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구이가 되거나, 해 뜨는 것도 모르는 번데기가 되거나
그 방에 살면서는 겨울이면 이상한 증상을 겪는다. 여름은 에어컨을 틀면 지내기 썩 좋아서 큰 불편을 못 느끼지만, 겨울은 달랐다. 그 곳은 전기온돌이 있지만 공간에 비해 많은 벽과 외풍때문에 조금 춥고, 항상 어둠 속이긴 했지만 특별히 더 긴 밤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고보면 나의 뇌는 쥐색과 검정도 잘 구분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퇴근 후에는 추위를 헤치고 온 내 몸을 씻기고, 먹이고, 그 사이에 뜨끈하게 덥혀진 전기온돌 바닥에 누인다. 그 순간만큼은 좁은 침낭 속 같아도 굼벵이가 되는 것이 행복하다. 나른하다. 코는 시렵다. 떠 있는 문 틈으로 바람이 들기 때문이다. (그 문틈도 막아보려는 노력을 한 적이 있었다. 바로 검은얼룩이 재소환되었다.) 그래서 나는 움츠러든다. 그대로 노곤하게 잠이 든다.
겨울밤의 초저녁 잠은 너무 달콤하다. 그렇게 굴레에 한 번 빠져서는 헤어나오기가 힘들다. 매일 같은 시간이면 바닥이 따뜻하고, 졸던 버릇 그대로 잠이 오고, 자야할 시간엔 잠을 놓치고 만다. 정말 그렇게 할머니처럼 초저녁 잠을 실컷 자고는 밤새 내내 뒤척이다가, 아침이 가까워서야 까무룩 깊은 잠이 들만 하면 깨야한다. 매일이 피곤하다. 그러니 또 초저녁이면 잠이 올 수밖에.
누가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 방 안에 떠도는 조금의 한기와, 굳이 바닥에 딱 붙어 자려는 이 몸뚱이의 고집, 또 놀아줘야 하는 저녁시간을 날려버린 아까움에 기어이 한 번은 몸을 일으키고 마는 욕심..겨울이 그렇게 무기력하고 나른하게, 비뚤어진 채로 흘러간다. 한 번은 친한 회사 후배가 그럴거면 차라리 새벽에 신문이라도 돌리라고 했다. 그렇게 남는 잠이 있거든 자신을 달라고 했다. 기똥차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우스웠다.
그렇게 바닥에서 시간을 좀 보내고 나면 내 몸엔 전기가 흘렀다. 전기온돌은 전기를 어지간히도 밖으로 날려버리는 모양이었다. 내 온 몸에 전기가 통하는 느낌은 별로다. 아무리 내가 나 모르는 새에 전기신호로 먹고사는 생명체라 해도 내 몸 어딘가에 내 살이 닿는데 이토록 남의 것이 닿는 것 같은 질감, 기분나쁜 신호가 내 몸속에 나 모르게 침범해버린 느낌, 그냥 간단히 건강이 나빠질 것만 같은 그 떨림이 싫어 나는 잠이 깨면 잽싸게 전기구이를 탈피하고자 했다.
고작 갈 곳은 침대 뿐이다. 침대가 놓인 한 쪽 벽은 너무 차가워서 그 쪽으론 돌아눕지도 않으니 싱글보다도 작은 그 침대에서도 나는 이불 속에 들어가 꽁꽁 싸인 번데기 신세를 면치 못한다. 물건을 더 늘리기도, 전기장판에 의해 또 한 번 전기인간이 되는 것도 싫어서 온기를 줄 전자제품을 더 들일 생각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공간때문에 움츠러들던 내 몸은 추위에 한 번 더 오그라들었다. 볕이 들지 않는 어둠 속 복도의 밤은 더욱 깊었다. 추위를 핑계삼아 외출이라도 하지 않는 주말이면 칠흑 속 24시간을 번데기로 살 수도 있었다. 언젠가 깨어나기는 하는 번데기일까. 그런 날 나의 건강 앱에는 하루 걸음 10이 찍힐 때도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다닐 이유가 없는 공간이기에 더 그랬겠지만.
계속 그렇게 살다간 이전과는 또 다른 이유로 가슴 속 검은 친구를 맞이해야 할 게 뻔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번데기는 관두기로 했다. 다행히 방만 나서면 주변 환경은 좋은 곳이었다. 구경할거리도, 쇼핑몰도, 식당도, 공원도 이용만 한다면 내 공간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내 방을 넓히기로 했다. 그렇게 땀 흘리는 걸 싫어하던 나는 그 곳을 나올 무렵 빠짐없이 하루 두 시간씩 운동하는 '독한 인간'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