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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인셋 Jul 14. 2023

쏟아낸 뒤에야 다른 사람 글이 읽힌다

쓰는 사람, 읽는 사람


나는 친절한 필자가 아니라는 걸 안다. 내 속 다스리려 쓰는 일이 많아서 그렇고, 혹여나 읽는 분께는 죄송할 마음이 클 글이다. 시기가 시기여서, 여전히 읽기보다 쓰기에 집중한다. 얼만큼 더 써야 수행한다 할 수 있을 정도의 초연한 마음으로 쓰게 될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걸 좋아해서 큰 주제 없이 마구 쓰인 글을 집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과자봉지마냥 보기 싫어한다. 정리할까 싶어서 보니, 경계가 모호했다. 나에겐 '나를 성찰하는 것'과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좀 구분이 없었다. 글로 표현하는 이곳에서는, 그랬다.


쓰는 동안 그 생각에 휩싸여 있고, 정돈해서 쏟아내고 나면 아주 시원치는 않아도 나에게 '그랬구나'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다른 사람 글이 읽혔다. 내 생각에 어지럽게 사로잡혀 있을 때엔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고, 글쓴이의 감정도 함께 받아들여지질 않아서 읽을 수가 없었다. 읽지 못한다.


늘 쓰고 난 뒤에야 좋아하는 작가분들의 글을 가끔 읽어보는데, 평온한 글을 적을 때에는 내게도 글의 아름다움이 먼저 눈에 띄지만, 지금 같은 때에는 '에휴, 이 분은 어째서 또.. 왜 이리 힘든 삶을 살고 계신가' 싶어 같은 심정일 때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내 머릿속이 그것뿐이라서인지, 공감인지, 조금 다행이고 싶은 건지 모를 감정들이 뒤섞여서. 쏟아내고 조금 비워진 자리에 그런 내적 친밀감을 약간 채워서는 삶은 그런 거지, 다시 한번 느끼고는 속을 드러내지 않는 일상으로 다시 복귀한다.


터널 속을 지나는 분들은 많고도 많다. 저마다의 선택으로 버티고, 포기하고, 이해하고, 이겨내 간다. 글의 재료가 갈등이면, 모두에게 결과는 성장이었으면 좋겠다. 일상의 갈등은 의외로 해결되지 않는 것일 때가 많다. 갈등 후 진정한 이해와 화해가 생각만큼 이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것, 아니면 비슷한 것이 반복되는 것이 되고 만다. 우리에게 이곳은 단지 쏟아내는 곳이 아니라 더 나은 자리를 찾아가고 어느새 더 다듬어지는 곳이어야 의미가 있다.


쓰는 이와 읽는 이의 입장은 분명히 다르다. 이곳에선 두 가지를 모두 하게 되므로 이렇게 써도 내 마음을 누군가 읽어줄 거야 하고 응석 같은 불친절함으로 일관하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는 점차 누군가의 속을 대신 긁어주며 앞으로 가고 있는 글이었으면. 200번째에는 두어 문장쯤이라도 더 나아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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