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은 못 받는 편지 쓰기
아들 첫째 큰 이쁜이가 여름 기숙 학원에 들어갔다.
3주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늦게 공부를 시작한 아이에게는 마지막 기회이자 매우 중요한 시기일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기숙학원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아이의 실력에 맞는 학원을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학생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시설이나 식사는 어떤지 등을 중요하게 살펴서 골랐고 다행히 마감전에 등록할 수 있었다. 평소 공부에는 무심하면서 잔소리만 했지만, 아이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 나서서 도와주어야 했다.
학원에는 학업용 전자기기 외에는 모든 미디어가 소지 불가다. 핸드폰은 입소할 때 담임에게 제출하고 퇴소할 때 돌려받는다. 입소 첫날 저녁 배정받은 담임의 연락처가 안내되었지만, 막상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자니 좀 지나친 것 같아 자제하고 있다. 요즘은 군대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에게 부대에서 밴드를 만들어 사진을 올려준다는데, 그걸 보고 부대에 연락해서 아이가 선크림은 발랐는지 밥은 먹었는지 등을 물어본다고 하더라. 아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극성 부모가 되는 거 같아 내키지 않기도 했고 아이가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그럼, 아이와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나... 그냥 무작정 기다려야 하나 싶었는데, 안내 문자를 다시 살펴보니 학원 홈페이지에 부모님 서신이라는 게시판이 있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편지를 작성하면 저녁마다 출력해서 전해준다고 한다.
아... 편지라...
과연 부모들이 편지를 얼마나 자주 쓸까... 싶었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입소 첫 날밤을 보내고 다음 날 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부모님이 쓴 편지가 엄청나게 등록되어 있었다. 비밀게시판이라 제목밖에 읽을 순 없지만, '사랑하는 나의 @@야~~', '우리 아들 보구시퍼~~' 등등 애정이 흘러넘치는 제목의 편지가 잔뜩 올라와 있었다.
이런... 생일에 카드도 주지 않는 엄마인데, 이런 편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했다. 아들이 엄마의 편지를 반가워할지 제대로 읽기나 할지도 의문이었지만, 다른 친구들이 다 부모님 편지를 받을 때 우리 아이만 편지를 못 받는 난감한 상황을 만들 순 없었다.
편지를 쓰기로 맘먹고 나니, 무슨 내용을 적어야 할지 또 난감해졌다.
똑같은 안부를 매일 묻기도 그렇고 공부에 대해 자세하게 얘기하자니 그것도 스트레스가 될 거 같아 아예 안 읽을 거 같았다. 그래도 첫 번째 편지는 안부와 걱정을 담아 적었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게시판에는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제목의 편지들이 가득했다.
무슨 내용을 써야 될지 고민하기보다 아이에게 평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적어보기로 했다. 아마도 지금의 아이에게는 관심사가 아닐 것이고, 이런 내용이 오히려 서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엄마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동안 아이에게 했던 나쁜 말과 행동들에 대한 사죄까지 담아 일기 쓰듯 적어보자. 그러자 편지 쓰기가 조금 수월해졌다. 어쩌면 아이도 좋아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안드레아의 룽잉타이는 아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에 나의 마음을 어떻게든 전해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여기고 매일 편지를 써야겠다. 아이가 편지를 제대로 읽을지 조차 모르고 답장은 당연히 받을 수 없지만, 그래도 엄마의 마음 한 조각이라도 봐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기한도 횟수도 정해진 일방적인 편지지만, 아이가 최선을 다하는 동안 나도 편지를 쓰는 시간 동안만큼은 아이에게 정성을 다해야지.
나의 편지로 너를 더 이해할 수 있기를, 네가 엄마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기를.
사랑해 우리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