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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jin Sep 29. 2022

남편의 출장

 

 상하이 봉쇄가 풀리고 나서 두 번째 남편의 출장이다.

 첫 번째는 쑤저우로 일박, 이번엔 지난으로 일박. 쑤저우로 남편이 출장을 갔을 때는 아이의 방학이 끝나지 않았을 때라, 한 끼 안 해도 된다는 해방감 -그땐 한 끼 안 하는 것이 정말 정말 큰 자유였다- 이 컸는데, 이번엔 아이도 개학을 하고 온전히 나와 하봉이(우리 집 강아지 막내)만 있는 조용한 아침과 오후를 지냈다.

  집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남편은 아침에는 보통 9시가 넘어 출근을 하고 , 오후엔(저녁이 아니고) 4시 혹은 3시쯤 조금 늦다 싶으면 6시 전에는 꼭 돌아온다, 아이에게 헌신적이고(심지어 강아지에게 조차 다정한), 가족과의 시간이 가장 행복한 가정적인 나의 중국인 남편은,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주변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싫어하고, 규칙에 맞춰 생활하고, 시간 단위로 계획을 세워 사는 나에게는 너무 버겁다.   

 출근 시간이 뒤죽박죽, 9시였다가 10시였다가 어쩔 땐 12시였다가, 귀가 시간이 오후 1시, 3시, 갑자기 예고도 없이 들어와 한참 집안일하고 있다 놀라기 일수이고, 들어오자마자 배가 고프다며 냉장고를 뒤지고, 아무거나 꺼내 먹기 시작하면 아침 내내 정돈한 것들이 흐트러지면서, 나의 하루가 통째로 뒤틀린 마음이 들어, 친절하게 대해 지지 않는다. 화도 내고, 미리 알려달라, 너는 이렇게 일해서 월급 받는 게 양심상 걸리지 않냐, 등등 싸워도 보았지만, 아이는 그런 아빠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서프라이즈 파티 같은 아빠 픽업, 문 뒤에 숨어 있다 아빠 왔다 하고 놀라게 하는 장난, 엄마가 먹지 못하게 하지만 몰래 먹는 간식 같은 것들, 강아지들에겐(예전엔 나이가 많은 봉봉이가 있었고, 지금은 하봉이가 있다) 아빠가 와서 오래, 길게 하는 산책 등등.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는 한 달에 한두 번쯤 있는 남편의 출장기간만큼, 한 달에 한두 번 며칠은 완벽하게 나의 스케줄대로 움직여졌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나면 빨래를 돌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부엌 정리하고, 청소하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 브런치 먹고, 집에 돌아와 책도 읽고, 듣고 싶었던 음악도 듣고, 아이의 하교 시간 전까지 장을 보고 간식을 만들고, 내가 정해놓은 저녁 메뉴대로 저녁을 하고...... 그래서 그럭저럭 견뎠는데, 코로나 이후로 갑작스러운 하교, 갑작스러운 퇴근, 출장 취소....... 매달 가던 출장을 한두 달 안 가더니, 웬만하면 온라인으로 재택근무 시작...... 그리고 3개월 간의 봉쇄......


 그 모든 시간을 견뎌냈더니, 남편이 출장을 갔다. 아이도 학교에 갔고, 온전히 나의 시간이다.

 어제 새벽에 집을 나간 남편 없는 하루가 얼마나 홀가분한지, 강아지와 동네 한 바퀴 돌고 와, 온 집안의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고 남편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없이 청소를 한바탕 하고 났더니 얼마나 개운한지,  아이가 돌아오기 전에, 일주일치 장을 보고, 배달을 받고, 냉장고 정리를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소파에 누워도 보고, 반찬도 만들어 놓고 얼마나 홀가분한 행복인지.......


 남편은 일박이일 간의 출장을 끝내고 오늘 저녁에 돌아온다고 연락이 왔다. 아이는 4시면 집에 도착할 것이고 나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한 시간 남짓. 이제 아이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오기 시작하면 흥분한 강아지와 아이가 날뛰면서 시끄러워질 것이고, 간식 찾는 아이의 간식을 줘야 하고,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어줘야 하고, 저녁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남편이 오겠지. 아주 시끌벅적하게 출장가방을 시끄럽게 밀면서 들어올게 뻔하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빨랫감을 내놓고 , 물을 사방으로 튀기면서 샤워를 하고, 배가 고프다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밥을 먹고, 강아지 산책을 가겠지. 

 

 그리고 그렇게 삼일을 지내면 열흘간의 국경절 연휴가 시작된다.

 

 남편의 다음 출장은 언제일까? 

 

(남편 아이 없는 온전한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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