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보다는 파트너가 있으면 더 좋다
다른 일을 찾아서 또는 다른 회사로 옮기기 위해 퇴사를 맘먹은 사람의 대부분은 지금 당장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직할 회사를 알아볼 때, 퇴사자보다는 현재 재직 중인 사람이 구직에 더 유리하고, 새로운 사업에 매진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려고 할 때도 준비단계에서 직장을 그만두는 것보다는 최대한 월급을 받으며 시간을 쪼개 준비하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퇴사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회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이다.
나처럼.
작은 회사의 임원급(엔트리라고나 할까. 그래도 대우는 비슷하게 받는)은 팀장처럼 실무도 하지만 담당들에 비해서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 선배의 권유에 지금 회사에 입사를 결정했을 때는 3년 안에 정식 임원이 되고 한번 더 이직을 해서 50대 초반에 커리어를 마감해야겠다는 나름의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코스닥 상장까지 이룬 자수성가형 대표는 회사의 안정과 성장을 추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회사는 내가 입사했던 3년 전과 비교해 더 나빠지기만 했다.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 개인기에 의존하는 방식을 되풀이하고, 회사의 운영과 미래에 대한 대표의 철학이 없으니 직원들과 괴리감이 점점 커졌다.
비전이 없는 회사.
끝을 내야 했다.
이직해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것인가.
퇴직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것인가.
당장 내가 수입이 없어지면 남편 혼자 수입으로 4인가족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회사는 다니기 싫고 수중에 돈이 부족한 건 더 싫은
나태한 나의 고민이 깊어졌다.
아무 대안 없이 생각만 많았던 작년 여름,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옛 직장 동료와 만났다. 내가 팀장일 때 나와 동갑이면서 팀원이었던(석사 마치고 다른 회사 다니다 경력으로 입사해서 연차가 낮았다.) 그녀와 나는 정말 폭풍같이 질주했던 한 시기를 함께 했던 파트너이자 동료, 팀원 그 이상이었다. 남편의 학업을 위해 미국을 가면서 그녀의 커리어도 끝이 나는가 싶었는데, 성실하고 똑똑한 그녀는 미국에서 재택으로 1인 사업을 시작해서 지금은 웬만한 대기업 연봉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대화가 끝나갈 무렵, 둘이 같이 하면 뭘 해도 잘할 거다라는 근거 없는 얘기들이 나왔고, 아 진짜 우리 뭐라도 해볼까요?라는 얘기를 시작했을 때 아쉽게도 그녀는 돌아가야 했다.
그녀와 헤어지고도 생각이 계속 이어졌다.
내가 현직에 있으니 업계 돌아가는 상황이나 소비자 트렌드를 잘 파악하고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신생 브랜드에 대한 허들이 낮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품목을 저렴하게 만들고, 미국에서 그녀가 확보한 유통과 온라인을 새롭게 개척한다면?
근거 없는 긍정적 낙관으로 머리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핑크빛 미래가 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부자 노인이 꿈인데 가능할 것 같았다.
" 내가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거나 옮길 생각만 했을까?"
내 거를 만들고 팔자.
브랜드에 혼을 갈아 넣을 필요는 절대 없다.
싸고(저렴한 제조단가) 가볍고(운송/물류비가 적은) 좋은 물건(앞으로 성장 가능성 높은)을 만들어서 팔리면 그게 브랜드지.
그러나, 함께 이 일을 할 파트너 그녀는 짧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고, 당장 그녀와의 커뮤니케이션 시간 맞추는 것부터가 문제가 되었다. 미국과 한국의 시차, 아직 아이들을 케어하고 있는 각자의 사정,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사업과 나의 직장 근무 시간 때문에 적당한 미팅 시간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조급증부터 없애야 했다.
우린 이제 결과도 알 수 없는 긴 레이스를 시작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