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뭐 이래요
나는 첫 독립과 첫 서울생활을 대학을 졸업하고서야 동시에 이뤘고, 대미를 우울증으로 장식했다. 상경한 자의 귀향은 생각보다 마음먹기 쉽지가 않아서 좀 질질 끌었다. 그 망설임은 나를 더 빠르게 망가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잃으면서까지 있어야 할 이유는 없는 곳이었다. 곧 바스라질 낙엽처럼 살다가 내 발로 찾아간 정신과 의사 할아버지 앞에서 몇 주를 울고, 그렇게 있을 이유가 없는 곳이라면 나오세요 괜찮아요, 라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명의시네.
퇴사 결심을 알렸을 때 회사 대표는 날 선심써서 시골뜨기 써 준 인심좋은 사장인 양 했다. 이게 네 실패의 기억으로 남지 않았으면 했는데.. ?? 푸흐흐..그 자리에서 이렇게 웃었어야 했는데. 그게 매일을 빠짐없이 15시간, 심하면 연속 36시간씩 부려먹고 말이 좋아 연구원이지 인턴제도라는 명목하에 월급 110만원씩을 주던 인간이 할 소린가. 삶의 질은 일찍이 시급으로 따져봤어야 했다. 당신은 왜 고작 그런 헐값을 지불하고 내가 당연히 획득하지 못했을 능력을 요구하며 날 나락으로 보내놓고는 내 실패를 운운하는거지. 내 실패는 직원을 사람 취급도 안 한 당신을 만난거고, 이제 성공하러 나가는 길이다. 부디 잘 되지는 않길. 실은 저주를 퍼부을 힘도 없었다.
그나마 버석버석하던 내 서울생활에 가끔 충전을 시켜주던 친구에게 안녕을 고하며, 그의 도움을 받아 아무렇지 않게 집 앞 마트가듯 이삿짐을 싸고, 부치고, 설렘도 후회도 아쉬움도 - 아, 실패라는 생각은 1도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서울에 가서 위장도, 머리도, 가슴도 망가져 패잔병처럼 돌아왔다. 힘주어 세워주지 않으면 픽 고꾸라지고 말 종이인형이 되었다. 하지만 별다른 얘기는 없으셨던 그 명의의 말씀대로, 집에 가자마자 난 괜찮아졌다. 그냥 난 그 곳을 지옥처럼 벗어나고 싶은 것 뿐이었다.
왜 그 때의 생각이 새삼 다시 떠오를까. 나의 두 번째 상경길은 그래서 조금 초조했다. 당신이 말한 실패의 기억이란게 고작 이런거라면 까짓 것, 이겨내주지. 지난 2년 반 동안, 난 계획에 없던 학위를 얻었고, 좋은 사람들과의 추억이 가득했고, 자존감의 회복을 통해 다 잘 될 거라는 희망으로 스스로 꼿꼿이 서게 되었다. 내 마음은 이미 녹음이 짙었다. 언제 앓았냐는 듯.
아..그런데 집 값을 예상 못했다. 이리저리 알아봐도 넘쳐나는 통유리 빌딩들에 근무하는 자들은 다들 비싼 오피스텔에만 사는건지. (한참 후에 알았다. 주변엔 그런 오피스텔에 사는 사람은 없었고, 다들 1~3시간 거리에서 고생스럽게 출퇴근을 했다.) 오피스텔 가격에 놀라 혹시나 하고 물었다. 여기 이런 아파트들은 얼마나 해요? 20평대 기본 평수가 17억 정도부터 시작해요. (부동산이 이렇게까지 오르기 전 얘기다.) 허, 우리가 모르는 별천지가 여기였구나.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데서 이 돈을 주고 사람들은 왜 사는거지.
더 가봐야 외국인노동자들이 판치는 시장 속 '조금'의 발 더 뻗을 공간에 교통비까지 추가되는 거라면, 그냥..여기로 할게요. 비싸디 비싼 시세에 아래엔 상가, 한 층엔 수 십개가 넘는 방들이 소유주마저 다 다른, 전입도 못 하는, 그런 기형적인 곳이었다.
나는 가슴에 초록을 품고, 볕이 들지 않는 고시텔 쪽방 검은 그늘에 홀로 남겨졌다.
끼이-, 척.
문을 닫으니 칠흑이 날 덮쳤다. 아무리 눈을 끔뻑여봐도 적응되지 않는 어둠이었다. 세상에, 빛공해가 없는 곳도 있었구나. 잠은 잘 자겠어.
양 팔을 뻗으면 다 닿을 수 있는 곳.
내 초록은 볕 없이도 지켜질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