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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잡담 Dec 04. 2023

종교에 대해서

종교에 대해서


내가 사는 아파트는 한 층에 두 가구가 산다. 때문에 맞은편 집이 유일한 이웃이다. 그 집은 한동안 비어있다가 중년 부부가 이사 왔다. 그런데 그 집에 못 보던 명찰이 붙어있다. “십자가-XX 교회”

마주치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그 집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거나 내릴 때가 있다. 남자는 출근하고 그 집 부인과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처음에는 인사만 나누는 정도였는데, “이웃”이라는 동질감 때문인지 어색함은 금방 없어졌다.  

   

어느 날 그 집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다. 그 집에 들어가니 삼겹살 세팅이 다 되어 있었다. 식탁에 앉아 고기를 집어 먹으려니 뭔가 허전했다. 술이 없는 것이다. 그들 부부는 원래 술을 안 한다고 했다.

삼겹살만 먹으려니 느글거려서 도저히 목에 넘어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내 방에서 소주 두어 병을 조달해 왔다. 식사 중에 대화가 오갔다. 그 집 부인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교회 다니세요?”

“아니!”

“구원을 받으셔야죠.!”

“구원받았는데.”

“뭘 어떻게 무슨 구원을 받았는데요?”

“이 나이에 쪼들리지 않고 사니까 빈곤에서 구원받은 거고, 불치병 없이 아직은 건강하니 중환자실에서 구원받은 거고, 뭐 여러 가지 구원받은 게 많지!”

“아니 영혼을 구원받아야죠!”

“그것도 구원받았는데!”

“교회도 안 간다며 무슨 구원을 받아요?”

"이 나이에 치매 걸리는 사람도 있는데 아직 멀쩡하니 영혼도 구원받고 정신도 축복받은 거지!"

"예수님은 믿으세요?"

"주(酒)님을 믿지!"

"말로만 말고 진심으로 믿어야죠!"

"아니 그럼 진심이지 장난으로 믿을까 봐! 잠 못 이루는 밤엔 주(酒)님의 은총으로 꿀잠도 잘 와!"

내가 술병을 들며 말하자 장난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눈치챈 듯싶었다. 갑자기 내 등을 한 대 후려갈기며 말했다.  "오라버니 장난 좀 그만해!" 그녀는 삐졌고 더는 대화가 없었다.  

   

 며칠 뒤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시 만났다.

"연세도 있으신데, 천국 가셔야죠!"

"지금 여기가 천국처럼 좋은데 무슨 천국을 또 가?"

"아니 죽은 다음에요"

"살아있을 때 천국이면 됐지, 죽은 다음까지 바랄 거 뭐 있나? 욕심부릴 걸 부려야지……."

또 삐졌는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그녀는 인사도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솔직히 그렇다. 현실만 느끼고 살기에는 세상은 너무도 삭막하다. 인생은 허무하고 공허함을 채워 줄 그 무엇인가가 인간에게는 필요하다.

진실이 아니더라도 성냥팔이 소녀가 보았던 환상이 필요하고, 아름다운 비너스가 살아있는 신화도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는 성탄절 날 산타클로스가 온다는 현실 이상의 순수한 믿음도 필요하고, 진시황 바람처럼 영생할 수 있다는 소망도 필요하다.

생명에 보편적인 진리나 도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기적인 유전자 본능, 자신의 안락과 행복을 추구하는 생명 유지수단만 있을 뿐이다. 때문에 종교든 신화든 마약이든 사이비든 개인의 믿음은 잠시나마 행복 플라세보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환상 속에서 사는 것도 하나의 인생일지도 모른다.


소위 "화물신앙"이라는 것이 있다.

태평양 멜라네시아와 뉴기니섬에서 발생한 화물숭배의식은 새로운 종교가 극도로 빠르게 생겨나 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와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책에 언급된 이야기다.

외부와 단절되어 있던 파푸아 뉴기니 원시 부족들은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들어온 미국 군인을 통해 비행기 등 여러 현대식 문명을 처음 접하게 된다.

그들은 백인들이 비행기로 화물을 운반해 오는 것을 봤다. 백인들은 물건을 만들지도 않았는데,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신기한 물건들이 실려 왔다. 원주민들은 신이 백인들에게 화물을 보내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부족민들은 한 번도 본적 이 없는 유용한 물건(사탕, 껌, 잼, 약, 옷감 등)을 미군을 통해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백인들은 거대한 새(비행기)와 바다 괴물(항공모함)을 타고 세상 끝으로 사라졌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부족민들은 이전처럼 진귀한 물건(미군 물자)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을 다시 얻고 싶었지만, 그들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도 백인들과 똑같이 행동하면 신한테서 화물을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즉, 의식을 통해 화물이 재림하리라는 신앙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나무로 비행기, 관제탑을 만들고 모형 헤드폰을 쓴 관제사들까지 배치했다. 활주로 비슷한 걸 만들고 전등을 흉내 내서 횃불을 밝혔다. 이런 의식은 섬에서 섬으로 급속히 퍼졌다.

 가장 황당한 것은 서양인 선교사가 원주민에게 공장에서 물건이 생산되는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아무리 설명을 해 주어도 그들은 선교사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화물신앙도 2천 년쯤 지나면 오늘날의 기독교처럼 하나의 복음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할지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상과 이념은 변질된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인류 초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나 사건을 신의 뜻, 신의 행위로 인지했다. (천둥, 번개, 화산, 가뭄, 홍수, 질병….) 그러다가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나 사건을 기대하는 것으로 신념의 성격이 바뀌었다(기적, 천국, 영생, 메시아 재림…….). 있지도 않은 것, 일어날 수 없는 것에 대한 믿음, 그것이 신앙의 본질이 되었다.

신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있거나 말거나. 하지만 신이 있다는 믿음은 필수적이다. 화물신앙을 예로 들자면, 화물은 신이 만든 것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지만, 신이 있건 없건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원주민에게 중요한 것은 "신이 있다는 믿음" 그것이 그들의 종교이고 신앙의 핵심이다. 그것이 자자손손 전해져 화물의 재림을 기다리게 한다.

기독교를 비롯한 세계종교들은 이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고 책의 저자들은 말한다. 과학이 발달하고 논리와 판단능력은 높아졌어도 인간 심리는 여전히 원시 부족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인공위성이 날아다니는 이 시대에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원시 부족이면 어떤가? 화물을 숭배하든 비너스를 숭배하든 개인 스스로가 만족하고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 것은 어떤가? 못생기고 나약하고 못 미덥더라도 아무 상관없다. 어차피 무엇을 믿든 환상이기는 마찬가지니.

혹시 누가 알겠는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간절하면 재수 없게 로또 1등이 당첨되거나 반갑지 않은 초능력이 생기거나 그도 아니면 웬수 같은 첫사랑이 다시 찾아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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