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 놈의 짐짐짐

내가 짐인지, 짐이 나인지

by 포인셋


이미 처음 내 소속의 물건들을 멍든 것 같은 파리한 그 방의 조명 아래 정리하면서부터 생각했다. 이렇게 물건 둘 데가 없다고? 정리인간인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인간 하나 사는 데 왜 이렇게도 필요한 건 많은 것이며, 그에 역행해 미니멀리스트를 강제로 선언당해야 하는 나.


방은 좁은 것에 비하면 깔끔했다. 너저분한 건 견딜 수 없는 나이긴 하나, 지나가다 벽에도 치이고 마는 그 방에서는 물건까지 걸리적거려선 안 된다. 가만히 앉아서 눈알만 데굴데굴 굴려도 방 안을 다 볼 수 있지만,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공간은 옷장과 책상 밑이다. 그나마 보이지 않아서 물건을 쑤셔넣을 수 있는 곳은 그 두 곳 뿐이니 말이다.


키가 큰 한 칸짜리 - 사실 상 유일한 수납장이었던 옷장엔 가급적 매일 사용하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을 집어 넣어야 했다. 그래야만 내가 산다. 이미 존재 자체로 최소한인 이 공간에 무언가를 늘릴 순 없다. 부피 큰 이불과 겨울옷은 철마다 본가로 실어 나르고 또 부쳐야만 했다. 이불을 빨기는 커녕 깔끔하게 털어내는 것조차 쉬이 허락되지 않는 곳이었다. 거처를 옮기는 것도 아닌데, 철새가 따로 없다.


딱히 옷이나 이불로 분류되지 않을 것들도 그 옷장 안에 모두 수납해야 했으므로 그 안은 울퉁불퉁, 제 멋대로인 그 방이나 다를 게 없었다. 옷들은 잘 개켜 쌓아두어도 무너지기 일쑤고, 그래서 가끔 이것이 옷장인지 빨래통인지 보는 내 속도 시끄러웠다. 정돈을 아무리 해도 만족할 만큼 정돈되지 않는 곳. 늘 내가 시험에 드는 곳이었다.


책상에는 가장 소중하고 단정하게 노트북과 책, 시계, 펜 같은 것을 두어야 했기 때문에 범접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러니 밥은 키보드가 놓여야 할 서랍식 선반이나 바닥에서 작은 접이식 상을 놓고 먹어야 했다. (때론 방보다 그 '상'이 내 기분을 더 삐죽하게 만들곤 했는데, 생각보다 밥을 먹는 공간은 인간에게 가장 최소한의 어떤 분위기 - '밥'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곳을 요구하는 것 같다. 내가 가진 두 상은 '공부'나 '일'의 목적을 가진 것이다.) 책상 밑은 또한 내가 자는 침대 발 밑이라서, 아주 길쭉하지는 않은 내 키 덕분으로 커서 보기는 싫지만 마땅히 둘 곳도 없던 두루마리 휴지 묶음이나 상자 따위들이 자리했다.


세탁기 위는 '식'의 공간이다. 멀쩡한 부엌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소형가전들은 그 곳에서 작동될 최소한의 자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다른 가전의 머리 위에서 켜켜이 불안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했다. 탑처럼 쌓인 가전들이 자리를 차지해버렸기 때문에 틈새틈새마다 알차게 쌓아두고 먹는 통조림이나 김 같은 것들을 잘 진열해야 했다. 가끔 세탁기가 요란하게 돌아가는 날에 공들여 쌓은 그것들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그 순간만큼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회의가 몰려들곤 했다. 크나큰 진동, 땅이 부족해 위로 위로 올라간 물건들, 추락. 그것은 아슬아슬하게 좁은 탑 위에 얹어진, 작은 위협에도 위태로워질 수 있는 작은 방의 내 삶 같아서였나.


그 외의 사소한 노력들도 있었다. 옷장과 벽 사이에 봉을 걸어 빨랫줄이나 작은 옷가지들을 걸어두는 용도로 쓰고 싶었지만 세탁기가 돌 때마다 깽깽거리며 바닥에 나뒹굴기 일쑤였으므로 일찍이 포기했다. 또, 신발이 서너켤레정도 놓일 수 있는 넓이의 출입문 입구에는 쌓아서 쓸 수 있는 조립형 신발장을 만들었었지만, 그 플라스틱의 부피조차 내 한 몸이 입구에 들어서는 데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금방 치워지고 말았다. 그런 방에서는 수납을 위한 무언가를 구매하는 것보다, 그냥 물건 자체를 줄이는 게 최선이다.


그렇게 빽빽하게 나와 함께 그 방에 들어찬 생의 준비물들, 아니면 부산물들은 제 역할을 하기 위해 그 곳에 존재해야 하지만 존재할 공간이 마땅찮으면 존재를 위협받아야 맞다. 그러면서도 주인의 욕망, 보여지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떠안겨 그 곳 안에선 제 모습인지 짐 덩어리인지 헷갈리다가 밖에 나가서야 활짝 웃는다.


아무리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지런히 쌓아두어도 지저분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눈길을 끌기 위한 요란한 식료품의 겉포장들, 전선들, 모양이 균일하지 않은 들쑥날쑥한 것들이 '모여'있으면 그랬다. 그 곳에선 무엇이든 내 의도와는 달리 모여있고, 나와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방은 그래서 인간이 외모와 이성으로 열심히 포장해 보지만, 그 안에서 먹고 살기 위해 계속 움직여대고 있는 적나라한 빨강의, 살색의 내장들 같았다. 삶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우아해 보이도록 삶을 포장할 수 없는 곳이었다. 멍든 빛 아래의 살색, 그 방은 그래서 싫었지만 그것마저 쥐색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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