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뚝 끊어진 글, 휴대폰의 간편함처럼
내 손목은 정말 튼튼하다고, 몇 년이나 손목을 많이 쓰는 일을 하면서도 자부했다. 잃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 직장에서 손목 건강이 좋지 않은 또래 동료를 많이 봤어도 잘 몰랐던 내가, 아주 많이 썼을 때에나 조금 신호가 오던 상태에서 출산 육아를 지나오니 손목 통증과 테니스엘보까지 달고 산다. 어제도 칼질 조금 했다고 오전까지 손이 저릿저릿하다. 그럴 때마다 요즘은 혼자 묻는다.
그러니까, 왜 글을 휴대폰으로 쓰시냐고요.
아무 데서나, 아무 때나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아주 큰, 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책을 좋아해도 휴대폰으로는 글을 읽을 수 없었다. 지면으로 책을 보는 느낌과,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은 마치 치킨과 찜닭을 아주 다른 요리로 인식하는 것처럼(!) 내겐 아예 다른 영역의 읽기다. 화면으로는 '쉼'과 '생각'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자책을 보려던 그때와, 브런치에서 글을 읽는 지금을 놓고 볼 땐 그래도 조금의 발전이 있는 셈이다. (여전히 긴 글을 읽는 건 어렵지만.)
쓰는 것은 조금 더 목적이 있는 행동이다. 그래서 휴대폰으로도 가능한 건지 모른다. 나의 조각나 있는 시간들과 쪼개진 집중력과 생각날 때 적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쏟아내야 할 출구가 필요했던 시기가 맞물려서 휴대폰은 좋은 도구가 되어주었지만 점차 매일 쓰고 있는 나에게는 쌓여가는 나쁜 자세가 되었다. 휴대폰을 몇 시간이고 들었다 놓았다 하며 한 문장, 두 문장씩을 쓸 때도 있고, 잠자리에 엎드렸다가, 또 누워 쓰면 팔이 아프니 옆으로 돌아눕게 되곤 해서 어린 시절 책 보던 나쁜 버릇처럼 또 사시 교정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썩 좋지 않은 효과다.
장대비가 퍼붓듯 손도 절로 옮겨대는 글은 상관없지만, 가끔 나는 예전과 달리 요리하다가 한 문장을 쓰고, 밖을 걷다가 두 문장, 저녁 먹고 쉬다가 세 문장을, 좀 이르게 누워 끙끙대다 일어나선 잠을 보내고 열 문장을 쓰기도 한다. 커피 마시다가 한 번, 티비 보다가 세 번, 책 읽다 생각나서 두 번, 아이와 놀던 참에 한 번. 왜 그렇게 뚝뚝 끊어져 하나로 호로록 삼키지 못할 것 같은 글을 그렇게 쓰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휴대폰이 아니면 안 될 모양이다.
노트북을 쓰는 것도 예전만큼 편하지 않다. 어쨌거나 기계와 친하지 않은 나는 일상적으로 일하며 쓰던 때와는 달리 또 컴퓨터를 데면데면 대하기 시작했다. 앉아서 집중력 있게 단번에 작업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하니 글 쓰는 데 조금은 걱정이다.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쓰면 오래 걸리지 않아도, 또 그저 그런 글을 읽고 매만지려면 결국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커다란 모니터 화면 앞에서는 갈수록 적지 못하고 멍 때리는 시간이 길어져만 간다. 말 붙이지 못하고 내외하는 중이다.
이제는 최신 휴대폰을 써야 한다는 묘한 유행의 따름도, 그다지 새 모델에서 기술의 격차도 느끼지 못하는 아날로그 인간인 나는 점점 더 퇴보와 타협 속에 조금 더 가벼운 기계와, 거의 정보를 옮기는 작업조차 필요치 않는 것만을 줄기차게 선호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종종 효도폰을 써도 되지 않느냔 우스갯소릴 듣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벼운' 것이라는 건, 처음부터 다름 아닌 글을 쓰기 위한 계획 때문이었다.
그래도 좀 튼튼했던 내 손목을 보면 알겠다. 아이 엄마들이 손목이 상하는 건 당연히 아이를 헐거워진 뼈로 안고 어르고 재우느라 그렇기도 하지만 불안감의 해소와, 주로 내가 담당하게 되는 '구매'파트를 위한 검색, 검색, 또 뭔가를 들여다보면서 개미 눈곱만큼이라도 기어이 즐기고 싶다는 최소한의 욕구 때문이었다는 걸. 내려놓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잤어야 했는데. 지금은 지겨워져서 점차 하지 않게 되었지만 온전히 그것을 내려놓는 것도 글을 쓰면서야 가능해진 일이다. 글을 써야 하니 다른 시간은 줄일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마음을 덜어내는 데 손목과 팔꿈치를 소모하고 있다. 어느 쪽을 더 아껴야 할지는 내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알려줄 것이라 믿고 있다. 여전히 글을 쓰고 싶은 것은 마음이 더 힘들기 때문이고, 마음이 견딜 만하다면 쓰는 일이 조금 귀찮아질 터다. 이렇게 마음을 재는 것조차 시험해 보듯 몸을 이용하고 있으니, 아직도 좀 모자란 방법으로 나를 깨우쳐가는 중이다.
한 문장 한 문장, 더듬더듬, 조각을 이어 붙이며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