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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인셋 Jan 02. 2024

새해에게 왔냐고 아직 인사를 못했어요

새해를 잊은 건 처음이에요


어제는 잘 잤어도, 오늘은 못 자는 건 새해에게 아직 인사를 못했기 때문이에요.

출근을 앞두고 자야 하는데, 뭔가 크게 잊은 것 같더란 말이죠.

아무리 큰 의미 없이 지내는 일상이라도, 내가 보낼 새해인데 통성명조차 못하고 호칭도 정하지 못한 그런 어색한 사이 같달까요.

미루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억지로라도 내가 보내는 게 아닌, 그냥 흘러가버린 시간이 될 것 같아요.


특별히 더 바쁜 것도, 아픈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혼자 조용히 치르던 새해의 의식 두 가지를 모두 하지 않았더군요. 의식이었다는 것조차 이제야 알았네요.

기계와 친하지 않은 저는 한 해의 마지막날을 조용히 집에서 그 해의 달력을 한 장씩 넘겨보고, 새해의 달력에 소중한 이들의 생일이나 잊지 말아야 할 날을 손으로 기록했습니다. 핸드폰조차 그렇게 쓴다는 건 제 비밀스러운 허점이었는데, 달력 앱에서 반복 하나만 누르면 될 일을 그렇게 하냐는 얘길 듣고서 해보니 과연 편하긴 했습니다. 그리고선 몇 달이 지나, 편리함에 한 해가 가고 오는 것도 잊은 큰일이 되어 돌아오다니요. 제겐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타종을 듣지 못했어요. 의미는 많이 바랜 듯해서 잘 보지는 않지만, 조용히 시상식 같은 걸 틀어두었다가 카운트다운만큼은 맘 졸이며 바싹 붙어 보게 됩니다. 내 흘러가는 무수한 시간 중, 선을 그어주는 유일한 와닿는 장치라서 그럴까요. 어제는, 요즘 거실에서 자는 남편이 출근해야 한다며 얼른 들어가란 채근에 타종을 보지 못하고 곯아떨어졌네요. 한 해가 그렇게 쉽게 넘어갔습니다.


사실은 다 핑계입니다.


원래 나이니, 시간이니 그다지 따지지 않는 사람이지만 날이 갈수록 '새해가 뭐 대수야'라는 마인드가 짙어지는 건 모두 같은 모양입니다.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등산을 해가며 뜨는 해를 보곤 오후 내내 잤던 기억들.. 같은 것 때문인지 이젠 해돋이라는 걸 볼 의지는 도무지 생겨나지 않더군요. 그런데, 한참 더 사신 부모님들도 저리 해맑게 새해덕담을 해주시는 걸 보면 내 마음도 그리 해야 살아갈 새 힘이 생기는 건가 봅니다.


그런 의미를 찾지 않으면, 내 스스로 타종을 하지 않으면 그저 그런 시간일 겁니다. 소중할 일도 없겠죠. 가는 이든, 오는 이든 인사는 해야 찝찝하지 않은 법이죠. 누가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요. 이전보다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몇 달은 불만도 많았고 일상의 표정도 밝진 못했어요. 그리고선 해를 이렇게 보내고 보니 '해돋이 볼 의지'와는 별개로 썩 유쾌하지 못합니다. 내 삶을 대하는 표정은 여전히 찾고 있는 중입니다.


이 글로 새해에게 인사를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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