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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을 위한 추모제

Everybody's looking for something

by DreamHunter Mar 15. 2025



동물원에서 교미를 하고 잉태를 할 수 있는 동물은 극히 일부입니다. 아무리 살던 서식지랑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다지만 결국은 차이가 있고 그런 것을 견디지 못하는 동물들은 대부분 잡혀온 후 동물원에서 쓸쓸하게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갈 뿐입니다.


하지만 일부는 무던한 성격 덕인지 인간이 만든 사육환경에서 새끼를 낳는 경우가 있는데 다는 성공하지 못하니 출산 중에 많이 죽기도 한다네요. 가끔 희귀종이 잉태하게 되면 언론에도 보도되며 사람들이 지극히 살피지요. 그러다 위험한 출산이라고 수의사가 판단하면 제왕절개를 시술하기도 하는데 어떤 종류 사슴들은 새끼가 죽더라도 제왕절개를 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독한 산고 끝에 태어난 아기 사슴만 어미는 돌보기에 마취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태어난 아기 사슴을 인간 언어를 통해서 설명해 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체취 등이 비슷할 테니 후각이 뛰어난 야생 동물은 알지 않을까 싶지만, 아프게 나은 새끼가 아닌 경우는 어미가 알뜰하게 살피지 않기에 결국 죽게 된다고 합니다.




제 동생도 제왕절개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우리 어머니는 동생에 대한 애틋함이 저보다 늘 덜 합니다. 시장에 가서도 내가 맛있다고 했던 반찬은 바로 기억이 나서 사 오지만 동생이 맛있다고 했던 것은 가물 가물하여 결국 못 사 온다고 합니다.


동생은 돈까스를 먹지 않습니다. 그러려니 했는데 유학 생활을 저랑 같이하면서 녀석도 돈까스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요.


"형, 내가 왜 집에서 돈까스 안 먹는 줄 알아?"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아니, 좋아해. 그래서 하루는 엄마한테 사달라고 했더니 '아 그래 형도 돈까스 좋아 한다 했어!' 이러면서 마트에서 사시더라고. 그 후로는 안 먹어."


그때는 세상 뭐 이렇게 속 좁은 놈이 있는가 싶었지만 아우가 그리워하는 어머니 사랑은 평생을 채워지지가 않고 그것을 채우지 못한 갈증은 늘 다른 중독으로 그를 괴롭힘을 봅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니 진단을 내리거나 분석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평생 한 인간을 지켜본 결과 만든 제 논리입니다.


사람을 즐겁게 한다는 술, 섹스, 도박 등 세상 그 어떤 것도 내 안에 있는 무의식 깊은 곳 구멍을 채워주지는 못합니다. 왜냐면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대상은 그런 것들이 아니니까요. 단지 우리는 그것에 집중하는 사이에 그 갈증을 잊을 뿐이며 중독에서 깨어나면 허무하고 다시 더욱 강한 자극을 쫓다가 행복이랑은 반대되는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것은 비단 어머니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우리 인간 모두는 채워질 수 없는 이런 구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정신분석에서 가정하는 기본값입니다. 육체라는 실제로 이루어진 우리는 언어라는 환상으로 지어진 세상에서 거세되어 살기에 그렇다고 요약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수리남, 넷플릭

인간처럼 약하게 태어나는 생명체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머니 보살핌 없이 홀로 살기 위해서 수 십 년을 양육받아야 합니다. 어머니 응시를 받지 못하는 아기는 몇 시간 안에 죽습니다. 어린이가 되어서도 더 다양한 내 욕구를 얻기 위해 엄마가 쓰는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엄마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받아 낼 수 있지요.


이 습관은 평생을 우릴 지배하는 구조 속에 넣어 버립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어서 엄마는 내 생각보다 위대하거나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우리는 계속 다른 엄마를 찾을 노력을 할 뿐 내가 내 문제를 해결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여기서 우리 아버지 신이 탄생합니다. 그는 우리랑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에 소통이 가능하며 세상 모든 것을 소유했기에 내가 찾는 바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 세계관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시들해지다가 저처럼 아예 종교를 떠나는 경우도 주변에 흔합니다. 문제는 아무리 철이 들어도 우리는 그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릴 적 엄마를 찾던 그 습관을 고양이 주지 못하여 목마른 자가 우물을 찾든 우리는 매일 허덕이며 무엇을 찾아다닙니다.




아우랑은 이제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친진들 혹은 동생들이랑 연락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라는 인간이 원래 차갑습니다. 유니라는 사촌 동생 소식을 갑자기 듣습니다. 어려서 나눈 기억 몇 줄 밖에는 없지만 유니 동그란 눈, 하얀 얼굴, 말투 등 40년 전에 나눈 사소한 이야기들은 아직도 또렷하게 제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하루는 숙모가 울고 있는 유니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오빠가 녀석을 대신 혼내 줄 거야. 다음에 오빠 오면 이르렴."


평소 유니가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다른 친구들하고 소꼽장난 하고 있으면 그냥 두지 못하고 유니를 괴롭히는 녀석들이 있다는 소리를 전해 들이니 피가 끓었습니다. 싸움을 못하는 아이였기에 과연 내가 유니 앞에서 멋지게 녀석들을 혼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모른 척할 상황이 아니였습니다.


"누가 널 괴롭히니?"

"만두랑 딱지가 맨날 놀려."

"학교 친구니?"

"응, 근데 만두는 교회 친구야."


유니를 만나는 날이 평일은 아니니 결국 일요일에 교회를 가서 만두라는 놈을 찾아 혼내 주려 했지만 막상 녀석을 만나니 뻔뻔하게 생긴 얼굴에 당돌하게 대드는 모습에 너무 당황해서 오히려 유니에게 창피한 꼴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대충 마무리는 해야 하니 교회 다니는 친구끼리 잘 지내야지 하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나왔는데 얼마나 일이 치욕스러운지 집에 와서 혼자 엉엉 울었던 기억도 납니다. 유니에게도 면이 서지 않아서 그 이후로도 가끔 교회 열심히 나가렴 하면서 그날 망신을 수습하려 했던 것만 기억이 납니다.  


수리남

삼촌은 청년 시절에 무척이나 신실했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 신앙은 너무도 깊어서 일반 장로교에서는 부담스러울 정도라니 결국 삼촌은 더 강력한 종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택하고 맙니다. 그곳은 종말을 이야기하며 집단으로 모여서 사는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래전 이야기라 정확한 종파나 그들이 내세우는 자세한 교리 따위는 모릅니다.


문제는 자신이 갈급한 것을 채우기 위해 택한 종교로 인해서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입니다. 유니는 삼촌을 따라, 다니던 학교도 친구랑도 이별하고 어느 산자락으로 가야 했습니다. 숙모 역시 가장인 삼촌이 내린 강력한 결정에 거부할 수가 없을 것은 뻔합니다.


그 이후 그 가족이 겪을 상황은 국민학생인 저로서도 짐작이 갔습니다. 언젠가 무슨 일로 그곳을 나온 유니랑 다시 만난 기억납니다.


"오빠야, 그곳은 모두가 평등한 곳이야. 같이 일하고 같이 나누는 우리는 뭐라는 사람도 없고 밥을 많이 먹어도 혼나지 않아!"


그곳을 연신 찬양하는 유니 얼굴은 웃음이 돌았지만 그 눈동자에서는 과연 그 웃음이 진실한 것인지 의심하게 되는 어두음을 보았습니다.




10년 전 즈음 결혼식 장에서 유니를 만난 것이 마지막입니다. 삼촌이 그런 식으로 삶을 살면서 인생이 평탄치 못했으니 가족 모임에서 볼 수 없던 것도 있고 제가 호주로 이민을 와서 살기에 우리는 국민학생 때 본 이후 마흔이 다 되어서 보게 됩니다.


잠시였지만 결혼식 장에서 본 유니는 다행히 너무 밝았습니다. 워낙 정신없는 날이다 보니 다행이네 정도 생각했고 예전에 잠시 사귀었다던 배우라는 남친이 가끔 신문 기사에 마약 사건 따위로 오르락내리락하면 덩달아 걱정했던 마음도 사그라 졌습니다. 행여 그놈에게 나쁜 영향이나 받았을까, 이상한 친구들을 사귀게 된 것은 아닐까, 못난 오빠로서 최소한 걱정은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년 고국 방문에서 유니는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마음이 아픈 것을 시작으로 이제는 몸도 심각하게 아프고 결국에는 집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수용 시설을 갖춘 정신병원에서 지낸다고 했습니다. 병원비는 둘째 삼촌이 도와주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삼촌은 도대체 지금까지 뭘 하는지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방금 어머니에게 삼촌 부고를 듣습니다. 너무도 황망하게 홀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시며 울먹이시는데 사실 슬프기보다는 평생 삼촌이 찾아 헤매던 그것, 그분이 떠올랐습니다. 삼촌은 내게 방황하는 자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갑자기 가셨다니 참.."

"그래, 이번 설 끝나고 몸이 이상해서 병원 갔는데 갑자기 그렇게 되었어. 그런데 오빠(삼촌)는 연명치료도 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서약서도 작성했기에 마지막을 아무랑도 함께하지 않고 그냥 혼자 돌아가셨어."

"에휴.. 아, 참! 유니는요?"

"유니?.."

"유니는 좀 어때요?"

"유니, 작년 유월에 죽었어.."


유니가 왜 죽었는지 대략 들었지만 정확한 것은 모릅니다. 죽기 전에 증상이 너무 심하게 올라오면 홀로 집을 나가 헤매며 자신이 누구인지도 횡설 수설하는 상황까지 이르러 병원에 입원해야 했을 정도라는 것으로 이런저런 짐작만 해봅니다.


조명가게, 넷플릭스, 강풀

유니는 병원 들어가기 전에 가끔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것을 사람들이 신고하여 들어오곤 했다고 합니다. 그때 사람들이 행색이 이상해보이는 유니에게 괜찮냐고 말을 걸고 집이 어딘지 지금 어디 가려는지 물으면 유니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저 교회 가려고요. 교회 꼭 가야 해요."




유니가 죽고 결국 몇 개월 만에 삼촌도 그 곁으로 갔습니다. 이제 세상에 남은 것은 숙모 혼자입니다. 유니가 떠난 후로 삼촌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를 쫓아가 보기도 합니다. 본인이 평생을 방황하며 내린 결정이 유니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할까? 만약 유니가 삼촌을 아버지로 만나지 아니했더라면 지금도 고국 어딘가에서 밝게 웃고 있지는 않았을까?


나는 다시 환상 속으로 들어가 유니를 구하는 이야기를 써보기도 하고 정신분석 측면에서 삼촌을 비추어도 보고 유니를 치료하는 방법을 구상해보기도 합니다. 이제야 이딴 것들이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이것은 오빠로서 조카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입니다.


유니야,

지금쯤이면 아버지 다시 만났으리라.

그곳에서는 이승에서 연緣도 다 잊혀 부모였으며 자식이었던 것도 의미가 없다지만,

삼촌이랑 너는 끝내 마무리하지 못한 슬픈 사연이 있으니 부디 두 분은 서로 알아보시라.

지난 삶에서 자식을 낳고 기르지 못했다지만 영민한 너이기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애절한 마음을 익히 알리라.  


그곳에서는 네가 먼저 되었고 아버지가 나중 되었으니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이번에는 유니가 엄마가 되고 삼촌이 아들이 되리라.


만약 변덕스럽지 않은 신神이 있어 사연을 안다면 이루어 지리니,

그렇게 되면 유니는 좋은 엄마가 되어 넘치는 사랑으로 아기를 지극 정성을 다해 키우리라!


유니도 엄마로서 지난 생에서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충만하게 느끼기를 소원한다.

가슴에 채워지지 못하는 그 큰 구멍을 가졌던 삼촌 역시 엄마로서 유니가 주는 사랑을 통해 새로 얻은 귀한 삶에서는 더 이상 방황하지 않게 되리라.

 

마지막으로 간곡히 청하오니

아쉽고 부족하기만 했던 지난 삶은 내가 올리는 이 글로 깨끗하게 이제 보내 주시고,

그곳에서 아버지 뜨거운 손으로 꼭 안아 드리고 서로를 위로해 주시길 진심으로 바라옵니다.



이것으로 두 분을 위한 제 추모 제사를 마치겠습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Everybody's looking for something

Some of them want to use you

Some of them want to get used by you

Some of them want to abuse you

Some of them want to be abused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찾고 있어

어떤 이들은 너를 이용하고 싶어 하고

어떤 인간들은 이용당하고 싶어 해

어떤 이들은 너를 학대하고 싶어 하고

또 다른 일부는 학대받고 싶어 해.

(Sweet Dreams - Marilyn Manson)


https://youtu.be/duzNSTw_AR4?si=OyLkfuTOtNi5hYt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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