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여사 Jun 30. 2023

퇴사를 준비 중

회사도 남편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글을 쓰려고 하고 있지만, 서랍에 저장만 할 뿐 발행을 못하고 있다. 


남들에게 보여줄 멋진 글을 쓰려고 작가 신청을 한 건 아니었고 속으로 삼켜야 하는 버거운 감정들을 쏟아낼 곳이 필요해서 작가 신청을 한 것이었는데, 막상 브런치를 시작하고 다른 글들을 읽어보니 나처럼 가벼운 이유가 아니라 정말 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도 많고 생각보다 재미있고 다양한 글이 넘쳐났다. 

그냥 끄적이는 게 아니라 제대로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슬그머니 생겨났다고,

더불어 걱정도 생겼다. 


누군가 날 알아보면 어쩌지 

혹은

아무도 안 읽어주면 어쩌지




오십을 코 앞에 둔 나이였는데, 누구 덕분에 사십 대 후반이 1년 더 연장되었다. 

이 나이까지 직장 생활하며 괜찮은 대우를 받고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지만, 올해를 끝으로 마무리하려고 준비 중이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이라는 곳에 취업을 했고, 생각지도 못했던 업종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다. 

다행히 적성에 맞았고 취향에도 맞아서 해야 되는 일은 열심히 했고, 잘하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포상도 받고 연봉도 오르고 성취감도 생기고 더 더 열심히 하고 싶었지만, 결국 탈이 났다. 

번아웃.

그렇게 15년 차에 갑작스레 퇴사를 결정하고 뜨개인이 되겠다고 기웃거리다 다시 5년 만에 직장인이 되었다. 대기업 15년, 백수이자 프리랜서 5년을 보내고 선배의 요청으로 조그만 스타트업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원했던 연봉에는 못 미쳤지만 바뀐 업계 환경을 익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다시 지금의 회사로 옮겨 3년째 근무 중이다. 

그리고, 조용히 퇴사를 준비 중이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일반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늘 불안하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동료나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팀장이건 임원이건 대부분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버티고 산다. 

아이들은 커 갈수록 학원비나 용돈 등 들어가는 돈의 규모가 달라지고,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자주 아프며, 부동산이나 주식을 하느라 대출이 당연하다. 그리고 내 몸도 여기저기 탈이 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쉴 수도 멈출 수 도 없다. 

40대 후반이라는 나이는 내 혼자 몸이 아니다.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몸이고 부모를 챙겨야 하는 몸이라 나 혼자 소박하게 살겠다고 함부로 일을 그만둘 수 없으니, 그만둬야 되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잘리기 전까지) 그저 버티는 것이다. 


내 몸만 버틴다고 될 게 아니다. 

마음도 버텨야 한다. 

회사 스트레스를 버티는 건 당연하고, 아이의 사춘기라는 고달픈 시기도 버텨야 하고 아이가 공부를 잘 하건 못 하건 입시도 치러야 한다. 

그리고, 남편과의 삶도 버텨야 한다. 




버티는 삶은 고단하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배우자와 함께 나눠지고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편안한 노후를 보내기로 약속하며,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삶이 아니라서 더욱 고단하다. 습관처럼 남편에게 기대고 미루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마다 남편에게 더 싸늘해지는 마음을 감추고 표정을 바꾸고 평정심을 찾은 듯 가면을 쓰는 마음은 속에서 독이 되어 무력감과 우울감으로 이어 진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하니 더 힘들다. 

결국,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부모의 결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그렇게 결정했다. 


그렇지만 불안하다.


스무 살에 만나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절반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한 남편이다. 

모든 순간에 남편이 있었고, 모든 결정에 함께 했었다. 

부부 싸움이 극에 달했을 때, 변해버린 남편의 태도와 극단적 행동에 대한 트라우마로 우울증에 걸려 치료를 받는 기간에도 나는 죄책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남편이 그렇게 변해 버린 게 온통 내 잘못인 것 같았다. 

남편이 그 당시 어떤 마음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변하면 남편의 마음이 편해질 거라 생각하며 최대한 그를 자극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는 다른 여자에게서 위로를 찾았고 그동안 나는 바보같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버티고 불안한 삶을 끝내려면 결국은 내가 혼자 서야 한다.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서야 한다. 

직장도 남편도.


그래서 퇴사 시점을 정하고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준비 중이다. 다행히 뜻이 맞는 친구가 있어, 회사에서 여유 있을 때나 평일 저녁에 틈틈이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해왔던 일이라 크게 어려움은 없지만 누군가 자금 투자를 해준다면 더없이 좋겠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지만, 미래를 그리고 준비하는 나 자신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 발짝 나아간 것 같고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아주 잠깐.


그리고 다시 슬픈 마음이 올라온다. 

아직은 어쩔 수 없겠지.

그냥 이렇게 지내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어떻게 한 번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