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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jin Oct 05. 2022

하필 생일이......

 (중국 국경절 그리고 +1)

 내 생일은 10월 1일이다. 

 첫날에 태어나면 여자아이 팔자가 사나워진다고 출생신고를 하러 간 고모가 맘대로 날짜를 바꿔 넣어서 신분증 상의 생일은 2일이지만. 어쨌든 내가 태어난 날은 10월 1일이다.

 21년간 중국과는 쭉~ 상관없이 살아온 과거의 내 생일은 환상이었다. 국군의 날, 휴일,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와 푸르른 하늘, 엄마는 나의 돌잔치 상을 차리면서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햇과일과 햇살에 행복했다고 하셨다.  

  

 10월 1일은 한국에선 국군의 날 이기도 하지만, 중국 국경절이기도 하다. 

 남편과 막 연애를 시작했을 무렵 내 생일이 10월 1일인 것을 안 그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은 12억의 인구가(20년 전엔 12억이었는데 언제 1억이 늘었는지 13억이 되었다) 축하해주는 생일이라며,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던지, 그 어린 나이에 운명적인 사랑 따위를 믿은 나는 운명적으로 중국인과 사랑에 빠진 듯, 하늘이 맺어준 인연인 듯하여 진심으로  행복하고 황홀했었다...... 그땐 그랬다.


 현재의 나는, 내 생일이 다가오는 것이 싫다.

 일단 국경절 연휴가 시작된다. 보통은 추석(여기서는 중추절 中秋节)과 묶여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열흘 이상 연휴다. 그럼 어떤 일이 시작되냐? 일단 아이는 주말까지 앞 뒤로 끼여서 열흘 이상 등교를 안 한다. 남편은 가끔 정말 가끔 있는 대체 근무를 토, 일에 하고 일주일 이상 출근을 안 한다. 물론 집을 너무 사랑하는 남편은 그 대체 근무를 안 가기도 하고, 반일만 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일단 난 최소 열흘 이들과 한 몸이 되어 뭉쳐 다니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이 삼시 세 끼, 청소 빨래는 덤이다. 물론 요령껏 중간중간 사 먹기도 하고 시켜먹기도 하지만 중국인과 같이 사는 이상 한 끼라도 거를 수는 없다.  엄청 신경 쓰이는 일이다. 

  일단 전날부터 교통 통제를 시작한다. 그래서 아이는 스쿨버스를 두 시간 당겨 타고 일찍 귀가하고, 남편도 일찍 퇴근한다.  시간마다 통제하는 시간이 달라서 어딜 나가려면 빙 둘러서 가야 하고,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코로나 칭링(清零)정책 이전에는 각지의 관광객들이 넘쳐나, 어딜 가도 사람에 치였다. 덥지도 춥지도 않았던 나의 생일은 여기에선 막바지 늦더위라 덥고 짜증 나고, 거기에 모기까지 기승을 부린다.  코로나 시국 전에는 어디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비행기표와 호텔비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역시나 사람에 밀려다녀야 했다.  한국이라도 갈려고 하면 한국행 비행기도 풀 부킹이라 구하기도 힘들었고, 꼼짝없이 중국에 갇혀서 내 생일을 저주하며(?) 화가 잔뜩 난 상태에서 지냈다.

 

  물론 내 생일이라 남편과 아이가 생일파티를 해야 한다며 설쳐 되는 건 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긴 연휴에 하루 시간 보내기용 이벤트 정도로 정해졌는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벌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마땅한 것을 그들은 몇 주 전부터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정해버린다. 가령, 올해는 새로 가족이 된 하봉이가 한 살이 되는 날이기도 하여-하봉이는 나와 생일이 같다- 주인공은 이미 바뀌어버린 지 오래고, 아이의 논리는 '엄마는 이미 생일을 많이 지내봤으니(그건 그래 나는 이미 42번이나 지낸 생일이니), 생전 처음 생일을 맞이하는 하봉이의 첫 번째 생일이 더 중요하다'였다.  이미 생일도 귀찮고, 이벤트도 귀찮은 중년이 된 나는 이번엔  점심 한 끼 나가 먹고, 하루 종일 밥 안 하고 버티는 걸로 해결 봤고, 하봉이 와 생일 케이크를 놔눠 사이좋게 촛불을 불고 지나갔다. 그리고 오늘까지 우리 넷은 한몸이 되어 쭉 뭉쳐 다니고 있다.


 하필 생일이 국경절이라...... 하필 하봉이 와 생일이 같아서.......괴로운 생일이다.

 

생일 케익 나눠먹는 하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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