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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용 Oct 20. 2015

구렁이 담 넘어가듯

구렁이는 왜 담을 넘어야만 했을까?

         

일을 분명하고 깔끔하게 처리하지 않고 슬그머니 얼버무려 버림을 이르는 말.               

        

'구렁이 담 넘어가듯'은 평소 대화 중에 간간이 사용하는 속담이다. 실제로는 보기도 어렵고 생각만 해도 혐오스럽지만, 동물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면 호기심에 눈을 떼지 못하고 보는 것이 또 뱀이다. 누구든 뱀에 대한 인식은 비슷할 것이다. 본 속담 역시 뱀이 등장하다 보니 그리 좋은 의미가 아니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처리가 분명하지 않고 은근슬쩍 얼버무리는 사람에게는 가장 적당한 말이기에 가끔씩 내뱉곤 한다. 도대체 이런 속담은 왜 생겨나게 되었는지, 구렁이는 진짜 담을 넘었는지 궁금하다.     


구렁이 얘기에 앞서 먼저 '담'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담이란 집의 둘레나 일정한 공간을 둘러막기 위하여 흙, 돌, 벽돌 등으로 쌓아 올린 것을 말한다. 즉, 영역의 경계를 표시하는 장치다. 보통의 서양 건축은 현관에서 방범의 기능이 잘 되어 있기에 외부 담장을 가벼운 재료로 낮게 설치하기도 하지만, 한옥은 일단 마당에 들어서면 집안으로 아주 쉽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담을 든든하게 세울 필요가 있었다. 이때 담을 만드는 재료는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흙과 돌을 사용했으며, 경제 형편이 어려웠던 서민들은 싸리나무를 엮어 담장을 만들기도 했다. 

    

보통 한옥의 담은 까치발을 딛고 담 너머 이웃과 눈을 마주하며 대화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 이유는 이웃끼리 서로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농경사회에서 이웃과 친하게 지낸다는 것은 산업의 부흥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농사를 지을 때 서로 품앗이를 하면서 힘을 모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품앗이는 단지 서로 노는 일손을 돕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었다. 넓은 논이나 밭에서 농사를 지을 때 혼자서 고군분투하다가는 자칫 '시기'를 놓치면 큰 일이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여 '때'를 놓치지 않아야 했다. 농사는 오뉴월 하루 볕의 차이가 매우 크다. 음력으로 오뉴월이니 양력으로는 대개 육칠월이다. 때에 맞춰 심은 식물이 조금씩 자라다가 이 시기에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더욱 충실히 자라게 되면 단 며칠 상관이라도 결실의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일을 하는 것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파종의 때, 그리고 수확의 때를 놓치기라도 하면 수확량이 엄청나게 줄어들 수도 있다. 그래서 서로가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품앗이를 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때로는 이웃끼리 불편한 일이 있어도 오랫동안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불편하기 보다는 살아야 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상반된 개념인 '프라이버시'와 '소통'을 적절히 조절할 담장의 높이가 필요했겠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이웃이 보이지 않는 정도의 높이로 만들되, 필요한 경우 까치발을 들고 소통이 가능하도록 담의 높이가 정해졌다. 물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키가 기준이 되었으리라.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cc_photoshare/10851006076/in/photolist-hwSf4E-hwRMcH-hwSjBY-hwSKgL-


한옥의 흙 담 위에는 기와로 만든 갓이 씌워져 있다. 

초가집에는 지푸라기로 만든 갓이, 기와집에는 흙을 구워 만든 기와가 덮개처럼 덮여 있는 것이다. 지푸라기 덮개나 기와가 있어서 한옥의 정감을 드러내고 있고 또 시각적으로도 보기 좋다. 그러나 덮개나 기와를 씌운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담장이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흙 담 위에 비라도 오게 되면 빗물은 그대로 담장 위에 고이거나 스며들어 흙 담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빗물을 빨리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흙으로 윗부분을 뾰족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봤자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지푸라기나 기와를 이용해 모자처럼 담장 위에 씌우는 것이다. 그러면 담장 위에 빗물이 고일 염려 없이 바로바로 흘러내리게 된다. 그렇다면 돌로만 만들어진 담은 어떨까? 돌은 아무리 비를 맞아도 상관없다. 그래서 돌담장위에는 굳이 지푸라기 덮개나 기와를 얹지 않아도 무방하다. 제주도의 돌담장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대궐이나 관청처럼 규모가 크고 시각적 미관이 중요한 건축물의 담장은 화강석을 쌓아서 만들었을지라도 그 위에 기와를 얹어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예쁘게 디자인을 한 셈이다. 

    


속담 속에 나오는 구렁이는 변온동물이다. 변온동물은 기온에 따라 자유자재로 체온을 조절한다. 그래야 가진 에너지를 최소로 사용하며 생명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온동물인 경우 에너지의 대부분을 체온을  유지하는 데 사용한다. 그래서 계속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에 비해 변온동물은 체온을 떨어뜨려 움직이지 않고 버티며  몸속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다. 대신 체온이 떨어지면 당연히 혈액 순환이 잘 안되기 때문에 몸의 움직임이 상당히 느릴 수밖에 없다. 기온이 높아져 온도가 올라가면 혈액도 따뜻해져 흐름도 원활해지니 그제야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뱀이 해가 좋은 날 바위 위에서 일광욕을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땅꾼들은 이런 점을 이용해 주로 겨울철에 뱀이 잘 움직이지 못할 때 뱀 굴을 찾아내 뱀을 잡는다.   

  

구렁이가 지붕 속에 사는 이유는 그곳에 먹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구렁이의 먹이는 주로 쥐, 새, 굼벵이 등이고, 그중에서도 쥐는 구렁이에게는 매우 중요한 식량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쥐를 구렁이가 잡아먹으니 좀 징그러워도 사람이 사는 집에서 함께 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쥐, 새, 굼벵이는 왜 지붕 속에서 살까? 그들 역시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야생 자연보다도 사람이 사는 집에서는 먹을 것을 구하기 쉽고, 비를 피할 수도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이니 온도와 습도도 적당하다. 게다가 독수리나 매 등 맹금류가 오지 않기에 천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먹이사슬이 존재하는 이상 어느 곳도 안전할 수는 없다. 결국 지붕 속 먹이사슬의 최종 승자는 구렁이가 된다.   

   

구렁이는 대개 초가지붕 속에서 살았다. 흙으로 가득 메꿔진 기와지붕에서는 살 곳이 마땅치 않고 먹을 것도 없는 반면 초가집은 풍성한 편이었다. 서까래 위 지붕 속 지푸라기 사이에 살면서 봄부터 가을까지 대략 100마리 정도의 쥐를 잡아먹는다는 설도 있을 정도니 사람에게는 얼마나 유익한 일인가? 쥐가 많아지면 식량문제도 생기지만, 유행성 출혈열 등 병균에 감염될 위험도 높아지게 된다. 구렁이가 더 많은 쥐를 잡아주면 좋으련만, 요새는 구렁이의 서식지 자체가 아예 없어져서 찾아보기도 힘들다. 또 한때 잘못된 보신문화로 인해 많은 구렁이가 희생되기도 했다. 이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보호하지만, 겨우 동물원에나 가야만 볼 수 있는 실정이니 속담 속 구렁이는 멀기만 하다.



초가지붕 속에 살던 구렁이가 그 집을 떠나기도 한다. 

우리 선조들은 구렁이가 집을 떠나면 불길하다고 여겼다. 그동안 유지되던 작은 생태계에 변화가 생긴 셈이다. 구렁이는 왜 집을 떠나는 것일까? 더 이상 먹이가 없기 때문이다. 쥐도 없고, 굼벵이도 없고, 작은 새도 없는 상황이  계속되니 이럴 때 배고픈 구렁이는 그 집을 떠나 옆집을 향해 담장을 넘어간다. 구렁이는 어떻게 담장을 넘을 수 있을까? 흔히들 구렁이가 마당으로 기어 나와 담장을 수직으로 타고 넘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구렁이는 담장 옆으로 기어갈 수는 있을지언정 수직의 담장을 타고 넘지는 못한다. 설령 얼마간 수직으로 올라갔어도 위에서 말한 담장의 모자, 즉 덮개나 내민 기와에 가로 막혀서 타고 넘어서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란 속담은 생겨났다.       


구렁이는 마당에서부터 수직으로 담장을 넘을 수는 없지만 지붕에서 그보다 낮은 담장으로는 넘어갈 수는 있다. 초가집 처마 끝에서 몸을 내밀어 처마보다 낮은 담장 위로 긴 몸을 걸치게 되는데, 마침 이 순간을 사람이 보면 마치 긴 막대기가 처마와 담장 사이에 걸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지된 막대기 같았는데 어느 순간 꼬리까지 담 너머로 슬며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다면 오싹하며 소름도 끼치겠지만 은근슬쩍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이 상황이 바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다. 


때로는 은근슬쩍 넘어가야 할 상황도 있겠지만, 보통의 상식으로 서로 원만한 대화와 협력으로 함께 이해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가 더 아름답고 멋진 것은 분명하다. 구렁이가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듯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하는 어정쩡한 일도 사라진다면 더 밝고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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