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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 Jun 03. 2024

내가 명조를 안 하는 이유, 성의 없는 현지화의 결과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다리 찢어진다

  원신 라이크의 대표 주자라고 한다면 명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1년 3월 게임 개발 소식을 알린 이후부터 단 한 분기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그 소식을 전해왔는데, 빌리빌리, 트위터, 유튜브 등 SNS에서 굉장히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건 물론, 각종 게임쇼에도 꼬박꼬박 그 모습을 드러냈고, 그 정도가 게임 오픈도 안 했는데 온오프라인 이벤트만 잔뜩 열다 보니 동접 0명 주제에 뭘 하긴 엄청 많이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원신이 당시 서브 컬처 게임에 만연했던 맹독성 과금(확산성 밀리언 아서, 속칭 확밀아)을 따라가지 않고, IP를 기반으로 한 선택형 과금을 채택했음에도 세계 서브 컬처 게임의 매출을 싹 쓸어가게 되면서, 그걸 본 수많은 회사들이 그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장을 나눠 먹기 위해 비슷한 게임을 찍어내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게 나쁜 건 또 아니다. 물론 게임 시장의 다양성을 해치긴 하겠지만, 그 경쟁 속에서 새로운 장르가 탄생할 수도 있는 거니까 말이다.


젤다를 따라한 원신을 따라한 명조, 24년 5월 23일 공식 론칭!


  원신을 따라 하겠다고 마음먹은 회사는 비단 쿠로 게임즈뿐만이 아니다. 이전에 한번 리뷰했던 퍼펙트 월드의 '타워 오브 판타지'도 꽤 빠른 시간에 개발해 낸 원신 라이크 게임 중 하나다.



  한국에선 사실 한 동안 반짝하고 사라져 버렸던 비운의 게임으로, 매출 변화만 봐도 사실 그리 좋지 않다. 잠깐 어떻게 지내나 안부라도 한번 전해보자면, 2021년 12월 16일 게임 출시 이후 딱 1년이 지난 2022년 12월 매출은 약 600만 달러, 지금 환율로 82억 정도였는데, 한 달이 지난 2023년 1월은 400만 달러로 약 54억 원으로 약 한 달 만에 28억 원의 매출이 사라졌고, 2024년 가장 최근 매출은 3월에 11억 원, 4월에 7억 원으로 변치 않는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는 중이다.


Sensor Tower Monthly Revenue Report (Jan 2023)
Sensor Tower Monthly Revenue Report (Apr 2024)


  게임 하나 만들어서 수백억 원의 수익을 올린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게임 업계는 고정 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렇게 매출이 줄어들면 게임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개발자들을 자르지 않는 이상, 개발 비용은 지속적으로 들어가는 데에 반해, 한번 돌아선 유저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규모의 마케팅 비용이 추가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련 커뮤니티의 글 리젠이 어느 정도 살아있는 걸 보면 완전히 죽은 게임은 아니라고 봐도 될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도, 소위 스토리 '딸깍' 게임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이 타워 오브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명조 관련 글에서 이걸 언급했다는 건? 음...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예고편 정도라 생각하자.


스토리 '딸깍'이란? 이해하기 어려운 스토리, 재미없는 스토리, 지루한 스토리 등 유저들의 환영을 못 받는 '딸깍' 클릭 한 번으로 스킵해야 하는 스토리를 통칭하는 말




공백 제외: 10855자


목차

1. 다른 건 몰라도 마케팅은 참 잘 따라 했다

- 블리자드의 성공 전략

- 원신의 성공 전략

- 애정 마케팅

2. 성의 없는 현지화, 기본이 안 된 현지화

- 현지화의 기본, 순서의 중요성

- 블리자드의 님폰없 사태

- 고유 명사 미통일

- 각 카테고리별 텍스트 형식 미통일

- 조사 오류

- 단순히 치환하는 형태의 번역

- 말투 스타일

- 번역 역량 문제

- LQA 미흡

- 그 와중에 공지 미감수

3. 소통하는 게임사?

- 참고 문헌




1. 다른 건 몰라도 마케팅은 참 잘 따라 했다

블리자드의 성공 전략

  원신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새로운 IP를 잘 정착시킨 것이다. 스토리 명가였던 블리자드를 예로 들면, 워크래프트의 첫 번째 시리즈가 1994년에 출시 됐고, 1995년에 두 번째 시리즈가, 2002년과 2004년에는 세 번째 시리즈가 출시 됐다. 출시 10년이 되던 해인 2004년에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출시 됐고, 그 이후로 불타는 성전, 리치 왕의 분노, 대격변, 판다리아, 군단, 아제로스 등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확장팩이 꾸준히 출시 됐다.


  스타크래프트도 그 양상이 다르진 않은데, 1998년 첫 출시 이후부터 2015년 공허의 유산까지 둘 다 이십 년에서 삼십 년까지 되는 긴 시간 동안 한 IP로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블리자드는 이렇게 사랑받은 IP를 기반으로, 2014년 하스스톤, 2015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등 신작들도 만들어 내면서, 최대한 기존에 다져왔던 IP를 사용하는 쪽으로 게임 시장을 이끌어 왔고, 또 그렇게 만든 게임들이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으니, 결과적으로는 충분히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신규 IP를 던지는 족족 망하더니, 지금은 기존 IP도 박살 났죠?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아는 맛에 더 끌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존 IP를 충분히 활용한다는 건 사실 성공 전략의 가장 기본적이고, 또 가장 안전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그 기반이 됐던 두 IP가 굉장히 성공한 IP였고, 충분한 시간의 매몰과 함께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전략이었다.


  만약 지금 어느 개발사에게 블리자드식 IP 전략을 사용하라고 한다면 2024년에 출시할 게임의 미래를 최소 20년, 2044년까지 바라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고, 애초에 성공하지 못하면 이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전략인 건 또 아니다. 하지만 만약 기반이 조금이라도 다져진다면, 그때부터 마케팅의 역량이 게임 체인저 역할을 맡게 된다. IP와 게이머 사이의 서사를 쌓고, 그 관계성을 깊게 만들면 만들수록 IP의 성공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원신의 성공 전략

그렇다면 원신은 어떻게 했을까?


  원신은 메인 BM인 캐릭터 뽑기에 대한 유인책으로, 해당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쌓을 수 있는 SNS를 활용했다. 한 캐릭터가 출시되면 각종 SNS에 그 캐릭터와 관련된 PV를 공개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PV는 여타 게임들처럼 단순히 멋있는 기술 사용 장면으로 끝나는 수준이 아니다.


캐릭터 하나에 투자하는 영상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최근 출시한 아를레키노를 예로 들자면, 캐릭터 하나에 일반 소개 PV, 캐릭터가 주인공이 된 단편 애니메이션, 캐릭터 전용 PV, 캐릭터 플레이 영상, 캐릭터 스킬 소개 영상(데인 여담), 애니메이션 컷신까지 캐릭터 관련 영상만 8개가 넘는다. 거기다가 유튜브 커뮤니티에는 해당 캐릭터의 단편 스토리까지 공개한다. 


처음 만난 IP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계속 게이머들에게 캐릭터와의 애정을 쌓을 꾸준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형식의 '애정' 마케팅캐릭터 뽑기라는 BM과 만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 캐릭터가 그냥 내가 지금 즐기는 게임을 조금 더 편하게, 혹은 강하게 만들어 줄 '아이템'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생명체,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게이머들은 돈을 쓰는 데에 거부감이 줄어들고, 어쩌면 더 환영하면서 지갑을 연다. 제삼자 혹은 환경에 의해 지배된 게 아니라, 본인이 정말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돈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 전략의 원조, 블리자드


  이런 형태의 SNS 활용은 예전부터 블리자드가 IP의 애정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병행했던 마케팅 전략 중 하나인데, 블리자드는 그 IP 자체가 워낙 강력하고, 시네마틱을 만들어내는 그래픽 기술이 굉장히 뛰어났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은 비슷한 전략을 취할 엄두도 못 냈다. 지금도 그 폼이 어디갔겠냐만은, 당시 블리자드는 품에 대한 완성도도 굉장히 높았고, 작품을 보조하는 서브 콘텐츠의 품질도 상당히 괜찮았다. 얼마나 괜찮았으면 영상 제작 회사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그래서 망한 실사 영화


  새롭게 도전한 영화에서 안타깝게 흥행 실패를 겪긴 했지만, 그건 방향성이 조금 아쉬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영화의 성적이 나온 이후에도 블리자드가 시네마틱을 못 만든다고 생각하는 게이머는 사실 거의 없을 것이다.


애정 마케팅

  이처럼 SNS를 활용하든, 어떤 플랫폼을 전파 수단으로 사용하든, 전파의 매개체로 사용할 서브 콘텐츠의 제작이라는 건 충분한 기반이 필요한 일이다. 게임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여야만 서브 콘텐츠에 투자할 돈이 생기는 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고, 괜히 계산기 안 두드려보고 덤볐다가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서 회사가 자빠지는 꼴 보기 십상이다. 하지만 원신은 과감하게 IP 기반 없는 게임과 영상 제작을 동시에 진행했고, 결국 지금 서브 컬처 시장 마케팅의 정답으로 인정받게 됐다. 그리고 원신을 따라한 명조는 마케팅 전략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 넣었다.


명조의 금휘, 원신의 아를레키노 스토리 및 설정 관련 SNS 게시글


  내용 퀄리티는 한참 떨어지지만, 그 형식을 그대로 가져와서 쓴다는 건 대충 봐도 보일 정도다. 원신은 그 캐릭터의 스토리를 좋은 퀄리티로 뽑아내서 이야기에 캐릭터를 녹여내는 형태인 것에 반해, 명조는 아직 쿠로 게임즈의 기획 능력이 그 정도가 되지는 않아서 그런지, 단순히 설명문을 나열하는 정도다. 하지만 캐릭터 대사를 사전에 공개하는 등 어느 정도 캐릭터성을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커뮤니티 글을 활용하는 게 보인다.


명조 in 홍대, 원신 in 서울, IP 콘셉트 카페 이벤트


  그 외에도 오프라인 행사와 게이머 참여 행사를 굉장히 많이 열고 있는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대충만 봐도 팬아트 공모전, 인플루언서 오프라인 초대 이벤트, 커뮤니티 이벤트, 맘스터치와 달콤 커피 등 오프라인 브랜드 콜라보, 성우 초청 이벤트에 최근에는 티바트 타워가 세워진 그곳, 서울 홍대에 똑같이 명조 카페를 열었는데, 이런 콘셉트 카페는 한 두 푼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물론 원신처럼 건물 매매를 한 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도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지금 얼마를 쏟아붓는 건지 그 규모가 상상이 안 된다. 퍼니싱으로 번 돈을 다 갖다 부었나...?


미호요 본사가 있는 지하철 역 앞에도 있다는데... 그거 티배깅 아님?


  중국 1선 도시 지하철에도 온 세상이 명조 광고로 가득하다. 한국 3N이 광고를 하더라도 지방 광역시 지하철 전체 광고를 다 사 버리는 경우는 보기가 힘든데, 이것만 보고도 얼마나 명조에 힘을 주고 있는 건지가 느껴진다.


  명조가 게임쇼에 나왔을 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긴 했지만, 사실 그 당시만 해도 그리 기대하진 않았다. 체험해 봤던 전투가 분명 원신보다 괜찮았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 타워 오브 판타지의 향기가 가득했고, 전투 자체도 비교했을 때 괜찮다는 정도지 굳이 이 게임을 선택할 이유가 되진 않았다.


  오히려 내가 이 게임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건, 쿠로 게임즈가 수많은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서부터다. 게임 자체가 어떠냐는 걸 떠나서, 이런 마케팅 전략은 쿠로 게임즈가 얼마나 이 게임에 진심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고, 그 마케팅이 그냥 반복 광고만 뿌려대는 일명 돈 뿌리기 마케팅(기적의 검 개발사 4399 등, 쓰레기 광고 마케팅)이 아니라, 최소한 경쟁작의 마케팅 전략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게이머와 게임 캐릭터 사이의 애정을 끌어올리는 마케팅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정말 기대를 많이 했다. 이 정도로 마케팅에 힘을 줬다면 '게임쇼에서 보여준 반쪽짜리 전투가 아니라, 전체 게임에도 힘을 정말 많이 줬겠구나, 정말 열심히 만들었겠구나'하며 오픈 날을 기대했다. 그리고 참 크게 실망했다.


2. 성의 없는 현지화, 기본이 안 된 현지화

  사실 커뮤니티에서 명조의 캐릭터를 소개할 때부터 조금 싸하긴 했다. 캐릭터 이름에 너무 중국풍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현지화의 기본, 순서의 중요성

이러한 현지화는 실제로 개발이 어느 나라에서 됐든 간에 한국에서 자사 게임을 플레이하는 한국 게이머들에게만큼은 최소한 이 게임이 중국에서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없도록 하는데, 이것이 바로 제대로 된 현지화라 할 수 있다.


  현지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개발사가 어느 나라인지 그 사실을 인식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명조는 누가 봐도 중국이고, 너무 중국스럽다. 캐릭터 이름부터, NPC 이름, 맵, 캐릭터 의상, 스킬 등 모든 부분에서 누가 봐도 중국이다. 이래선 안 됐다.


원신, 리월 지역(중국풍)


  원신에서도 중국풍이 느껴지는 지역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지역은 게이머에게 게임 속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간다. 그 지역은 게임의 정체성에 조금의 영향도 주지 않는다.


원신, 폰타인 지역과 명조, 황룡 지역


  물론 다른 지역이 어떻게 업데이트되는지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 순서가 단단히 잘못됐다. 원신을 따라 하려면 이 부분부터 제대로 따라 해야 했다.


무슨 순서를 말하는 거야?


블리자드의 님폰없 사태

  자, 예를 들어 보자. 블리자드의 님폰없 사태가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면 블리자드의 미래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실제


(디아블로 4에 대한 게이머들의 기대감이 가득 찬 상태)

Wyatt Cheng: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죠?

게이머: 네! (디아블로 4 나오나 보다!)

Wyatt Cheng: 자, 여러분이 기다리신!

게이머: 우와!!

Wyatt Cheng: 디아블로 이모탈입니다!

게이머:...

(블리즈컨 2019에서 디아블로 4 시네마틱만 공개, 이제야 개발 시작)

게이머:...



이상


(디아블로 4에 대한 게이머들의 기대감이 가득 찬 상태)

Wyatt Cheng: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죠?

게이머: 네! (디아블로 4 나오나 보다!)

Wyatt Cheng: 자, 여러분이 기다리신 디아블로 4입니다!

(디아블로 4 시네마틱만 공개, 이제야 개발 시작)

게이머: 우와!!

Wyatt Cheng: 하지만 이제야 개발에 들어간 수준입니다.

게이머: 아, 그렇군요...

Wyatt Cheng: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다리기에 지루하실까, 디아블로 4를 기다리시는 동안 디아블로에 대한 애정을 계속 가져가실 수 있도록 모바일 디아블로를 먼저 준비했습니다. 디아블로 이모탈!

게이머: 우와!!!



  내용은 같다. 디아블로 4는 개발 시작조차 안 했거나, 이제야 시네마틱 하나 만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반응은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바로 이것이 순서의 중요성이다.


게임에 대한 첫 이미지를 결정하는 첫 지역이 왜 굳이 중국 지역이었어야 했나?


  원신의 카피캣이라면 애초부터 '몬드'와 비슷한 '명드' 같은 걸로 판타지풍 지역을 먼저 공개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 세심함이 부족했고, 기획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명조=중국풍이라는 이미지가 심어져 버렸다. 이는 기획 단계에서 현지화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이렇게 한번 굳어진 이미지는 쉬이 변하지 않는다.


고유 명사 미통일


  난 마케팅에 수천억을 쏟아부었으니, 당연히 그 게임만큼은 제대로 된 현지화가 됐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물은 처참했고, 현지화는 엉망 그 자체였다. 그리고 기본이 안 됐다.


  이 화면을 보면 알겠지만, 퀘스트 창에 나오는 몬스터의 이름은 음흉한 백로고, 더빙까지 된 대사에서는 흉폭한 백로고, 보스 이름에 보이는 건 음험한 백로다. 흑석 코인이 부족하다면서, 아이템 이름은 또 클램 코인이다. 게다가 에코 설명에서는 화명 효율이라고 말하고, 도감에서는 공명 효율이라고 말한다.


  만약 쿠로 게임즈가 최소한 이 번역문들을 모두 하나의 외주 업체에 맡겼다면 이런 기초적인 실수가 존재하진 않았을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조금이라도 현지화를 해봤던 업체라면, 그래도 최소한의 기초라도 잡힌 업체라면 작업 중간중간에, 혹은 작업 마지막에 모든 단어를 통일하는 작업을 필수적으로 진행한다. 그럼 왜 이렇게 기본적인 문제가 마케팅에 수천억을 쏟아부은 명조에서 발생했을까?


  그 이유는 최대한 빨리 출시해서 매출을 내려고 무리한 업무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아마 쿠로 게임즈는 퀄리티를 포기한 상태에서 저렴하고 또 빨리 작업할 수 있도록 모든 번역문을 다 잘라서 수많은 회사에 외주를 맡겼을 것이다. 그리고 오픈 직전에 감수조차 하나 없이 바로 라이브 서버에 때려 박았을 것이고, 그 따위로 처리했기에 주요 스토리에, 주요 보스 몬스터의 이름이 다른, 아주 기초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 문제는 타워 오브 판타지에서도 발생했던 문제로, 즉... 현지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카테고리별 텍스트 형식 미통일


  이런 문제를 보면 게임 개발팀의 역량도 굉장히 부족함을 엿볼 수 있다.


  번역을 할 때, 해당 텍스트가 어디에 들어가는지 알기 위해서는 당연히 단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시스템 관련 텍스트는 1번 카테고리, 메인 스토리 관련 텍스트는 2번 카테고리 등으로 사전에 규칙을 정해서 번호를 붙여두는 것이다. 이렇게 각각의 텍스트를 클라이언트 단계에서 분리해서 관리하면, 나중에 현지화할 때도 각 카테고리에 맞는 규칙과 형식으로 번역문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렇게 텍스트의 전체적인 퀄리티를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그럼, 왜 명조에는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첫 번째로는 먼저 언급한 것처럼 개발팀의 역량이 부족해서 텍스트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는 가능성이다. 애초에 현지화 담당자들이 그 단서를 얻을 수가 없다면 당연히 좋은 텍스트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두 번째로는 저렴하고 또 빠른 작업을 위해서 텍스트에 아무런 힌트나 규칙도 없이 다양한 외주업체에 맡겼다는 가능성이다. 외주 업체의 수만큼 다양한 형태의 번역문이 나오게 될 것이고, 쿠로 게임즈처럼 현지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기업이라면 그 통일성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 문장은 쿠로 게임즈가 맡긴 외주사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방증이기도 한데, 이게 시스템에 들어가는 텍스트든, 메인 스토리에 들어가는 텍스트든, 그런 형식을 다 떠나서 한 문장에 두 개의 종결 어미를 쓴다는 것 자체가 한국인이 맡았다고는 믿기 어렵다. 그나마 저 두 개의 문장이 각각 다른 텍스트고, 클라이언트에서 한 문장으로 합쳐진 거라고 가정한다면, 번역 품질을 제쳐두고서 구조적으로 저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그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생기는데, 수정된 텍스트를 봤을 땐 그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가설처럼, 수많은 외주업체에게 잘라서 맡김과 동시에 번역 단가를 후려쳐서 번역 실력이 좋은 한국인을 둔 업체가 아닌, 그 외의... (더 이상의 말은 생략한다) 실력만큼 저렴한 업체에게 아주 낮은 가격으로 계약했다는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조사 오류


  번역가라면 가장 처음으로 배우는 기초 중 하나가 바로 명사 변경 시 조사 필수 변경이다. 즉, 저 접대원은 애초에 접대원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도우미 같은, 마지막 받침이 없는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걸 변경할 때 텍스트 전체를 Ctrl+F로 잡아서 도우미에서 접대원으로 전체 변경을 진행했을 것이다.


  이런 식의 단순한 전체 변경번역가라면 당연히 지양해야 하는 작업이다. 텍스트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며, 만약 이렇게 작업했다면 당연히 변경된 부분을 하나하나 찾아서 조사를 수정해야 한다. 이건 초보 번역가들도 실수하지 않는 아주 기본적인 주의점 중의 하나인데, 이걸 틀렸다는 것 자체가 인하우스든 외주업체든, 텍스트 관리 역량이 많이 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단순히 치환하는 형태의 번역


  현지화 담당자의 역량을 판단하는 데 가장 핵심적이고, 기초적인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원문과 번역문의 완전한 변환이다. 중국어처럼 같은 한자 문화권에 있는 언어라면 그 역량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예를 들어, 지금 위 사진의 제목인 "오늘 포럼에 오르면, 세상을 알게 될 거야"를 한국인이 읽었다고 가정했을 때, 저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중국어를 배운 사람이거나, 중국어 번역가라면 아마 저 한국어를 읽자마자 중국어가 자동 치환될 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바로 저게 중국어를 번역한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언어로 치환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표현 자체에 중국어에서만 사용되는 표현이 그대로 들어가 있으니, 한국인은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저 문장이 말하는 "오늘 포럼에 오르면"이라는 건, 직역해서 "今天上论坛"으로 이걸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今天(오늘)" "上(오르다)" "论坛(포럼)"이다. 그리고 이어 붙이기만 해도 "오늘 포럼에 오른다"가 된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무슨 뜻일까?


  중국어에서 명사 뒤에 붙는 "上"은 물리적인 위치의 이동이 아니라, "접촉"을 뜻한다. 그리고 "论坛"은 포럼이 아니라, 대중적인 표현으로는 "커뮤니티"를 뜻한다. 즉, "오늘 포럼에 오르면" 같은 괴상한 문장이 아니라, "오늘 커뮤니티에 접속하면"이 맞는 뜻이다.


  번역가는 언어를 단순히 치환하는 직무가 아니다. 치환할 거라면 번역기를 써라


말투 스타일


  캐릭터는 "대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게이머에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대사가 가지는 힘이 굉장히 강한 것은 물론, 대사가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순간, 그 캐릭터의 성격, 이야기 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그러면 게이머가 그 이야기에 빠져들기도 더욱 어려워진다.


원본


도면은 그려 주지. 상리요의 작업실에 가면 조립 부품이 있을 거다. 말은 해뒀으니까, 부품 상자를 가져와 주게

맞아. 이런 사소한 구조에는 과분한 협조지만... 녀석 덕분에 내 연구 시간이 유의미하게 줄었군



  소설, 애니메이션 등의 방식으로 다양한 대사를 접한 게이머라면 어딘가 애매하게 착 안 붙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렇다면 정상이다. 말투가 진짜 이상하거든...


수정_1


도면은 그려 주겠네. 내가 미리 말을 해뒀으니, 상리요의 작업실에 가면 조립 부품을 볼 수 있을 걸세. 부품 상자를 가져와 주게

렇지. 이런 사소한 구조에는 과분한 협조지만... 녀석 덕분에 내 연구 시간이 유의미하게 줄겠군



  캐릭터가 생긴 거랑 다르게 "~주게" "~했군" 등의 조금 나이 든 말투를 쓰는 게 기획의 설정이었다면, "~거다" "~맞아" 같은 말투를 섞었으면 안 됐다.


수정_2


도면은 그려 주도록 하지. 내가 미리 말을 해뒀으니, 상리요의 작업실에 가면 조립 부품을 볼 수 있을 거다. 부품 상자를 가져오도록

맞아. 이런 사소한 구조에는 과분한 협조지만... 녀석 덕분에 내 연구 시간이 유의미하게 줄었어



  그게 아니라 그냥 거만한 캐릭터였다면 "~주게" 따위의 나이 든 말투를 버리고, 전체적으로 거만하게 갔었어야 했다.


이것만 봐도 기획이든, 현지화 담당자든 게임 업계, 최소한 캐릭터를 살려야 하는 업계의 경력이나 경험이 부족하다는 건 명백하다

번역 역량 문제


  이미 서술했던 특정 문제들을 제외하고서도, 게임 전체의 번역이 모두 엉망이다. 그 번역이 그 자리에 얼마나 어울리냐를 고려하기 전에, 텍스트 자체의 번역 역량이 확연히 떨어진다.


  '이 로그인은 다시 표시하지 않음'은 아마, '다음 로그인 시 다시 표시하지 않음'일 것이고, '후속 도전'은 직역 한자어 사용을 지양해서 '다음 도전'으로 표현하는 게 훨씬 좋았을 것이다. 또 선택한 재료를 '취소하거나, 빼는 게' 맞지, '지우기'는 크게 잘못됐다. '네가 나의 서번트야?'는 어색함이 그 모습을 구현화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고, '마을장'은 촌장을 말하는 건지, 된장찌개에 들어가는 된장을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게임 전체에 기초 번역 역량을 의심케 만드는 번역문이 가득하다.


LQA 미흡


  관련 글을 썼었지만 LQA는 현지화의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다. 번역이 엉망이더라도 LQA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최소한 눈에 보이는 문제는 모두 해결해서 게임을 출시했을 것이다. 정말 단순히 한 번이라도 플레이를 해봤다면 찾아냈을 문제들이 너무 많다.



  '솔라리스 랭크 Rank.2 달성 후 UP 가능'이라는 말부터 굉장히 부자연스럽다. 분명 저런 경우에는 코드 구성에 따라 '솔라리스 랭크 {X} 달성 후 UP 가능'이라는 식으로 텍스트가 구성되어 있을 텐데, 번역문이 이상한 걸 차치하고서도, '랭크 Rank.2' 자체가 이상하다.


  이런 텍스트의 형식과 구성을 인지했다면, 애초에 '솔라리스 랭크'가 아니라, '솔라리스'로 표현해서 '랭크'라는 단어가 중복되지 않도록 했어야 한다. 그리고 UP 가능은 또 뭔가... 캐릭터의 능력치 성장을 '돌파'라고 정했으면, UP이 아니라 돌파로 모두 통일하는 게 맞다.



  게다가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이것도 한 화면에서 체크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보스는 '반디의 군세', 퀘스트 이름은 '휘형 군세를 격파하다'로 같은 원문을 두 가지 스타일로 재해석하고 있다.


공지 미감수


  공지라는 건 게이머들에게 가장 빠른 피드백이 오는 부분이기 때문에 실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런데 게임 내부에서 저렇게 번역을 엉망으로 해놓고, 그 와중에 공지까지 작살을 내버리니 게임사에 대한 신뢰가 팍팍 떨어진다.


명백히 현지화의 부족함으로 게임 매출까지 휘청거리는 상태에서 공지 감수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게임사를 누가 믿을 수 있을까?


3. 소통하는 게임사?


  이렇게 긴 글을 적으면서 기대한 만큼 화가 많이 났다. 그리고 6월 2일 위와 같은 내용으로 공지가 올라왔다. 요약하자면 지금까지 발견된 문제들 중 일부를 수정했고, 수정할 것이며, 보상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댓글에 '소통하는 게임사'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현지화 문제는 발견하기 어렵거나 수정하기 힘든 문제들이 아니다. 정말 게이머를 위했다면, 보여주기식 마케팅을 할 게 아니라, 현지화에 더 많은 투자를 했었어야 했다. 만약 정말 게이머를 사랑했다면, 음성 잡음도 미리 테스트해서 조절했어야 했다. 게이머들이 정말 귀가 예민해서 사소한 문제를 크게 키우는 게 아니다. 정말 테스트를 한 번이라도 했으면 자기들도 알았을 문제를 왜 해결하지 않았을까?


왜 이렇게 출시했을까?


  매출 때문이다. 난 같은 업계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난다. 쿠로 게임즈는 소통하는 게임사라는 것처럼 여론을 이끌려고 하지만, 정작 이 모든 문제는 해결법이 어려운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부분은 게임사에서 예상했던 부분일 것이다. 어쩌면 돈을 투자하는 게이머들을 '유료 테스터'로 삼아, 보이는 것만 수정하는 걸로 전략을 세웠을지도 모른다. 즉, 일부러 미완성으로 출시하고, 게이머들에게 문제점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마케팅으로 이미 충분한 이미지를 만들어 놨으니 괜찮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그게 난 기분 나쁘더라. 성의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유튜버의 단독 인터뷰 영상에서 '자체 현지화 팀이 있음'을 언급했으면서도, 이따위 결과물을 냈다는 게 참으로 답답하고, 화가 난다. 타워 오브 판타지의 현지화를 보면서도 이 정도로 성의 없다고 느끼진 않았다. 사이버 펑크 압도적 부정적 사태를 통해, 과한 마케팅이 만들어내는 문제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또 쓸데없는 마케팅에 돈을 붓지 말고, 현지화에 조금만 더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마케팅이라도 적당히 했다면, 회사의 자금력이 좋지 않아서라는 변명에, 출시까지는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쿠로 게임즈는 게임 개발에는 정작 돈을 아끼고, 표면적인 마케팅에만 돈을 들이부었고, 결국 이런 허수아비 같은 현지화 졸작을 만들어냈다.


  물론 현지화는 중국 국내에서도 인재가 부족한 만큼, 찾고 싶어도 좋은 인재를 못 찾았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인력 문제는 '게임 캐릭터 생성 후, 고작 30분밖에 안 했는데도 문제가 잔뜩 보이는 수준'에서 들이밀 변명이 아니다. 만약 이 결과물을 들고도 열심히 했다고 말한다면, 그 자랑스러운 현지화 팀은 아마추어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한 수준이며, 그게 아니라면 안일하고 또 안일해서 신규 출시 자사 게임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것 말고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젤다를 따라한 원신을 따라한 명조


  게임성 자체에 근본을 따질 수도 없는 게임에, 현지화에서 그 성의를 보여도 모자랄 판국에, 정말 쉽게 말하면 돈만 쓰면 해결되는 문제를 이렇게 키워서 출시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던 게이머 중 한 명으로서, 모든 게임쇼에서 한 번씩은 테스트를 했던 게이머로서, 이번 명조를 대하는 쿠로 게임즈의 자세가 참... 많이 아쉽다.


조금만 더 게이머를 위해서, 진정성 있게 개발했으면 어땠을까?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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