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병욱 Aug 04. 2023

유학, 코로나, 도산, 사기
그리고 이사

중국에서 혼자 살며 고생한 이야기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에는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주거에 대한 문제를 대학생이 되고, 또 사회인이 되며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생각보다 더 귀찮고, 번거롭다.


  2018년, 중국으로 유학을 오면서 첫 1년은 기숙사에서 거주했고, 2년 차부터 직접 집을 찾고, 집을 계약하고,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내며 생활해 왔는데, 그 이유는 기숙사라는 안전 지역에서 벗어나 야생의 삶을 경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숙사에서 학교의 보호만 받으며 살아간다면 그 경험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제대로 된 삶을 배우기 위해서는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 위험천만한 야생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공백 제외: 5876자


목차

1. 첫 번째 이사

2. 두 번째 이사

- 매몰형 에어컨

부동산 사기

3. 세 번째 이사

부실한 마감

부실 공사

중앙형 에어컨

창문의 부재

관리자의 근무 태만

4. 네 번째 이사

5. 이사와 거리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1. 첫 번째 이사

세 명이 살아도 충분한 크기, 그리고 방도 세 개였다.


  첫 번째 이사는 학교의 기숙사로부터 지도상으로는 아주 가까워 보이는 아파트 단지로의 이사였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이사할 때는 절대 지도를 보고 집을 골라서는 안 된다는 걸 배웠다. 지도에는 참 가깝지만, 그 길이 절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지는 않는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그제야 깨닫게 되더라.


  내가 선택한 집은 학교의 북쪽에 있는 집이었는데, 지도상으로는 정말 학교와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그때 간과했던 사실이 있는데, 학교는 북쪽에 출입문이 없으며, 내가 이사한 아파트 단지도 남쪽에는 출입문이 없었다. 즉,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학교에서도 빙빙 돌아 나간 후, 아파트 단지에서도 빙빙 돌아 들어와야 했다.


  어찌 됐든 같은 공부를 하는 친한 친구들과 같은 집에서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기대됐고, 또 즐거웠기에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어려움이었다. 이렇게 집을 정하고 난 뒤엔 이사했었어야 했는데, 사실 지금이야 이사할 때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사람을 부르고, 어떻게 돈을 지급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참 잘 알고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잘 몰랐고, 또 중국어로 소통해야 한다는 사실도 매우 큰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무언가를 모른다는 무지함은 큰 두려움을 만들어내는데, 사실 중국에서는 한국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이사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그런 지식이 없으니 막연히 들어본 수십만 원 수백만 원이 필요한 이사로 지레짐작했었고, 그러다 보니 학생 신분으로서 그런 금액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결국 우리들은 집을 계약해 놓고 가끔 시간 날 때마다 기숙사의 짐을 정리해서 전동차를 타고서 가끔 왔다 갔다 하며 이사를 진행했다. 그래도 그땐 시간도 많았고, 이미 중요한 짐은 일차적으로 다 옮겨둔 상태라 딱히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집에 가는 겸 짐을 챙겨서 갈 뿐이었다.


  게다가 그땐 친구들과 같이 살았었는데, 3명이 같이 자신의 짐을 조금씩 옮기다 보니, 같이 짐을 옮기는 친구가 있다는 안정감도 있었고, 또 기숙사 면적도 그리 넓지 않고, 학생이라 짐이 많을 수도 없었기에 충분히 혼자 옮길만했었다.


  물론 나쁜 일도 있었다. 그 집에서 1년을 살고 나서 다음 이사를 결정해야 했었는데, 계약했던 부동산 업체가 코로나 때문에 힘들다는 핑계로 보증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뤄서 혹시나 돈 떼일까 걱정하며 맘고생을 하기도 했었고, 세 명이 잘 살다가 한 명이 유학을 포기하면서 두 명으로 줄어버린 것도 나쁜 일이라면 나쁜 일이지 않았을까 싶다. 보증금 문제에 대해서는 한 달 넘게 부동산 업체를 재촉해서 결국은 보증금을 돌려받았으니, 그래도 손해 없이 잘 해결한 편이다.


2. 두 번째 이사

벽에 박혀있는 에어컨이 참 아쉽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가 신축이라 깨끗한 건 좋았지만, 부실 공사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챌 수 없었다는 건  나쁜 점이었다. 그 집에서 산지 몇 개월이 되지 않아, 아래층에는 물이 새고, 그 여파로 우리 집의 바닥이 팽창하고 부풀어 오르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었는데, 알아보니 해당 문제는 건물 전체에 발생하는 문제였다. 그렇게 새어나간 물이 지하 주차장까지 벽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에 지하 주차장은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사시사철 습했었다.


  마침 처음에 계약했던 1년이라는 시간이 다 되기도 했고, 또 한 명이 그때쯤 유학을 포기하면서 나는 다시 집을 찾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두 번의 실수는 없다며 실질적인 이동 동선이 가깝고 좋은 곳으로 집을 정했다.


  저번에도 이삿짐센터를 안 부르고도 잘 이사했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로 생각하고 집을 계약한 후 두 명이 가끔 짐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며 이사를 진행했다. 이때도 사실 힘들다는 느낌은 딱히 들지 않았다. 같이 짐을 옮기는 친구도 있었고, 이사를 한 번에 진행하면 왕창 어질러져서 정리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드는데, 이렇게 조금씩 옮기니 항상 집이 깔끔하다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사한 두 번째 집에서는 그래도 첫 번째 집에서 배운 교훈으로 꽤 괜찮은 집을 골랐던지, 남은 2년의 대학 생활을 여기서 보냈었다. 아쉽게도 나쁜 점이 없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매몰형 에어컨

  이 집은 복층형 구조였고, 매몰형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에어컨을 청소할 수도 없어서 언제부터 쌓였는지도 모를 먼지를 항상 마실 수밖에 없었고, 에어컨의 위치가 좋지 않아 위층은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웠다.


  아래층은 그나마 살만했는데, 그러다 보니 대부분 아래층에서 생활하고 잠을 잘 때만 위층으로 올라갔다. 물론 더워 죽거나, 추워 죽는 건 덤이다. 게다가 전기세는 얼마나 비싼지, 매몰형이다 보니 에어컨 효과도 떨어지고, 전기세는 전기세대로 나가다 보니 사실 아래층이고 위층이고 에어컨을 잘 켜지도 않았었다.


부동산 사기

  언젠가 한 여자가 문을 두드렸다. 올 사람이 없으니 광고나 그런 건가? 싶어서 문을 안 열어줄 예정이었지만, 뭔가 감각적으로 문을 열었더랬다. 그리고 그 여자가 하는 말을 듣고 나니 참 당황스러웠다.


  "난 이 집의 집주인이며, 이미 월세를 받지 못한지 수개월이 됐다. 그래서 결국 직접 찾아왔다. 너희가 계약했던 부동산 업체는 이미 도산하여 도망갔으며, 사무실도 폐업했고, 그래서 결국 너희의 계약은 확인할 수 없으므로 내가 이 집을 회수할 예정이니 이른 시일 내에 집을 비워달라"


  처음부터 끝까지 당황스러운 내용이었는데, 내용이 당황스럽든 어떻든 그건 나중에 친구끼리 떠들 일이고, 일단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도움 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래도 난 꾸준히 매 명절마다 주위 사람에게 연락을 돌리는 편이라서, 그 당시에 연락처를 알고 있던 중국에서 생활하던 어른들에게 연락을 돌렸는데, 결국은 아무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간접적으로 도와주겠다는 분도 계셨지만, 애초에 도움을 줄 생각이 조금도 없는 분도 계셨다.


  좀 다른 얘기지만 그때 역시 인생은 실전이라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보이는 사람도 결국 진짜 힘들 때 연락하면 별로 탐탁지 않아 하는 게 인생이라는 거다.


  어찌 됐든 결국엔 우리를 찾아온 집주인에게 사정을 잘 말하고, 얼마 정도를 손해 보는 대신에 집주인과 재계약을 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었다. 참고로 그때 사기 당한 월세는 아직도 돌려받지 못했다.


3. 세 번째 이사

생각보다 겉만 번지르르한 집.


  대학 졸업 후, 나는 중국에 남아서 일을 하기로 했고, 같이 살던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러다 보니 또 새로운 집을 찾을 필요가 있었는데,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이전부터 이사의 필요성을 느끼긴 했었다.


  난 대학교 바로 앞에 살았었고, 내가 인턴으로 일하던 회사는 2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 1년간 왕복 4시간의 출퇴근을 하니 하루에 손해 보는 시간이 너무 컸었다.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18시에 퇴근하더라도 나는 아침 8시 전에 출근해야 했고, 20시에 퇴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서 살아야 한다는 아쉬움보다는 출퇴근 시간에서 해방된다는 기쁨이 더 컸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삶과 회사의 업무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나만의 생각이 있기도 했고, 지하철이 잘 되어 있어서 지하철역을 기준으로 집을 골라두면 사실 실질적인 이동 시간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회사가 몰려있는 회사 촌보다는 조금 떨어진 지역을 골랐다.


  이때 처음으로 이사 업체를 사용해 봤다. 그리고 이때 이사 업체를 부른다는 것이 그리 비싸고 어려운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물론 혼자서 이사를 진행할 수도 있었겠지만, 거리가 그럴 거리가 아니라서 다행스럽게도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하진 않았었다.

  

  이 집도 신축이라 중국답지 않게 건물이 깨끗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또 부실 공사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냥 안전한 구축에 들어가는 것도 좋긴 한데, 중국의 구축은 대부분 마감이나 건물 상태가 개판 오 분 전이다 보니 내 눈에 차는 집이 없었다.


부실한 마감

  처음 집을 볼 때는 몰랐던 문제가 딱 첫날 발생했는데, 어디선가 계속 이상한 악취가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오는 악취일지 고민하면서 집을 이리저리 뒤진 끝에 그 원인을 발견했는데, 바로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마감에서 새어 나오는 악취였다.


  예를 들어 세면대와 연결된 파이프가 있는데, 파이프와 세면대 사이가 제대로 마감되어 있지 않아 거기서 악취가 올라오거나, 싱크대 아래에 제대로 마감되지 않은 빈 곳에서 악취가 올라오거나, 세탁기와 연결된 배수구가 마감 없이 통째로 비어있어서 악취가 올라오는 경우였다.


  미리 발견했으면 마감해 달라고 요청을 할 수 있었겠지만, 도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중국인의 특성한번 돈을 주면 나 몰라라 하기에 그런 도움을 바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 결국 난 인터넷에서 마감재를 사서 직접 마감을 했고, 그렇게 버틸 수밖에 없었다. 아, 물론 이사할 때는 그 마감재도 모두 제거하고 나왔다. 


  내 거잖아?


부실 공사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 집에는 싱크대가 있고, 그 상단에 서랍이 천장에 붙어있는 형태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겠지만, 천장에 붙어있어야 하는 서랍이 점점 떨어진다는 것...


  이 문제는 열려있는 다른 집을 보고서 깨닫게 됐는데, 그 집에 갔더니 거기는 조금씩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이미 반은 떨어져 나가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같은 위치의 서랍을 봤더니 조금씩 금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일단 그거 떨어지면 여러모로 속이 상할 테니, 영상과 사진을 촬영해 두고 거기에 물건을 보관하지 않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더랬다.


중앙형 에어컨

  이 집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에어컨과 실내 전기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에어컨이 중앙형 에어컨으로 한 층의 에어컨 기능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형태였다. 이러면 가장 큰 문제점이 에어컨의 효율이 개박살이 난다는 건데, 두 번째 집보다 더 심한 효율을 보여주더랬다.


  마침 한여름에 이사했었던 지라 에어컨 없으면 살기가 힘든 더위였는데, 하루에 두 시간씩 한 달 정도를 틀었더니 내가 이 집에서 사용한 한 달 치 전체 전기료보다 더 많은 전기료가 나왔다.


  이런!


  이런 건 또 처음이라 어떡할까 싶다가 결국 겨울에는 잠옷을 껴입고 살고, 여름에는 에어컨과 잦은 샤워로 계절을 버텨나갔다. 전기세에 깔려 죽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전기가 분리되어 있어서 지금 얼마가 나갔는지, 얼마가 사용됐는지도 알 수 없고, 담당자마다 전기료 납부를 요청하는 시간도 달라서 짜증이 솟구치는 일이 잦았었기 때문에 그냥 포기해 버린 것에 가깝긴 하지만 말이다.


창문의 부재

  나중에 다른 집을 찾아보면서 중개인에게 들은 말로는 지금 살고 있는 세 번째 집은 원래 거주용이 아닌 사무용으로 설계가 된 건물이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들으니 아차 싶었는데, 왜냐하면 어쩐지 창문도 굉장히 제한적이고 통풍이 거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곳이 원래 사무실이었다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그 사무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점이지만 말이다.


관리자의 근무 태만

  가장 좋은 건 이전 두 번째 집처럼 집주인과 직접 계약하는 방식인데, 중국에는 이런 형태의 집을 쉬이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돈 많은 집주인들이 다른 도시에 거주하면서 투자용으로 구입한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 두 번째 집주인이라고 불리는 사람과 계약하게 되는데, 이 두 번째 집주인이 참 게으르고 거지 같은 인간이었다. 관리비라고 10만 원을 요구한 것도 모자라, 관리자가 전기, 수도 관리를 안 하고 방치하여 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자주 단전, 단수가 일어났었고, 이때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건 나 자신이었다. 

  

  이런 인간에게 매달 월세라고 돈을 지불하고 있으니, 이 녀석이 언제 도망갈지 몰라 항상 불안했었다.


4. 네 번째 이사

  세 번째 집에서 1년을 만기로 채우고, 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이 네 번째 집으로의 이사가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만든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도 집이나 계약에서 문제가 발생했었지, 이사에서 문제가 발생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네 번째 이사에서 정말 난 죽을 뻔했다. 이전의 성공 경험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무섭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돌아보면 기숙사에서 첫 번째 집으로, 첫 번째 집에서 두 번째 집으로 이사할 때는 그래도 일반적인 이사와는 조금 다르게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거리였다(물론 걸어서 이동하기에는 충분히 먼 거리였지만).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과 함께 물건을 나르며 이사를 했었어도 힘들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고, 또 힘들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세 번 중 두 번을 직접 날라서 이사했던 경험거리만 가까우면 충분히 직접 물건을 날라서 이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성공 경험을 만들어냈다. 그때는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나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 더 크고, 또 학생이라 짐도 적었다는 것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번에도 나는 두 번째 집으로 이사할 때처럼 미리 다음 집을 계약하고 짐을 조금씩 날라서 어지르지 않고 이사 갈 집을 하나씩 채우는 형태의 이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확실히 내가 이사 갈 집은 100미터 채 떨어지지 않은 건물이었고, 사실 바로 옆집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가까운 건물이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길진 않은 시간이 걸렸다. 옮길 짐을 싸면서부터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짐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미 시작한 일이고, 힘들어도 하면 어떠냐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그렇게 개박살이 났다.


  너무너무너무너무 힘들었다. 물건은 생각보다 너무 많았고, 애초에 이삿짐센터를 안 부를 이유가 없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이사에서 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그곳에서 깨닫게 됐다.


5. 이사와 거리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사라는 건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첫 번째, 짐을 정리한다. 

두 번째, 짐을 건물 아래로 내린다. 

세 번째, 짐을 차에 싣고 이동한다. 

네 번째, 이사 목적지로 이동한 후, 짐을 다시 내린다. 

다섯 번째, 짐을 목적지로 가져간다. 

여섯 번째, 짐을 정리한다.


  즉, 여기서는 거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차를 타고 이동할 뿐이다. 이사에는 거리의 개념이 없다!


  근데 이 멍청한 나는 거리가 가까우니 이사를 혼자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서 그 개고생을 했다. 그렇게 난 약 12일간 매일 밤 울며 겨자 먹기로 내 물건을 조금씩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의 계약이 종료되던 그날, 결국은 이삿짐센터를 불렀다. 남은 짐이 차 한 대를 가득 채우더라. 만약 내가 그때까지 이삿짐센터를 안 부르고 혼자 옮긴다고 했으면 난 시간과 돈은 쓸 대로 다 쓰고 이사조차 못 해서 더 큰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난 이사가 참 싫었다. 혼자 했던 이사의 성공 경험 때문인지 거리가 멀면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마지막 이사의 경험으로 이사와 거리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참... 다행스럽다고나 할까? 짐만 잘 챙겨두면 전문가를 불러 운반만 부탁하면 됐다. 굳이 거리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 거리를 무서워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매거진의 이전글 중국에서 신체검사 받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