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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jin Oct 12. 2022

2022년 4월 어느 날 발코니에서

  

    날씨가 짜증 나게 좋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습하지도 않고, 기분 좋게 바람이 솔솔 불어서 짜증이 난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갇혀 있으니 짜증만 난다. 

 남편은 방에서  화상 회의 중이고, 아이는 서재에서 온라인 수업 중이다. 점심 먹고, 부엌 정리를 하고 내가 유일하게 앉아서 혼자 있을 수 있는 오후 시간, 날씨가 좋아지면서 ( 시작은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처음엔 커피 한잔, 그다음엔 맥주 한 병, 이젠 와인...... 이 시간이라도 있으니 살 거 같다. 그런데 서글프다.

  

 갇힌 지 2달이 넘었다. 처음에는 일주일만 있다가 풀어 준다더니, 기약 없이 야금야금 늘어만 나고, 이제는 아무도 언제 나갈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도, 물어보지도 않는다.  

 

  

  아파트 한 주민이 자기네 와이너리산 와인이 창고에 쌓여 팔 길이 없으니 싸게 판다고 해서 산 와인을 한병 꺼내 들었다. 백인 친구들이 알려준 수입 마트를 통해서 산 치즈와 햄도 꺼냈다. 

 101호 정원에선 바비큐 파티를 하는지, 시끌벅적하다. 온라인 수업이 일찍 끝난 저학년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는지 자전거 페달 도는 소리도 들리고, 공이 튀겨지는 소리, 그리고 강아지 산책을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음악이 필요한 거 같아, 중국과 상관없이 살던 나의 반짝거리던 10대와 20대에 닳고 닳도록 들었던 노래를 틀어본다. 남편과는 이런 것들을 공유할 수 없다. 그도 나와는 공유할 수 없는 그의 문화가 있다. 문득 한 주에 두세 번씩 만나던 다른 아파트에 갇혀 있는 친구가 생각이 나 전화를 걸어봤다. 그녀도 발코니란다. 남편이랑 거기에 앉아 애들이 온라인 수업하는 동안 나처럼 와인을 마시고 있단다. 날씨는 왜 이리 좋냐고 짜증 난다고...... 나는 집순이지만, 하루라도 집에 있는 날이 없던 그녀는  동네에 확진자가 나와 아예 문 밖을 나가지 못하니, 나보다 더 힘든 듯했다.  남편이랑 U2를 듣고 있다고 해, 나는 스파이스 걸즈를 듣고 있다고 했다. '그땐 우리는 중국과 상관없이 살았는데 그렇게 쭉 상관없이 살았어야 이 꼴을 안 당했을 텐데' 하며 의미 없는 수다를 떨고 통화를 끝내니, 바람이 불어온다. 살랑살랑 습지 풀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오고 취기가 돈다. 

   

  이곳의 사람들은 그냥 살아간다. 갇혀 있어도, 아파트 단지 담장밖에 아우성이어도, 일단 지금 문제가 없으니, 그리고 거기에 묻혀 나도 살아가고 있다. 나가지 말라고 하니, 그냥 이렇게 나가지 않고, 자체적으로 공동 구매라는 방법을 통해 온갖 것들을 다 공급받아가며,  아무 문제없이 이렇게 화창하고 좋은 날씨를 즐기면서....... 


  매일 발코니에 앉아 술을 한두 잔 하고 음악을 듣고, 답답해하는 나를 남편은 신기하게 구경한다. 

''지금 너희들이 당하고 있는 이 일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고, 합당하지도 않고, 심지어 방역을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들리는 대답은 늘 같다. " 그래서? 뭘 할 건데?"   이들도 알고는 있다. 매일 밤 아파트 단체 챗 방에는 여러 동영상이 업로드된다. 코로나랑 상관없이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 이야기, 물자가 부족해 시위하는 사람들, 그 물자를 중간에 가로채어가는 주민회 이야기,  외지에서 와 오도 가도 못하고 상하이 어느 다리 밑에서 노숙하는 배달원들,  열악한 격리소 환경 등등. 그렇지만  그 동영상을 사람들은 보기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 알고는 있지만 굳이 꺼내어 문제를 만들지는 말고, 내 살 길을 조용히 찾는다>>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렇게 침묵을 지킬 수 있는 것인가?


 문득 "상록수"가 듣고 싶어 스피커 볼륨을 크게 틀었다. 우리는 이랬다던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이들이 답답하다. 이 좋은 날씨에, 갇혀서 유유자적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미치도록 답답하다.  그리고 발코니에 앉아 와인이나 홀짝거리며 앉아 있는 나는 왜 이곳에서 그들이 괜찮다고 하는데도 답답해하고 있는지...... 언제 끝이 나는지...... 이렇게 많은 인구가 있는데도, 어느 누구도 저항하지 않는다.  


 어느 화창하고도  짜증 나는 2022년 4월 어느 날 발코니에서..... 나는 절망을 느낀다.

 내 나라는 아니다.

 내 아이 아버지의 나라이고, 그 아이 정체성의 반이 이곳이다.  

 이 나라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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