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무릎이 아파요, 화장실

찧지 않으면 다행

by 포인셋


습기에 기여한 것은 빨래 뿐만은 아니었다. 좁디 좁은 방에 화장실이 있기만 한 것도 다행이기는 했으나, 뭐 이런 곳이 다 있담..변기에 앉으면 앞무릎이 벽에 닿는 곳, 내가 남자였다면 일어서다가도 머리를 찧을 곳, 샤워하다 몸을 조금이라도 뒤틀라치면 사방 멍들 곳은 없는 지 수비를 해야하는 곳. 술이라도 마시고 들어와서 한 번 휘청 한다면 누구랑 싸운거 아니냔 질문을 들을 각오를 해야하는 곳. 화장실이랑 싸웠어요, 라고 답해야 할까.


역시, 누군가는 그 없는 공간에서 화장실을 만들어내느라 고생했겠지만, 또한 당연히 이 곳에 살 나 같은 인간을 배려해줄 이유도, 여유도 없었으리라.


몸도 다 펼 수 없는 그 곳은 그 와중에 다양한 씻을것들과 도구들로 채워져야 하고, 수납장에 수건도 넣어야 하니 그 곳에 빽빽히 자리잡은 것들을 보고있자면 삶이 조금 우스워지곤 하는 것이었다. 몸을 돌리기도 힘든 곳에서 나는 향이 좋은 바디로션을 바르고, 가끔 헤어캡을 쓰고 트리트먼트를 하며, 습기를 다 날리지도 못한 채 전혀 그런 곳에 산다는 걸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밖에 나서곤 했다.


화장실이란 곳이 어딜 가도 그리 넉넉한 공간인 건 아니지만, 유난히 변기에 딱달라붙어 서서 꽃향기 나는 것을 바르고 있으면 보통의 화장실보다도 더더욱 이질적인 느낌이 들곤 했다. 금방 분홍으로 물들고 말던 물때와 향기가 변기 위에 함께 머무는 곳. 안 그래도 아이 손만한 환풍기로 감당되지 않던 습기는 언젠가부터 담배냄새가 넘어와 내 작은 공간 전체를 매캐하게 만들기에 막아두고 쓰지 않게 되었고, 별 수 없이 또 습기는 벽지가 먹었겠지..




화장실은 출입문 바로 옆에 있었다. 그런 곳도 화장실이라고, 제법 추웠다. 거기에 살면서 두 번의 온수기 고장이 있었다. 조금 떠 있던 출입문에서의 외풍, 차가운 타일, 겨울. 그게 그래도 편리한 것인줄 몰랐던 자취생은, 고장이 나 봐야 소중함을 안다. 그제서야 그런 것도 값이 꽤 나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기사님이 와주시기 전까지 전기포트로 물을 데워 쓰는 불편함과, 온수기를 바꿀 때 드릴을 쓰면서도 벽 상태와 소음에 대해 하던 걱정, 그런 것도 비용이라면 비용이었다. 다행히 방 주인분은 뭘 고친다면 군말없이 내 불편함의 비용을 걱정해주고, 방값에서 제하고 보내라는 편한 분이었다.


(그 방을 나올때쯤, TV도 회색과 줄무늬가 오락가락했는데, 서비스 신청마저 마땅찮은 브랜드였어서 수리하지 못하고 나왔다. 아마 습기때문이 아니었을까..죄송해요.)


거기 달려있던 반투명 유리문은 웬 것인지, 간신히 밖으로 열리기만 하고, 연 이후에는 고양이가 지나갈 만한 틈 뿐이라서, 몇 번은 경첩이 밖으로 꺾일 뻔 했다. 아마 제대로 꺾였다면 경첩이 아니라 유리문이 통째로 와장창, 했겠지. 사람의 동선이 아니라 간신히 문의 동선까지만 고려될 수 있는 곳. 사람을 위한 공간, 집, 창호..뭐 그런 카피도 있었든가. 그 곳에선 공간을 지키려면 사람이 수그려야 한다. 아니면 내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이든. 뭐, 그런 곳이었다.


종종 나를 초라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 것은 화장실보다는 방 그 자체였지만, 방보다 더 단촐한 (단촐한 보다 더 적당한 표현이 있다면 찾고싶다. 단촐보다 더 작은 느낌이어야 한다.) 그 곳은 출입문을 나서기 전 이 방에서의 어둠을 지워내고 나를 포장하는 관문 같은 곳이었기에 겨우겨우 화장실의 이름을 갖췄으면서도 세련된 곳이어야 하는, 애증의 공간이다.


그렇게 그 방에서 나는 쭈구리가 되었다. 작은 공간 안에 사는 나는 아무리 당장 닿고 찧을 것이 아니라 해도, 사람들과 적정 거리 이상 침범하지 않도록 늘 조심하는 것처럼 벽과, 물건들과 내외한다. 내가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딱 그 만큼, 나의 구는 그 방보다 한참 작아서, 머리를 숙이고, 어깨를 움츠리고, 팔다리는 맘껏 휘둘러선 안 된다. 그래야 방을 조금이라도 더 넓게 쓸 수 있다. 그러니 나는 그 안에서 몸도 마음도 점점 더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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