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침 저녁은 잘 챙겨드세요?

먹고 살만 합니다, 좋은 세상이라서요

by 포인셋


습기와 곰팡이와 화장실 얘기에 비하면 그래도 먹고 사는 것은 꽤 괜찮았다. 그랬으니 버텼는지도 모른다. 내게 먹는 문제는 중요하다. 다른 게 암만 좋아도 먹는 재미가 없었다면 쉽게 내 삶은 재미없구나 해버렸을 지 모른다.


평생에 걸쳐 좋은 솜씨로 딸내미 고급 입맛 만들어놓은 엄마는 그 댓가로 반찬을 조달해 주시는데, 그 초라한 방의 초라한 냉장고는 냉장 능력마저 비루해서 반찬이 금방 얼거나 습기때문에 잘 쉬곤 했으므로 가져다 먹을 수 있는 반찬은 한정적이었다. 그래도 자취생에게 그게 어딘가. 굼벵이가 혼자 티비를 틀고 단칸방에서 정적이면서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숟가락을 들 지라도, 엄마 집에선 먹을 게 많아서 손도 가지 않을 마른 반찬들이라도, 그 방에선 엄마표라면 다 괜찮은 것이었다. 메론장아찌, 멸치볶음, 오징어채, 장조림, 김치같은 반찬을 한 줌씩만 싸 가도 한참은 버틸 수 있었다.


그것도 고속버스를 타고 두 곳을 오르내리던 내겐 조달해다 먹는 공이 좀 필요한 것이었다. 양이 적으니 엄마 번거로울까 택배보다는 들고다니는 쪽을 택했는데 갈 때마다 엎을까 냄새날까, 겨울이면 히터 옆에 잘 못 닿아 상할까 노심초사. 참..밥 좀 먹고 살겠다는데 쉬운 게 하나 없다. 이전 자취 때는 인덕션 1구에 간단한 조리를 해 먹을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해 먹을 시간도 기력도 없었고, 이번엔 해 먹을 여유가 있는 곳엘 갔더니 조리할 환경이 못 됐다. 엄마는 그러니 자식놈 위장 더 망가질까 속을 끓였고, 그렇게 반찬을 해 대고, 마침내는 포장의 달인까지 되고 만 것이었다. 밥에 가장 기본적인 습기조차 쉽게 날아가버리는 미니밥솥이지만 따뜻한 밥에 엄마의 반찬을 기본으로, 가끔 마트에서 장을 잔뜩 보면 컵라면, 국, 김, 달걀이나 햄 같은 재료들이 추가되었다.


자취를 한다고 하면 회사 사람들이 돌아가며 종종 걱정해주었다. 밥은 잘 챙겨먹냐고. 정말 제목처럼 대답하곤 했다. 좋은 세상이라 먹고 살 만 하다고. 국, 반찬, 샌드위치, 샐러드..돈만 주면 사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그 때도 마트 배달은 세상 편한 것이었다. 문 바로 앞까지 가져다주는 화려한 먹을 것들 (냉동은 되지 않기 때문에 아이스크림 같은 건 산 즉시 먹을 1회 분량에 한정된다.), 그것들이 소비되기에는 왠지 조금 미안한 것 같은 내 동선과 식탁, 냉장고. 화구가 없으니 조리도 못하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는 것도 만만찮은 1인가구지만 나에겐 만능 전자렌지가 있었다. 한 때 재미 좀 붙인 나는 전자렌지 요리도 몇 가지나 시도했지만 불에 끓인 것보다 맛이 한참 못했다. 생각보단 고급 입맛이었다. 역시 불의 혁명 만세다. 내게 전자렌지 음식은 달걀찜이나 햄 정도면 충분했다. (저렴이 버전의 전자렌지는 전자기파도 다른걸까. 왜 더 맛이 없지.)


외출하면 간단한 바깥 음식을 사들고 오곤 했다. 집에 내려가지 않는 주말은 어둠의 방 자취생에겐 좀 길었다. (회사가 그만큼 싫지 않았다는 뜻도 되겠다.) 차려먹을 끼니가 여럿이라 좀 곤란하지만 또 동시에 치팅데이 같은 것이어서 그 안에서 어쨌거나 잘 먹고 알차게 보내야 뜨신 배가 마음 속까지 스며드는 어둠도 좀 거두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가능했다. 당시 내 혼밥 레벨은 그리 높은 수준이 못 되어서 혼자 먹는 사람이 많은 햄버거 가게나 김밥집 같은 곳을 전전했고, 그거라도 바깥구경, 사람구경하는 눈요기로 좀 채워내면 꽤 좋은 식사시간이 됐다. 나간 김에 서운할까봐 꼭 하나 더 포장해오곤 하던 샌드위치, 케밥, 닭강정 같은 것들은 꼭 한 끼가 맛있지, 두 끼를 먹으면 쓰인 돈에 비해 만족감이 적고 내 몸에 죄책감이 들었다. 건강한 것도 챙겨먹여야 하는데, 미안 내 몸뚱이야. 근데 난 이게 편하네.


그 때 쓰던 가계부를 봤다. 나 잘 먹고 살았구나 싶었다. 특히 아끼지 않고 쓴 항목은 빵과 커피였다. 저렇게 잘 챙겨먹을 것들이 있었는데도 밀가루의 유혹은 끊지 못했다. 사 두면 며칠이고 아침이나 간식거리가 되어줄 것이었다. 몇 개 먹으면 질려서 며칠은 쳐다도 안 볼 거면서, 왜 돌아서면 또 찾는지. 별 수 없이 사 먹는게 많은 자취생의 그 쳇바퀴 속에선 두 시간씩 운동을 한다는 '독한 인간'도 야금야금 거품이 올라오듯 살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커피. 그것은 왠지 성공과 여유와 휴식을 의미하면서 어울림까지 담당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비싼 값이면서도 절약 중에도 절대 늘면 늘었지 포기할 수 없는 항목이었다.


회사엔 또래 여자가 많았다. 1년 내내 빠지지 않는 화두는 당연히 다이어트와 패션 같은 것. 아무리 대부분이 내근이고, 사람 만날 일도 그다지 없고, 갖가지 장비와 화학물질에 거슬리지 않을 간소한 옷차림을 해야 할 직종이라도, 늘 몇 명은 경쟁적으로 샐러드로 점심을 때우곤 했기 때문에 덩달아 자극이 될 때도 있었다. 물론 그 중 웨딩드레스라는 어쩔 수 없는 데드라인을 손에 받아든 자들만이 가장 성공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지만.


다이어트. (반은 꼭 건강을 위해서라고 해 두자.) 몸에 나쁜 것을 달고 사는 자취생에겐 작심삼일도 못 될 그것은 평생 해야 할 것이면서 또 아주 놓지는 못할 것이라서, 어둠의 자취생에게도 간편식을 핑계삼아 가끔 닭가슴살이나 샐러드를 배달시켜다 먹게 하는 의지를 심어주었다. 하지만 그 비린 맛을 삶의 만족도와 맞바꿀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랴. 내 월급은 그렇게 '고작' 내적 삶의 만족감을 유지하기 위해 결국은 0이 되고 말 다이어트와 치팅데이로 허무하게 소모되고 만다. 하지만 난 어딘가에선 어둠을 보상받아야 했기에 '그 고작이 삶의 전부다!'라고 적힌 안대로 내 눈을 가리고 살았던 것만 같다.


내가 기거하던 곳 아래 상가에는 내가 사랑한 분식집이 있었다. 그 위의 자취생들이 갈 만한 식당은 주변에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난 금방 단골이 되었고, 일주일에 한 두번은 꼭 떡볶이나 돈가스, 덮밥에 맥주를 한 캔 곁들이는 것이 꽤 만족감을 주었으므로 나는 또 그렇게 저녁이면 많은 날 침대 위 행복한 굼벵이가 되었다. 먹는 것만 해도 이전의 자취보다는 훨씬 나았다. 물론 그 행복은 안정감, 경제력과 함께 심리적 고갈이 없다는 전제가 든든하게 받쳐줘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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