 특이점

자기애 성격장애

십자인대 복원 수술 이후 하체 운동을 더 열심히 하라는 숙제를 물리치료사에게 받았습니다. 원래 하던 운동 루틴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으니 기존 스케줄에 하체 훈련이 더욱 추가됩니다. 하지만 이런 욕심은 결국 화를 부르니 지독한 몸살이 오셨습니다.


더구나 가장 추운 시드니 6월 날씨는 나를 더욱 괴롭힙니다. 겨울이 짧다고는 하지만 뼈가 서늘한 시드니 겨울에 몸살이 오니 고국 온돌방이 그립습니다. 손이 델 듯이 절절 끓는 아랫목에서 이틀만 지지면 나을 것 같은 감기를 두 달째 모시고 살다 보니 컨디션이 엉키면서 삶 전체가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건강을 잃고 보니 모든 것이 지겨워서 벌이던 일들을 하나 둘 줄여갑니다. 대학원도 휴학하고 체육관 운영도 작게 만듭니다. 겨우 회사 나가서 일하고 소소하게 사는 삶으로 급하게 수정하지요.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쁨이 가시니 지독한 공허함이 몰려옵니다. 가만히 있으려니 관 속에 누워 있는 듯 두렵기도 하고 온전히 쉰다는 생각보다는 이상한 불안이 몰려옵니다.


-이렇게 삶이 뒤처지는 것인가?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결국 또 다른 공모전을 또 찾아보고 사업장을 이전할 계획에 부동산에 연락도 해봅니다. 아직 몸이 덜 회복이 되어서인지 일을 벌임에 흥이 나거나 기발한 환상이 팍팍 떠오르지는 않지만 우울해질 것 같아서 전화기를 놓지 못합니다.


나는 계속 무언가를 찾아야 합니다.


정신분석을 받으면 이런 내 운명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매번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기에 같은 결과를 만들 수 밖에 없는 지금 삶에 새로운 것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고리를 끊고 싶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지런한 것으로 오해하지만 내 삶이란 실상 이런 것에 불과합니다. 알지 못할 불안함에 쫓겨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떠난 보내는 시간이고 그것이 쌓여서 지금 내 인생이 되었습니다. 내가 무의식 속에 가진 특이점이란 결국 앞으로도 나를 계속 이렇게 내몰아 갈 것입니다.


이런 나랑 정 반대로 살던 친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여유롭고 자기 삶에 만족해하는 친구. 그렇다 보니 늘 그 친구를 부러워하고 끌려다니고 결국에는 죽어라 싸우다보니 이제는 연락처도 알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답니다.  


그 친구에게 쓰고 차마 상처받을까 보내지 못한 편지를 이 아침 하나 발견합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때는 정신분석이나 무의식에 대한 개념도 변변치 못했지만 나름 무언가를 해석하려 끙끙댄 흔적이 보여서 재미있습니다.


일부 내용이나 상황은 바꾸었고 그 당시 거칠게 이해한 정신분석을 지금 언어로 조금 세련되게 다듬어서 부드럽게 글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오래전 글이지만 이것을 지금 다시 봄에 얻은 것이 있다면, 이미 그때도 특이점을 떨치지 못한 나라는 인간은 똑같은 고민을 하고 똑같은 실수 속에서 살 것이란 예측이며 정확히 그 예측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본 것입니다.


기회가 되면 <날 사랑한> 시리즈에 넣을까도 생각했는데 우선 잊히지 않게 남겨 봅니다. 흔히 연인들끼리 싸우는 내용인데 정신분석을 공부해서 고작 이런데 쓰다니 프로이트 선생님이 보시면 통탄할 일입니다.



MK, 또 잠수 탔구나!
넌 현실을 이렇게 도망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서 멋있어. 네 결정이니 이해하고 존중해.

이렇게 상대를 앞에 두고도 잠수 타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결국 나에겐 작은 충격으로 쌓여서 앞으로 너에 대한 이미지에 반영이 되고 트라우마틱한 상황도 연출이 될 거야. 마치 우리 아버지가 날 어려서 잔인하게 때렸던 것들이 다 잊힌 세월처럼 치부되지만 결국 나에겐 고스란히 남아서 지금도 가끔 나를 괴롭히거든.  

세상사 모든 것은 작용 / 반작용이라서 네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나에게는 어두운 추억이 되고 또 언젠가는 너에게 돌아갈, 받으면서 그 값을 지불해야 하는 '착불 선물'이될 거야. 주변에서 일어나는 서사를 너는 당장 기분에만 집중해서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나에겐 차곡 차곡 다 쌓이고 있단다. 이런 나쁜 이미지를, 넌 의도치 않았지만 계속 주변에 쌓고 있어.

네가 잠수를 탈 때마다 힘들다는 이유는 잘 알지. 하지만 그런 핑계는 한두 번이면 족한 것 같아.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을 차단하고 또 불쑥 나타나는 행동이 반복되는 것으로 인해, 너에 대한 내 평가도 최악으로 완성되어 가고 있어. 아무리 널 사랑하고 이해한 남친이라도 이건 어쩔 수가 없어.

내가 의사는 아니니 진단은 힘들지만 너는 자기애 성격장애를 명확하게 보이고 있어. 널 경험할수록 그래. 이건 너도 조금만 찾아보면 알 거야. 네가 보이는 주요 행동들은 명확하게 그 증상을 가리키고 있으니까.

1 태생부터 자신은 특별하고 지능이 높다고 생각하고;
2 남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으니 누구랑도 어울리지 못하고;

3 매번 피해받은 이야기로 동정심을 사지만 막상 사랑을 얻고 나면 하찮게 여기고;  

4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도 저열하다고 무시하는 경향까지.



대충 몇 가지만 나열해도 너무 명확한 것들이 많아.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무리 네가 안 보는 글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선은 지키고 싶어서 여기서 멈출게...(전혀 근거 없는 진단입니다) 네가 이 글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넌 죽을 때까지 자신에게 이런 성격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거야. 물론 들어도 콧방귀도 뀌지 않을 너이고.

널 아끼는 마음에 치료 방법이 있을까 계속 공부하고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자기애 성격장애는 프로이트 선생님도 포기한 부류로 정말 노답 중에 노답이더라고. 정신과 의사도, 정신분석가도 모두 포기한 부류가 바로 네가 앓고 있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야.

나도 그래서 가끔은 섬뜩한 네 모습을 일부러 과장해서 내 안에 그리고 널 향한 마음을 끄려 하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네 모습에 사로잡혀 떠나지 못하고 있어. 네가 보이는 그 과감함도 사실 내가 동경하는 거야.

하지만 이제 정말로 작별을 고하려고 해.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여!
너는 평소 걱정하는 말이랑은 반대로 섹스토이가 되는 길로 스스로 가는 것 아니니?
널 진지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막대할 거라 보이거든.
차갑기 그지없고 변덕스러우며 자기만 사랑하는 널 어떤 남자가 온전히 사랑하겠니?
네 손으로 판, 네 운명이고 넌 영원히 이것을 반복할 거야.
세상에 장담할 것 없다지만 이건 내 장담할 수 있어.

운명이란 결국 자기도 알지 못하는 그 특이성, 무의식 안에 있는 것들로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물론 나도 그렇게 살고 있어. 그러니 계속 널 선택하는 것이지. 하지만 너로 인해 답을 얻으려고 했던 시간이 있어. 마치 네가 나를 분석해 주는 느낌을 받았거든. 정신분석에 개뿔도 관심이 없는 너이니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만 말이야.

왜 이런 자신을 만나냐고 매번 내게 묻지?
그리곤 섹스를 위해서라고 기다리지도 않고 단정해 버리지.
그래, 반은 맞고 반은 틀려.
너에게 멋진 애인 노릇을 요구하면서 위대한 분석가이기도 바랬어.
왜냐면 널 통해서 가끔은 내 특이점을 보거든.

너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네가 보이는 그 특이한 언행이랑 생각지도 못하게 언어를 자르는 능력은 탁월해서 나 스스로 거기서 분석을 받는 기분이 들었어. 많은 경우 모욕감이랑 황당함이지만 가끔은 너로 인해 내 특이점이 발견된다고 착각한 거지.

아무리 네가 못 보는 글이라지만 행여라도 네가 상처받을까 봐 혹은 어딘지 있다는 그 알량한 윤리감 때문인지 더는 적나라하게 내 진짜 생각을 다 옮기지는 못하겠네. 만약 그것을 다 옮기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나만 더욱 노출되는 꼴이 될 테니 그렇겠지.


부디 네가 찾는 지능 높고 존경할 만한 사람을 꼭 찾기 바래. 누구보다 지능이 높은 너이기에 평생에 단 한 번도 그런 남자는 만난 적이 없고, 만나기 힘들다고 했지만 노력해 봐! 세상이 어리석어 홀로 있기를 택한다고 말은 호기롭게 하면서도 누구보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바로 너잖아. 이 모순에 가득 찬 사람아!




이렇게 글을 쓰면서 마음속에 내다 버릴 것들을 찾아내어 버리는 김에 몽땅 버려 봅니다. 빈자리는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기를 바라며..


시드니에서






추신 1

<날 사랑한 중독자> 김드림 교수 이야기도 나가야 하고 <날 사랑한 회계사> 시리즈도 마무리해야 하고, <살인자 시리즈 - 카나미> 편도 끝내야 하는데 이러고 있습니다. ㅠㅠ



추신 2

제가 참전한 공모전 발표는 9월이나 되어야 대부분 결과가 나온다고 하고요. 시드니 문학상 예정 발표일은 없는데 8월이면 결론 나지 않을까 합니다. 내친김에 찾아보니 신격호 샤롯데 문학상이 올해 처음 시작한 모양입니다. 롯데에서 하는 것이니 상금도 크네요. 응모방법이 우편 접수라니 원고지에 글을 쓰시는 분들에게 가산점이 있을 것 같고요. 멋진 기회입니다.


추신 3

<사랑이라는 착각>이 이달 중에 출시될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작가님들 중에 부담 없이 응답해 주신 분들께 책을 보내드리려 합니다. 모든 분들께 연락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고 불쑥 책 보내드리겠다고 말씀드려서 황당하셨거나 기분 언짢은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 이 자리에서 다시 드립니다.

제가 책 보내드리기로 했는데 정리 중 표에 빠진 작가님들은 말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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