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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인셋 Jun 23. 2023

화날 때 쓴 글은 술 취해 쓴 글 같다

하지만 그것도 내 인생


가끔 내 글이 부끄럽다 여겨질 때는 주로 수려해 보이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거나, 나의 본질을 나도 모르게 덧칠하고 있거나, 또는 평소의 잔잔한 생각이 아닌 일시적인 분노나 큰 기쁨으로 글을 가득 채웠을 때다. 대체로는 '내가 아는 이'에게 눈앞에서 '말'을 전할 때와는 달리 불특정 다수 앞, '글'을 쓸 때 훨씬 더 솔직해지는 편이긴 하지만,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될 때도 있다.


저 중 가장 마지막의 경우에는 마치 나 자신의 중2병 시절을 마주하는 것 같아서 다시 읽기가 어려우나 차마 또 지우지는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아 넘겨버리고 만다. 부끄러워도 아직 삭제해버리지는 않기로 했다. 그것 또한 나다. 글을 많이 쌓는 것은 그때그때 내 감정의 뾰족함까지 인정하는 일이 된다. 8할은 잔잔하지만 때때로 뜨겁고 차가운 나, 인생은 뚝딱거려서 창피하고, 물에 빠졌다가 또 꼭대기에서 만세를 부르기도 하는 것임을 힘겹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글에서 나는 꽤 자주 한숨 겹고, 세상을 등지거나, 혼자 가라앉으며, 괄괄대었다가 모래 속 유리알 찾듯 아주 가끔 기쁨이나 파이팅 넘치게 나를 독려해 보는데, 그 사이의 평온함은 아마도 겉으로 보여지는 내 대다수의 잔잔함보다 비율적으로 훨씬 못 미치는 것이어서 어느 쪽으로의 파동이 진짜 나인지 글을 쓸 때마다 혼란스럽게도 한다.


유독 무언가에 화가 나서 밤을 지새우며 어둠 속에 쓴 글은 가장 다시 보기 힘든 글일 때가 많다. 사실은 그 불타는 마음을 데일 듯 뜨거울 때 말고 조금 추스른 후에 떨어져 바라보는 것이 진짜 고찰일 테지만, 내면에선 흥도 화도 많은 우리네 본성을 예의가 아니라거나 전체를 위해서라며 되도록 감추게 했던 것의 반작용으로 가끔은 주체 못 하고 터져 나오고 만다. 물론 그것이 다른 곳에선 하지 못할, 내가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솔직함이다.


술로 무장해제 되고 마는 평소 나의 경계심이나 포장 따위도 용납 가능한 것이라면, 그 순간의 들뜸과 즐거움도 나의 것이 맞다면 반대의 한없이 늘어뜨려진 내 감정도 보기 싫지만 끌어안아야 한다. 늘 통계와 같이 양 극단은 배제한 심부만을 나의 것이라 믿으며 살아왔지만, 그것은 또 진정한 내가 맞을까. 글을 쓰면서는 나를 평균내고 싶지 않다. 재미없는 글이 될 것이다.


낮에 고치고 밤에 또 고친 글은 그나마 나을 때가 많다. 표현의 조립되는 모양새는 좀 다르지만 각진 모양, 둥그런 모양을 몇 번씩 오가다가 마침내 좀 나은 색깔로 다듬어진다. 당사자에게가 아니라서 아마 상처는 주지 못할 조금 무딘 예기 같은 글을 내어놓고 내 속은 조금 더 모난 끝을 갈아냈는지 살피게 된다.


그래, 사람이니까 이불 차게 하는 말과 행동처럼, 똑같이 글도 내 것이라고 다독이자.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자. 세상에 해를 가하지 않고 고작 글이었음에 나 자신을 칭찬하자. 나와 같은 터널을 지난 적 있을 '읽는 이'라는 동무를 떠올리자. 나의 행복과 응원 또한,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잠시 일렁이는 윤슬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하자.


글로 마주하는 나,

오늘도 부끄러움을 견뎌내야 할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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