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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jin Oct 25. 2022

다행이다......

(중국에서 아이 키우기)

 현관문을 씩씩하게 열고 들어서는 아이는  "Mommy, I made it! "하며 큰 소리를 치면서 들어온다. " 정말? 진짜 대견하네!" 하고 엉덩이를 통통 쳐주고 한번 크게 안아 주었다. 

  아이는 오늘 반장선거 (délégué , delegate)를 하고 돌아왔다.  8학년이 되면서 올해는 꼭 델리게(반장)을 해볼 거라고 하더니, 진짜로 후보 등록을 하고, 같이 나갈 친구들을 섭외하더니, 결국 해냈구나 싶어 기특하다.  어제 시끄럽게  영상 통화를 하면서 구호 비슷한 것도 외치고, (나름 전략 회의인 듯) 떠들어 되더니 기특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혀 다른 남편과 내가 딱! 하나! 아이 교육에 관해서는 합이 맞는다. 

 처음, 중국 국적을 주지 말고 한국 국적을 주자고 했을 때 남편은 중국 국적을 가지게 되면 중학교부터 치러지는 입시에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없다며, 두말없이 동의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갈 무렵엔 엄마와 쓰는 한국어로 된 유치원에 보내 거기서 자연스럽게 중국어, 영어를 배우게 하자는 데에도 동의했다.  학교 입학을 앞두고, 의미 없는 영어 인터뷰나, 영어 시험에 스트레스를 주지 말고, 돈이 좀 들지만 유치원부터 국제 학교를 보내자는 데에도 남편은 두말없이 동의했다.  그리고, 다시 고학년이 되기 전, 학교를 한번 옮겨 아이에게 다른 기회를 줘 보자고 하는 데에도 군소리 없이 힘을 보태 주었다.  남편은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준다.  아이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고, 자신이 결핍이라고 느꼈던 부분을 채워 주려고 최선을 다한다. 아이에게 한없이 자상하고, 인내심 있고, 언제나 아이의 편이 되어준다. 


  처음 학교를 옮기고 아이는 아주 당혹스러워했다. 노력하지 않고도 모든 언어가 들리며 살았는데, 갑자기 "학습" 해야 하는 언어가 생긴 것이다. 중국어, 영어를 하니 일상적인 학교 생활과 영어와 중국어로 수업하는 시간에는 괜찮았으나, 프랑스어로 수업을 해야 하는 (아이는 프랑스 학교를 다니면서 영어와 중국어로도 수업을 한다) 시간에는 의기소침해 있었다.  어떤 날에는 활짝 웃고 스쿨버스에 내렸고, 어떤 날에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내리면서 다시 '영어학교'에 갔으면 좋겠다고 집에 와서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속상해서 남편과 다시 원래 학교로 옮길까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중간에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을 석 달쯤 했을 때는 난  "어린 왕자" 때문에 아들이랑 의절할 뻔하기도 하고, 애도 나도 힘든 시간을 지나,  아이는 타고난 적극적이고 활달한 기질로 학교 연극에 스스로 오디션을 보기도 하고, 잘하지 못하는 바이올린을 들고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적응해 갔다.  이제는 따로 듣는 FLSCO (프랑스어 지원 프로그램) 도 더 이상 듣지 않는다.

 

 1. 외동이고 아빠가 중국인이라 '소황제'라는 말은 듣게 하지 않을 것

 2. 중국인, 한국인이 아니고 사람으로 키울 것

 3. 아이에게 한쪽의 언어를 강요하지 않을 것

 4. 어떤 사람에게도 편견을 가지지 않게 할 것


이건, 아이가 태어나고 중국으로 돌아온 첫날, 다이어리에 꾹꾹 눌러 적은 글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끝이 없는 도전 같은 생각이 든다.  언어가 다르고 이념과 생활 방식이 전혀 다른 남편과 아이를 같이 키운다는 것도 너무나 큰 도전이기도 하다.  그리고 남편에게  그 점은 늘 고맙게 생각한다. 특히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가치보다는, 한 사람과 한 집단의 이념이 더 우선시되는 이곳에서, 아이가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것, 그것만으로 남편은 한계를 (?) 뛰어넘어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 아이는 처음으로 전체 중학생 대표, 부모님 대표, 선생님 대표들과 처음으로 반 대표로 참여하는' 회의'라는 것을 한다. 

 

 "오늘 반 대표로 뭐 말할 건데? 친구들한테 물어봤어?" 

 " 응, 깐띤(cantine학교 식당)이랑 델리 마르쉐(학교 카페 이름)가 너무 비싸져서 애들이 그거 꼭 말해달래, 그리고 띠 에뜨르랑(극장) 짐(체육관)이 너무 공사가 많아서 사용하기가 불편해서 그것도 말할 거야."

 "되든 안 되는 일단 말해보는 거 알지? 그러면 누가 알아주기라도 하는 거잖아"

 "그래서 내가' 델리게' 가 된 거잖아. 내가 말 잘하니까" 입에 귤을 구겨 넣으면서 아이는 끝도 없이 말하다 벌떡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스쿨버스를 타러 나섰다.


그래,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학교 안에서라도 작게나마 ' 민주주의'라는 것을 배워서 다행이고, 그 기회를 주게 되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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