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싶으면 바로 하산해서 집으로 돌아와!
드디어 토요일 아침이다.
출근도 등원도 없는 오늘은 가족 구성원 누구나 편하게 늦잠을 즐길 수 있는 날이었지만, 아들은 늦잠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어나 아빠! 오늘 우리 전월산으로 캠핑 가는 날이야!”
산으로 가는 캠핑.
그렇다. 아들은 아직 백패킹이란 표현을 모른다. 알려줘야겠다.
먹고 마실 거리를 배낭에 넣고 최종 점검을 했다. 아빠의 배낭은 20kg, 아들의 배낭은 3kg. 절대 만만치 않은 무게다.
“혹시라도 가서 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하산해서 집으로 돌아와! 자주 연락하고!”
걱정 가득한 엄마를 향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볼링을 칠 때 좌우 어프로치에 먼저 들어온 사람이 있다면 그가 먼저 볼을 굴리고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 볼을 굴려야 하는 것과 같은 에티켓이 백패킹에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산행객들에게 피해나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일몰에 가까운 늦은 오후나 저녁에 텐트를 설치하고, 같은 이유로 이른 아침 또는 일출 전후에 텐트를 철수하는 것이다. 백패커(backpacker)들은 하룻밤 신세를 지기 위한 설영 포인트를 ‘박지(泊地)’라고 부른다. 오늘 우리의 박지가 산행객들이 많이 찾는 등산로에 면해있다면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면 상대적으로 더 여유 있게 체류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 전월산은 해발 260m로 고도는 높지 않지만, 세종호수공원과 정부종합청사, 금강수변공원과 국책연구단지 등을 조망하는 뷰 맛집이다. 게다가 주차장과 등산로 입구의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어 이른 시간부터 늦은 시간까지 제법 많은 시민이 찾는 세종의 산행 명소다. 정상까지는 ‘무궁화테마공원’ 쪽에서 오르는 길과 세종시의 첫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세종리 은행나무’로 잘 알려진 양화리에서 오르는 길이 있는데, 수년째 진행 중인 양화리 인근의 개발 공사로 인해 등산객 대부분은 현재 무궁화 테마공원 쪽으로 입산하고 있다. 우리가 목적하는 박지는 정상에서 양화리 쪽으로 내려가는 중턱에 있으니 비교적 여유롭지 않을까 예상했다.
오후 네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아들과 나는 각자의 박배낭을 메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들도 아빠도 처음 느껴보는 묵직한 등짐의 무게. 두 다리를 돕기 위해 한 쌍의 등산 스틱을 한쪽씩 나눠 들었다. 등산 스틱은 좌우 한 세트로 사용해야 효과가 있지만, 아직은 중간중간 아들의 손을 잡아줘야 할 때도 있고, 또 아들에게는 오가며 줍는 솔방울과 나뭇가지가 산행의 즐거움 중 하나이기에 둘 다 한 손은 비웠다.
가파른 바윗길을 마주할 때면 나뭇가지를 한 줌 주워가는 아들에게 “아들, 아빠 손잡을까?”하고 물어보았다. 아들은 때론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젓기도, 또 때론 성큼 손을 맞잡았다.
우리가 산에 오를 무렵, 등산객 대부분은 이미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제법 산 좀 타본 다섯 살은 마주 오는 산객 한 명 한 명에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낯선 사람과의 일상 속 인사에 다소 인색한 우리나라 사람들도 산에서만큼은 인사에 후한 편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마주 오는 이들에게 “안녕하세요~”, “안산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물론 그런 인사 따위에는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하게 지나치는 이들도 있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걷거나 뛰는 이들도 있지만, 분명 상대적으로 산에서는 좀 더 편하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어린 꼬마가 인사를 하며 스치면 어른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씩씩하다, 용감하다, 기특하다’라는 덕담을 해주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주머니와 가방을 뒤져 사탕이나 초코바 등을 아들 손에 쥐여 주기도 했다.
그렇게 약 마흔 번 남짓 인사를 하고 나니 능선에 다다랐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야외에서도 마스크 착용은 필수지만, KF94를 착용하고는 도저히 산을 오르내릴 자신이 없어 상대적으로 호흡이 원활한 비말 마스크를 착용했는데도 숨이 가빠왔다. 정상석을 약 200여 m 앞둔 곳에 있는 상여바위에 도착했다. 전월산 최고의 뷰 포인트. 그 위에 올라 세종시 전경을 시원스럽게 내려다보며 흘린 땀을 닦았다. 잠시 갑갑한 마스크를 턱에 내려걸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수없이 올라왔던 산이지만, 첫 백패킹이라는 설렘과 기대를 가득 담은 배낭을 둘러멘 오늘은 감회가 새롭다.
정상석에 도착해서 아마도 오늘 마주칠 마지막 등산객들이 아닐까 싶은 중년 부부의 손을 빌려 사진을 남겼다. 잠시 숨을 돌리고 용천(龍泉, 전월산 정상부에 있는 샘)을 지나 양화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며느리바위를 지나 긴 목조 데크 계단을 내려가면 드디어 오늘 하루 우리의 집터가 되어줄 박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 길은 밧줄을 잡고 오르는 가파른 산길이었다고 한다. 충청남도 연기면이었던 이 지역에 세종시가 자리 잡고 행복도시가 들어서며 전월산을 찾을 더 많은 산행객을 위해 나무 데크 계단이 설치된 거다.
현재 시각 17시 10분, 쉬엄쉬엄 왔는데도 아직 해는 중천이다. 일몰까지는 아직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등산객들은 모두 하산한 듯했지만, 배낭을 내려놓고 일몰이 가까워져 올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올라오며 찍은 사진과 함께 우리 소식을 아내에게 남기는 동안 아들은 탐험에 나섰다. 어디선가 돌무더기와 나뭇조각을 모아 와서 땅을 파고 흙을 덮으며 이런저런 상황극 놀이에 빠진 다섯 살 아들. 요즈음 놀이터에서는 좀처럼 할 수 없는 놀이다.
내가 어릴 적엔 동네 여기저기에서 흙이나 모래를 만지며 놀 수 있는 환경이 많았다. 적어도 내가 아들과 같은 나이에 유년 시절을 보낸 여의도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화단에 들어가서 노는 것이 딱히 눈총 받거나 꾸지람을 들을 일은 아니었고, 매일 같이 놀이터 모래밭을 뛰놀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 사뭇 다른 요즘의 놀이터는 모래 대신 탄성고무칩 바닥재로 마감되어 있고, 대다수의 아파트 단지는 조경과 잔디 보호 등을 이유로 아이들의 화단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나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돌과 흙을 만지며 자라야 한다고 믿는다. 어릴 적 아이들이 자연스레 접하는 흙이나 모래, 돌, 나뭇가지 등의 자연물 놀이는 아이들의 감각을 발달시켜 주고, 나아가 아이들의 습득 능력과 인지능력 발달을 돕는다고 생각한다. 자연 속의 다양한 미생물과의 접촉을 통해 키워진 자연 면역력은 아이가 한층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자연물 놀이를 자주 하고 미생물에 노출 경험을 쌓는 것이야말로 일상의 백신이 아닐까 싶다. 물론 깨끗하게 소독된 장난감과 각양각색의 놀이 기구가 즐비한 키즈카페에서의 하루도 아이들에겐 즐거움이고 기쁨일 수 있겠지만, 이미 도심에서의 일상이 삶의 전반을 차지하는 다섯 살에게 특별한 즐거움과 경험을 주고 싶었다. 그런 아빠 마음을 헤아려 주듯 자연물 놀이에 몰두하는 아들이 참 고마웠다.
아들의 갸륵한 마음에 부응하기 위해 나도 동심으로 돌아가 아들과의 놀이에 마음껏 빠져들었다. 놀아주는 게 아니라 정말 같이 놀았다. 때론 정말 또래 친구인 듯 생떼를 부려보기도 하고 “치- 그럼 난 이거 안 할래!”라며 으름장을 놓아보기도 했다. 마치 다섯 살 아들보다 한 살 위 여섯 살 아빠가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들과의 놀이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거렸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양화리 쪽으로 하산하는 등산객은 없는 듯했다. 누군가 온다면, 아마도 나와 같은 목적으로 이곳을 찾은 백패커가 아닐까 생각하며 배낭을 열었다. 먼저 체어를 조립하고 텐트를 설치했다. 침낭과 매트를 펼쳐 놓은 후 아들과 나란히 체어에 앉았다. 오늘 하루 머무를 보금자리를 짓고 나니 아들과 함께하는 백패킹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실감이 났다. 붉게 타오른 노을을 배경으로 삐악삐악 하는 어린 동생과 함께 집에 있을 아내에게 보낼 사진을 남겨보았다. 서로의 손 맞닿은 큰 하트도 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