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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인셋 May 04. 2024

엄마가, 너랑 놀아주기 너무 힘들어

'우울'이라고 이름 붙이기 전에


이제 막 행복해지고 있다고, 준비를 다 갖추었다고 생각해 오던 참이다. 더 이상 문제될 건 없다고. 며칠 저녁마다 소화가 되지 않았다. 퇴근하고, 가족을 만나고, 편안함이 기다리는 집. 일적으로 무리한 것도, 고민거리도 없는데 뜬금없는 식욕 감퇴라, 있을 수 없는 일. 내게는 이유를 고민해 보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저녁은 여유롭게, 가족이 함께, 행복하게 먹을 수 있는 하루 중 유일한 끼니다. 행복하게 너무 많이 먹었나. 나이가 들어 소화를 못 시키나 보다. 가볍게 샐러드 따위를 먹어야 할까. 며칠간 저녁이면 가볍게 먹고, 운동을 하고, 더 지친 몸을 이끌고 개운하네~라며 만족할 뻔했다. 세 가지 이유로 늘 포기할 수 없던 저녁, 집 밥. 그 셋 중 '행복'이 문제였다.




그 저녁을 위해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퇴근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아이의 하원. 일 하면서도 종종 눈에 밟히던 아이가 반가운 건 잠시 뿐, 남들이 흔히 집으로 출근한다고 하는 표현이 여자로서도 듣기 싫던 나지만 누군가는 쉴 수 있는 그 편한 집에, 아이가 잠들 아홉 시 전까지 내가 앉을자리는 없다. 앉을 줄 몰라서 그렇겠는가. 모든 집안일은, 먼저 답답한 이가 늘 지는 법이다.


퇴근이 빠른 편임에도, 저녁시간은 아침만큼이나 쏜살같다. 아이와 내 외출복을 정리하고 씻고 씻기고 미친 듯이 저녁을 차려내고 나면 몸에 붙은 그 속도를 갑자기 누르기가 힘들다. 아침 운전이 왠지 늘 허둥지둥 인 것과 마찬가지로, 허겁지겁 밥을 욱여넣는다. 그리고 집중한 대가로 한 번에 치러야 할 피로와 식곤증.


나는 내 할 일을 분명 다 했는데, 아이는 이제 놀자고 한다. 그 일도 내 일이다. 고작 아이가 잠들기 전, 하루에 한 시간 엄마와 함께 놀자고 하는 게 일이 아니어야 하는데, 없는 체력에 그게 일 같아서 문제다.


분명 남편도 본인의 할 일을 하고 있다. 느린 손이지만 늘 저녁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주말엔 청소와 다림질을 한다. 하지만 폭주기관차처럼 움직이다 숨이 차서 도와줄 이 없나 하고 눈길이 가 멈춘 곳에는 내게는 없는 누워서 야구 볼 저녁 짬, 휴대폰 보며 낄낄댈 시간, 더 길게는 주말아침 늦잠, 가본 적 없는 회식, 나 쉬려고 써본 적 없는 연차 같은 데서 사소한 우울이, 서운함과 서러움이 계속해서 신뢰의 관계를 좀먹고 있다는 게 아이의 출생과 함께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에게 인지 모를 화를 종종 그 시간의 아이에게 내게 되었고, 이보단 낫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이 들었으면 하고 일부러 엄마가, 너랑 놀아주기 너무 힘들어라고 말하기도 하였으나, 저녁이면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냐는 남편의 질문엔 도리어 입을 꾹 닫게 되었다.




우울이라고 이름 붙여버리면 한없이 그렇게 될까 봐 그리할 수 없는 이 감정이 사소한 건가 싶어 묵혀두었다가 점점 기대지 않게까지 되었다는 것은 내가 감성적인 인간이 못 되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제 나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보다는 거들어주는 손 하나에 더 사랑을 느끼게 된 어떤 세계로 넘어왔는데, 아직도 이전의 세계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이를 보며 더 말하기 어려운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남녀고, 결혼이고, 육아 고를 떠나서 맞벌이 부부에게 단 하나의 아이라도 키우는 게 만만찮은 일이라는 게 문제일 뿐, 그런 것을 느끼는 필요성도 감정도 제각각일 것이라 생각해서 나쁜 관계도 아니고 부부도 몇십 년을 살며 좋고 나쁠 때가 있을 테니 여전히 아들이 크는 것을 바라보듯 기다리고 있지만 이런 감정을 내가 얼마나 더 '사소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우울' 이전의 것으로 명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힘든 길,

제발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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