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얼룩, 넌 그 방에 잘 어울려
쪽방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문을 열자마자 끝나는 공간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헉, 하고 숨이 막히던 그 곳은 내가 세상과 단절하고 공부할 상황은 아니었기에 좀 더 받아들이는 데 포기가 필요한 것이었지만, 막상 내 물건을 들여놓으면 친숙해지겠지 라는 각오마저 무색케 할 정도로 정리할수록 새로웠다.
생활패턴이 좀 이르고 밝은 것을 좋아하는 나는 어둠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알람 없이는 해가 뜨는 무렵을 아예 분간할 수 없었고, 그게 내겐 그렇게 답답한 것일수가 없었다. 나에겐 밤이 계속됐다. 감수성이 생겨날 그런 어둠도 아니었다. 자연의 밤은 온통 검정이라도 저 멀리 희뿌연 별빛이라도 있어야 하는 '뿌연 검정'임을 그제서야 알았다. 그러니 여긴 감옥방. 딱 그 느낌이 맞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살림을 몇 사이클이나 경험한 뒤에야 고작 그런 '갇힌 느낌'이 문제가 아님을 알았다.
1인가구가 빨래를 매일 할 리는 없고, 모아모아서 양이 좀 되어야 세탁기를 쓸텐데, 이건..빨래를 말릴 수 있는 공간이긴 한가? 이런 방을 만들 땐 그런 걸 생각하고 만들었을 리 없지. 이런 방에 사는 인간의 삶의 질 따위는 누구에게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실은 창이 하나 있긴 했다. 출입문 위의 손바닥만한 환기 창. 환기라는 수식어가 의미가 있는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방은 복도 통창에서는 꺾어들어가는 구조여서 바람이 직접 통하지도 않았고, 창이래봤자 검정인지 쥐색인지 정도의 분간만이 가능한 것이라 볕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는 것이었다.
빨래하는 날은 전쟁이었다. 안 그래도 없는 가구 모서리마다, 옷걸이가 걸릴만한 곳이라면 어디든 널어야 했다. 전등, 에어컨, 냉장고 손잡이, 밥솥 위, 수납장 문, 화장실 문, 세탁기 문..신발장까지 가지 않으면 다행이다.
빨래를 널어두고 잠시 밖에 나가는 게 편했다. 날이 건조할 때면 차라리 감사했다. 화장실이라도 한 번 갈라치면, 난해한 미술작품 속을 헤매듯이 색색의 축축한 천들을 헤치다가 떨어진 옷걸이에 기어이 한 대 맞고 욕지거리를 하거나, 개구리라도 된 양 내 고요한 푸른 이파리인 침대에 가만히 앉아 빨래의 습기를 피부로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내 몸 하나 간신히 뉘어질까 말까한 바닥은 그래도 겨울밤엔 유용했다. 전기온돌을 틀어두고 저녁 내내 앞뒤로 뒤집으며 또띠아 굽듯 빨래를 구워야 했다. 바닥에 미처 자리잡지 못한 옷은 팔다리에 헤어드라이어를 집어넣고 바람으로 말리고 나면, 환기창으로 미처 다 나가지 못한 습기들을 벽지가 먹고 축축하게 우글우글해져 갔다.
제멋대로 옆은 시멘트, 뒤는 합판인 그런 벽은 끝내 온도와 습도차를 견디지 못하고 곰팡이에 의해 잠식되어갔다. 그런 밤이 거듭될수록, 그 습기를 먹고 자라나는 검은 얼룩은 인류의 적인 바선생에 맞먹는 생명력으로 입지를 넓혀갔다. 추위에 한 번 잘못 덧댄 신문지나 뽁뽁이는 그들을 잘 배양해 주었다. (그 실수 이후, 나는 그냥 추위를 택했다.) 암만 강력한 화학물질을 처방해봐도, 어째 더 고차원의 생물인 내 호흡기만 손상입을 뿐, 그것들은 저 환기창처럼 회색 이상으로 밝아지진 않았다.
그래서 그 얼룩은 그냥 그 방과 잘 어울렸다. 눅눅하고 쿰쿰한 냄새, 잘 못 말린 빨래의 냄새, 삶의 여유가 없는 자취생의 그늘 냄새, 그것이 다만 남들에게도 느껴질 내 회색 냄새로 남지 않기만을 바라며 이후에도 그들과 나는 때때로 공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