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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jin Feb 18. 2023

진짜 봄이 왔다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끝도 없던 핵산 검사도, 도돌이표가 있던 악보처럼 느껴지던 온라인 수업과 재택근무를 반복하던 일상도, 어디서나 찍어대던 큐알코드며, 무엇보다 14억쯤 되는 인간들이 가졌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도(사실 병 자체를 무서워했던 건지, 그로 인해 행해지던 무수한 강제집행이 무서웠던 건진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것이 갑자기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리고 허무해졌다.  3년이 넘게 고립된 이곳의 생활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3개월이 넘게 집안에 갇혀 있었던 시간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정신없이 연말을 지나고, 새해를 맞이하고, 차이니즈 뉴이어(Chinese new year)인지 루너뉴이어(Lunar new year)인지 말 많았던 음력설을 지내고( 아무렴 어떤가, 누구는 기쁜 새해지만, 주부는 일단 명절은 집중 노동의 시간인지라 마냥 좋진 않다), 이제야 삶이 정상 궤도에 올라선 기분이다.


 아이가 먼저 확진이 되고 학교를 며칠 결석하자마자 바로 크리스마스 방학이 시작되었고, 차례차례로 남편과 내가 확진이 되어, 우울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지내고 다시 춘절 휴가가 시작되어 작년 연초처럼 셋이 한 몸이 되어, 아니 강아지 하봉이 까지 넷이 한 몸이 되어 집안에서 복닥거리며 지냈다. 후각과 미각을 다 잃어버린 나는 살이라도 빼보자며 마음을 먹었지만, 확진되고 나서도 입맛을 잃지 않는 우리 집 부자에게 먹일 음식을 만드느라 잃어버린 미각을 찾기 위해 열심히 더 열심히 맛을 보고 차려내니 살이 빠지는 변화 같은 건 일어나지도 않으면서, 노동으로 2달쯤 지낸 거 같다.


  이제 중국에서는 큐알 코드를 찍지 않고도 어디든지 간다. 집 앞에서 두 블록만 걸어가면 있던 핵산 검사소는 이미 문을 닫았고 (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은 실업자가 되었는지, 저렇게 시설을 만들어 놓고 방치하면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확진될 사람은 다 확진되어 이제는 감염이 될까 봐 불안한 마음 같은 건 가지지도 않으면서 다니고 있다.  다행히도 춘절이 지나고 다시 폭증한다라고 했지만 그런 일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고 있고, 다시 일상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 학교 스포츠 팀은 리그전에 나간다며 신청을 받고 있고, 몇 년간 중단되었던 수학여행도 갈 참인지, 비자나 여권 이슈가 있으면 알려 달라는 이메일도 왔다.   남편은 아침에 나가 저녁쯤에 오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고, 나는 이제 나의 루틴대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수년간 한다 안 했다 말이 많았던 동네 공원은 1월 1일부터 문을 활짝 열었고, 날씨도 포근해지고 있다.  아이와 2년 만에 영화관에 가서 팝콘을 먹으며 할리우드 영화를 본 순간은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가끔 억울하다.

 작년 초부터 나는 기억이 별로 없다. 일어나 밥하고 밥 먹고 , 밥하고 밥 먹고, 또 밥하고, 또 밥 먹고 이런 생활을 6월까지 했으니, 내 기억은 베란다 의자에 앉아 보던 갈대밭뿐이다 (우리는 상하이 시중심에 살고 있지 않아, 앞에 공원부지로 예정된 갈대밭만 보인다).  그때 이렇게 위드코로나로 갔으면 우리는 일 년 전부터 이런 일상이 가능했었을 텐데, "스스로 높은 곳에 자신을 올려 버린 그 인간"은 늘, 항상, 변함없이, 앞으로도, 밉고 또 밉다. 그리고 인민들의 무지함도...... 이쯤이면 누가 하나 나서서 '그때 잘못된 판단을 했다'  사과를 하거나, 혹은 '그때 왜 그랬냐?' 라며 항의정도 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들은 늘 그렇듯 지금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으면 "침묵"이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간다. 나의 잃어버린 2022년은 생각만 해도 억울하다.  그 억울한 사람이 나뿐일까?  


 아무튼, 나는 확진되고 음성이 나오자마자 나 나름의 '보복성 소비'를 하기 시작했는데, 아주 웃기게도 그것은 집안을 꾸미고, 밥 하는데 쓰는 주방 용품과 그릇을 사는 일이다. 원래도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데, 완전 그 거지 같았던 봉쇄가 나를 집을 더 사랑하는(?) 인간으로 만든 거다.  거기다가 한참 사회화 활동을 해야 할 아기 강아지 시절 4,5,6개월을 온 가족이 똘똘 뭉쳐 일분일초를 혼자 있지 않았던 우리 집 막둥이, 하봉이는 "불리불안"이라는 것을 장착한 강아지로 성장해,  나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혼자 있는 집이 너무 좋긴 하다. 강아지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면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는 여유는 너무 행복하다. 그렇지만...... 나는 왜 보복소비라는 것을 그렇게 하는 가에  대한 자괴감 같은 것도 생긴다.   

 연말 연초 그리고 춘절 연휴를 지내고 배달되어 오는 그릇을 닦고 진열하고, 진열할 그릇장을 또 사서 배달받아 그 안에 또 넣고, 그 그릇에 담을 음식을 만들고, 그런 일을 무한 반복하고 있다. 온 집안의 물건들을 다 꺼내서 버리고 정리하고, 정리함을 사고, 다시 정리하고,  자유가 주어진 상태이지만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해 서성이면서  억울함을 풀고 싶은데 딱히 어디서 풀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라고나 할까.......


 이제 몇 년간 가보지 못했던 친정도 가보고, 아이와 예전처럼 여행도 다녀야 하는데, 그런데 '아직까지 뭔가 남은 이 찝찝함, 회복되지 않은 억울함, 낯선 생활, 꿈을 꾼 것처럼 뿌연 2022년의 기억, 거기다가 가늠할 수 없을 만한 실망감을 준 이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는 나......'에 대한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곳에 살아가고 있고, 사람들은 일상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제는 정말로 진짜로 봄이구나. 따뜻한 햇볕을 완전하게 받으면서 웃을 수 있고, 아이들도 나가서 뛰어놀고, 강아지들도 산책을 다닐 수 있는 봄이 왔다고 느끼고는 있다. 그리고 이제, 이곳의 모두에게는 꺼내어 보여주거나 자랑하거나 지금 당장 심을 수는 없는 '진실의 씨앗' 하나씩을 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곳에 그 씨앗을 떳떳하고 당당하게 꺼내어 심을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2023년 봄을 맞이하고 있다.



* 제로 코로나 정책이 갑자기 없어진 것과는 별개로 남편의 회사는 연초에 안보부에서 예고 없이 갑자기 들이닥쳐 회사 전체를 감사했다고 한다. 노트북, 휴대폰 등등을 압수 검사했고, 랜덤으로 뽑힌 몇몇 직원은 하루종일 면담(?)을 했다고 한다. 그 대상은 대부분 외국계 중국계 상관없이 로펌, 회계펌, 컨설팅펌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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