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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여사 Jul 17. 2023

브랜드가 뭣이 중한디

브랜딩에 목숨 걸지 말 것

미국에 있는 나의 파트너는 10년 전쯤 나와 함께 같은 팀에서 4년 정도 같이 일했다. 

마케팅 잘하기로 유명한 회사의 런칭 1년 차 브랜드팀으로 발령받은 우리는 첫 해에 엄청난 매출을 기록했고, 그다음 해에는 더 큰 매출을 기록해서 사내에서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 되었었다.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엄마 둘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젊고 열정도 있었고 가족의 도움이 있었으니 가능했던 것 같다. 


그 회사는 마케팅에 끊임없이 투자하고 기회를 주었다. 다양한 교육과 국내외 교수나 업체 컨설팅 프로그램, 해외 출장 등 여러 기회를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었고, 그 경력으로 지금까지 좋은 평가를 받으며 오랜 경력 단절 후에도 쉽게 구직과 이직이 가능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맙고 감사하며 운이 좋았다. 




주변 지인들에게 조용히 창업을 준비한다는 얘기를 꺼내면 대부분 

'그래! 멋진 브랜드 한번 만들어봐! 너라면 할 수 있지!!'라는 반응이지만, 

나와 파트너 그녀가 처음 의기투합 할 때 바로 의견이 일치한 부분이 있었으니, 

'브랜드 같은 거 만들지 말자, 뭐든지 팔릴만한 걸 만들자, 많이 팔리면 그게 브랜드지' 

 

지인들은 '아니, 왜? 요즘 같은 세상에 브랜드가 얼마나 중요한데~'라고 하지만, 그 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브랜드 마케팅에 빠져 일하다 5년 가까이 쉰 후 다시 복귀했을 때 가장 크게 느낀 건 '요즘은 브랜드를 고집하는 시대가 아니구나'였다. 사람들은 유명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심지어 듣보잡 제품이라도 나의 판단 기준(가격, 후기, 지인 추천 등)에 맞으면 쉽게 구입을 결정한다. (내 기준에) 철학도 스토리도 없고 심지어 비슷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브랜드들이 넘쳐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시대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브랜드 충성도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어버린 듯했다. 

(물론 이런 내 생각은 업종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것이고, 브랜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거대 글로벌 브랜드에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그녀와 나에게 브랜드란, 브랜드의 비전에서부터 미션, 철학, 상품 등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관통시킬 수 있는 스토리와 탄탄한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를 컨텐츠와 커뮤니케이션까지 적용해야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각자 직업과 회사가 있는 상태에서 근무 외 시간에 효율적으로 준비해서 빠르게 치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고, 당연히 마케팅할 수 있는 돈도 충분치 않다. 녹차 한 잔 마시겠다고 아궁이에 솥단지 걸어 물 끓일 시간과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브랜드를 하지 말자는 것은,  이 부분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지 말고 최대한 심플하게 시작해 보자는 뜻인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우리는 브랜드 이름까지 지었다. 

1차 품목을 검토 하고 테스트를 시작할 무렵 브랜드 이름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을 때, 우리의 원칙은 딱 하나였다. 

'쉽고 재밌게'

그러나, 아무리 쉽게 대충 하려고 해도, 원래 하던 습성이 남아 있는지라 무료 네이밍 사이트부터 오만데를 다 뒤져가며 나름 우리의 의미를 가지면서도 부르기 좋고 쉽게 기억될 수 있는 이름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 

막상 브랜드 네이밍을 정하려고 보니 그놈의 '쉽게'는 너무 어려웠다. 그렇게 헤매기를 몇 주... 결국 어느 날 우리는 진짜 쉽고 재밌게 정해버렸다. 

상표로 인정될 수 없을 만큼 대명사 같은 단어의 철자를 순서를 뒤집어쓰고, 우리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따서 붙인, 남들이 들으면 '장난하나? ' 싶을 만큼 황당한 뜻을 가진 멀쩡한 단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의 이름을 붙였다니, 우습게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은 나중에 브랜드 설립자의 스토리를 마케팅하기 위한 나름의 진지한 포석이었다. 



그리고, 그 단어는 

내 파트너에 이어 큰 어려움을 해결해 준 두 번째 지인을 통해 아주 멋지게 디자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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