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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 Aug 29. 2023

내 집에서 나가라고요?

중국에서 부동산 사기에 당한 이야기

  부동산 사기라는 건 뉴스에서나 보는 자극적인 헤드라인 정도로 치부했었다. 애초에 내가 부동산을 거래할 일도 없을뿐더러, 몇천, 혹은 몇억이나 되는 금액으로 무언가를 거래하는 게 익숙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 부동산 사기라는 이름만 들어도 큰 금액이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사기가 떠오르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게 문제였을까? 한국도 아니고 중국에서 부동산 사기를 당했다. 참... 웃긴 일이다.




공백 제외: 4315자


목차

1. 발단

2. 전개

3. 위기

4. 절정

5. 결말

6. 그래서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1. 발단

  난 어지간하면 신축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방을 찾고 이사를 하면서 느낀 건데, 중국은 집에 대한 개념이 조금 다른 건지 대부분 집이 매우 더럽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부실시공 혹은 덜 지어진 집으로 인식될 만한 수준의 집이 아무렇지 않게 시장에 나온다.


  예를 들면 창문과 바닥이 큰 균열이 있거나, 마감이 되지 않아 깊은 구멍이 있고 거기에 시멘트와 쓰레기가 가득 끼어있다거나? 기본적인 문과 문 사이의 마감이나, 창문 마감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페인트 얼룩이 가득 묻어있거나, 손잡이가 박살 나 있다거나 할 때도 방주인이든, 세입자든, 중개인이든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만약 그게 이상하다고 말하면 그건 정상이라고 답변이 온다.


폐허 같은 집... 내가 이상한가...


  그래서 난 어지간하면 신축,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의 한국식 리모델링이 되어있어 깔끔한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 나에게 집은 집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과 상관없이 잠만 자는 곳이 아닌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돈 몇만 원을 더 아끼기 위해서 불만족스러운 공간에 몸을 뉘고 싶진 않았다.


  그게 문제였을까?


2. 전개

  내가 원하는 수준의 깔끔함을 가진 방 하나를 찾았고, 그곳에서 산 지 1년? 채 안 됐던 날로 기억한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컴퓨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집 문을 두드렸더랬다.


  누군가 찾아올 약속이 없는데...? 


  난 약속되지 않은 방문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문을 잘 열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따라 왠지 문을 열어야 할 것 같았다. 후다닥 뛰어가서 문을 여니 젊은 여자가 있었는데, 여자가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나는 너희가 살고 있는 이 집의 집주인이다. 너희가 계약했던 부동산 회사는 이미 도산하였고, 내가 사무실에 찾아가도 봤지만 아무도 없는 등 이미 도망간 상황이다. 나는 이미 이 회사에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은 지 꽤 됐고, 너희가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이 방이라도 회수해야겠다. 이른 시일 내에 이사를 가줬으면 좋겠다.


다들 나가주세요, 혼자 있고 싶어요.


  학생의 신분으로 감당하기에는 아주 당황스럽고, 아주 황당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난 이 상황에서 생떼를 부려봐야 좋을 거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그래서 일단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그 집주인을 돌려보냈다.


우리는 지금 이 집 바로 앞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 그 와중에 유학생이다. 어떤 상황인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바로 이사를 가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서 지금 당장 이사 여부를 결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먼저 이건 내 연락처고, 이후 거취를 결정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돌아서자마자 바로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으며, 그래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3. 위기

  이 사건은 기존에 있던 중국 부동산 중개업의 고질적인 문제코로나를 만나면서 폭발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 방을 찾기 위해서는 부동산 중개 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은 허위 매물이다.


"방을 보고 싶은데, 이 방 있나요?"

"있어요. 언제 어디로 오세요"


  약속한 날짜에 약속한 장소로 이동하며 연락하려고 그 앱을 켜면 그 방이 거래 완료됐다고 하는데, 그때 연락했던 사람에게 연락하면 그 건물 아래에서 자신도 아니고, 자신의 지인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에게 안내받으라고 한다. 방이 왜 없어졌냐고 물으면 네가 연락했으니 일부러 내렸다고 말한다.


"방 보러 오신 분이죠?"

"네, 맞아요"


  그리고 그 사람이 보여주는 건 자신이 봤던 방과 전혀 관련 없는 방이다. 그리고 그 방이랑 모양이 다르다고 말하면 그건 이미 팔렸다고 한다??


  즉, 가장 좋은 매물을 올려놓고 누군가 그 매물로 연락하면 이미 거래가 완료됐다며 다른 매물을 보여주는 거다. 한국에서도 이런 형태의 허위 매물을 올려두는 사례는 있지만, 당당하고 떳떳하게 모든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장사하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 외에도 보증금 반환 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엿장수 맘대로 보증금을 준다. 그리고 보증금 반환에 대해서는 수사기관도 금액이 적다 보니 신경을 안 써주기 때문에, 세입자는 증거가 있든 없든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을 받기가 힘들다. 즉, 중국은 부동산 중개업이 피해자를 쉽게 양산해 낼 수 있는 형태로 굴러가고 있다.


4. 절정

  내가 겪었던 부동산 사기도 이런 형태가 코로나 시기에 극대화된 거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코로나 정책은 중국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유학생에게는 그것보다 더욱 크게, 또 선명하게 영향을 미쳤다.  높은 강도의 코로나 정책으로 인해 대부분의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유학생들은 학교에 갈 필요가 없어졌고, 게다가 외출조차 제약받기 시작하니 자유로운 영혼의 유학생들은 그 시기가 굉장히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된 상태에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학교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하게 많은 유학생은 귀국을 선택하고, 그렇게 귀국을 선택한 유학생이 살던 집은 빈방으로 변한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새로 방을 구하는 세입자의 수도 확연히 줄어들었을 것이고, 중개업자는 정상적으로, 정당하게 업무를 하더라도 중개 수수료를 통해 운영되는데, 거래량이 줄어버리니 수입이 비약적으로 줄어들게 됐을 이다.


  그렇게 코로나 시기 많은 중개업체가 도산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차피 도산할 거면 한탕 크게 해 먹고 튀자는 업체가 생기지 않는 것도 이상하긴 하다.


  한탕의 방식은 아래와 같았다.


  기존에 방을 내놓는 실질적 주인을 A라고 하자, 그리고 중개업체를 B, 세입자를 C라고 하자. 그러면 A는 B에게 자기 소유 방의 거래 전권을 맡긴다.



Q: 왜 전권을 중개업체에 맡기나?

A: 중국에는 방 하나만 가진 사람보다 방 여러 개를 가진 부동산 부자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그냥 여러 개 방을 한 중개업체에 거래하도록 내버려두고 자신이 제시한 돈만 받아 가는 것이다. 귀찮게 방 하나하나를 관리할 필요가 없으니, 관리의 대가로 수수료 정도는 쥐여주고서 말이다.



  A는 모든 전권을 쥐여주면서 자신의 조건을 말한다.


자, 이 방은 한 달 월세가 100만 원이야. 그리고 보증금도 100만 원이야. 월세는 한 달에 한 번씩 나한테 주면 돼 알겠지?


  그러면 B는 그 조건을 받아서 시장에 올릴 때는 아래와 같이 올린다.


월세 80만 원, 보증금 80만 원, 월세는 6개월 치를 한 번에 내야 함.



Q: 월세면 월세지, 왜 몇 개월 치를 한 번에 내라 그래?

A: 중국 월세 제도는 한국과 달리 한 번에 몇 개월 치를 내는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 달에 한 번씩 내는 경우도 있지만, 3개월에 한 번씩 내는 경우도 있고, 6개월, 12개월 등 다양하게 있다. 또 그렇게 내는 경우에는 월세를 깎아주는 형태의 혜택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100만 원짜리 방의 월세 1년 치를 한 번에 내면 월세를 90으로 깎아줄 게 같은 형태라고 보면 된다. 그러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목돈을 준비해야 하는 대신 좋은 방에 저렴하게 들어가니 좋고, 방 주인 입장에서는 월세 밀릴 걱정 안 해도 되니 좋다는 형태다.



  그러면 어떻게 되냐? 첫 번째 달에 B는 A에게 보증금 100만 원과 월세 100만 원을 송금한다. 그리고 C에게는 보증금 80만 원과 6개월치 월세인 480만 원을 받는다. A에게 200만 원을 송금하고 나면 다음 달부터는 100만 원만 송금하면 되고, 이미 560만 원을 받았으니 360만 원이 남았을 것이다. 만약 바로 도망가지 않고 3개월을 더 끌어도 60만 원 이득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조금 더 저렴한 방세를 제시하여 많은 C를 모으고, 3개월 혹은 6개월의 형태로 월세를 받아 A가 원래 제시한 가격을 지불한 후, 남은 돈을 들고 튀는 것이다.


  그러면 A 입장에서는 자기가 말한 월세를 못 받으니 문제가 생기고, C 입장에서는 80만 원짜리 월세방이 100만 원이 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그리고 A가 C를 찾아갔더니 A 입장에서는 또 갑자기 100만 원짜리 월세방이 80만 원이라네?


이게 뭔 개소리야?


5. 결말

  그 당시 나는 3개월 치 월세+보증금을 모두 지불한 상태였다. 그리고 두 달을 살다가 이런 일이 발생했기에 그 회사가 먹고 튄 금액은 1개월 치 월세와 보증금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달에 발생해서 이 정도지, 만약 3개월 치를 내고 첫 달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면 진짜 큰 손해를 봤어야 했을 것이다.


  일단 난 이사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우리의 상황을 집주인에게 자세히 전달했다. 유학생이라는 것도 강조하고? 그리고 재계약을 제안했다. 


지금까지 돈 못 받은 것도 잘 알겠다. 하지만 우리도 2개월 치 월세 상당의 금액 손실을 봤다. 일단 이 금액은 사기당한 걸로 하고 우리는 이사가기가 어려운 상황이니, 재계약을 하는 건 어떻겠느냐, 0원부터 시작한다는 셈 치고 내가 다시 보증금 및 월세를 지불하겠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날짜에 꼬박꼬박 입금하도록 하겠다.


  이런 식으로 2개월 치 월세는 잃은 셈 치고, 보증금과 월세를 지불했다. 그리고 집주인도 우리가 유학생이라는 것을 고려해서 재계약 시의 월세를 허위 매물의 가격으로 맞춰줬다. 즉, 100만 원짜리 집을 80만 원으로 들어온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건데, 80만 원으로 맞춰주겠다는 소리이다.


  덕분에 돈을 잃긴 했지만, 그 이후 1년을 더 넘게 살았으니 어쩌면 맞춰준 금액으로 대신해도 될 정도였다. 들어보니 이전에 자신도 유학을 갔다 왔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더욱 잘 봐준 게 아니었을까? 참 감사하다.


6. 그래서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건 부동산 업체와 계약하지 말고, 내가 사기당한 이후의 상황처럼 집주인과 직접 계약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중간 거래상이 없기 때문에 확실히 안전한 편이고, 신원이 확인되기 때문에 이후 문제가 발생해도 해결하기 쉽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 사회 구조상 이런 형태의 계약은 거의 없어서 찾기가 굉장히 힘들다.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말이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중개업체에 맡겨버리기 때문이다. 학생 입장에서는 백만 원 단위가 매우 클지 몰라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이길 정도의 금액은 아니니까 말이다.


  또 웬만하면 1개월마다 월세를 내는 형태로 계약하는 것이 좋다. 3개월 혹은 6개월로 계약을 하게 되면 혜택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언제 나쁜 마음을 먹고 돈을 떼먹을지 전전긍긍하게 될지도 모른다. 중국의 1선 도시는 월세의 가격대가 굉장히 높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3개월 치만 모아도 꽤 큰 돈이 된다. 견물생심이라고, 원래 그럴 생각이 없다가도 돈을 보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또 난 이때 경찰서에 신고하는 것을 주저했었다. 애초에 신고해서 효과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날린 셈 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효과가 있든 없든 신고할 가치는 충분하다. 언젠가 모든 것을 잊었을 무렵이라도 범인이 잡히기만 한다면 그 돈을 받을 가능성이 1%는 있기 때문이다. 신고하지 않으면 1%의 가능성도 없다.


중국이 선진국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본의 규모가 커진 만큼 사람들의 인식도 발전하고, 또 사회 제도도 충분히 정비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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