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아는 건 불편해
소원해진 이웃 사이라는 것이 보편화 된 것은 언제쯤 부터일까.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복도식 아파트를 벗어나면서였던 것 같다. 왠지 지금은 어둑한 중앙에서 독대하는 단일한 이웃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데면데면한 다 큰 애가 되어서는 예전만큼 금방 누군가와 친해질 수 없었다.
처음 독립을 할 때는 부모님이 걱정에 옆방 사는 누군가와 친해두면 안 되겠냐고 하시기도 했었다. 택배가 한 번 분실되고는 누군가에게 부탁해 받으면 안 되겠냐고. 그런 세상이 아니예요..지내보니 되려 그 이웃이 위협이나 불편함을 주기도 하고 소리를 공유하고 살게 되기도 해서, 그 사람이 어떤 이인지 알기 전에 먼저 안면을 트는 것이 썩 불편한 일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실제로는 친했다면 좋았을 경우도 많겠지 라는 생각은 나의 바람, 그리고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둔다.)
내가 아는 한 자취를 하면서 그렇게 지내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자신을 감추는 데 급급한 느낌의 자취생을 훨씬 많이 봐왔다. 잘못한 건 딱히 없는 것 같지만 나도 그래야 하는건가, 그것이 자취생의 자세인가 하고 후천적으로 독립 이후에 습득했다. 그런 환경에선 내가 나 모르는 새에 소음 유발자가 될 수도, 모든 사람이 내 상식과는 같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앞방이든 뒷방이든, 심한 것만 아니라면 굳이 이 음원이 어디인지 찾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아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같은 층을 공유하고 있는 많은 이들은, 대체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서도 고개를 푹 숙이고 후드를 뒤집어 쓰고, 쭈뼛쭈뼛 비켜가거나 몇 호인지, 출입문 비밀번호가 무엇인지 노출되지 않도록 몇 걸음 뒤늦게 가주곤 하는, 문 밖에선 배려인지 스스로의 보호인지 모를 그런 것들만 간신히 나누는 사이였다. (그리고 문 안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것들은 확연히 다른 것이다.)
좁은 방의 사생활 노출이 불편한 이유는, 한 가정이 아닌 한 개인의 동선, 자주 가는 가게, 우편물, 택배 물품, 배달 음식, 쓰레기 종류, 옷차림, 친구, 직장 같은 것들이 고스란히 그 당사자에 대한 정보로 직접 노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 일면식도 없고 서로에게 관심도 없는 타인들, 허술한 번호키. 무서우려면 얼마든지 무서울 수 있지만, 일상에서는 그보단 불편함이 훨씬 더 크다. 그 층의 사람들은 벽 하나 사이로 머리를 맞대고, 같은 공기를 마시고, 합판 너머 목소리도 들은 사이이며, 똑같은 깍두기 방의 똑같은 번데기 자세로 누워있을테지만 고작 두 세걸음 후 문을 탁, 닫고나면 그 안의 내 사생활은 아무도 알 수 없도록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 낯설고 서로 모르고 싶은 사이가 된다. 그들은 그렇게 외적으로 낯을 가려야 안전하다고 여긴다. 얼굴을 아는 것은 신경쓸 것도, 눈치볼 것도 그만큼 많아지는 '불편한' 일이 됐다.
그 많은 방이 있던 것 치고는 양호한 편이었지만 소음으로 잠 못 이루는 밤도 몇 번 있었다. 술에 취해 누군가는 다 똑같이 생긴 제 방 출입문을 찾지 못해 복도에 널브러졌고, 몇 시간은 어떤 여자의 잠꼬대인지 술주정인지 모를 넋두리를 백색소음 삼아 잠들기도, 내 방을 비롯해 두세 방의 번호키를 양껏 눌러본 후에야 경찰의 도움을 받아 제 방을 찾은 이도 있었다.
경찰이 오기까지는 동굴처럼 발소리마저 웅웅거리는 그 곳에서 그들 모두에게 한밤의 소음이 잠 못 이룰 정도로 아주 큰 것이었겠지만, 여느 주택가나 아파트와는 달리 두려움에 힐끗 내다보는 용기마저 낼 수 없는 그 곳은 또한 문 하나를 철옹성으로 지키고 서서 철저히 타인으로부터 고립되고, 고립 당하고 싶은 수 십명의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한 층에 함께, 또 따로 살기 위해 철저히 '문'과 '방'을 본능적으로 구분하였다. 나는 그 곳에 3년 넘도록 살고 나올 때까지 단 한 명의 얼굴도 익힐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내 얼굴을 익힌 이도 없기를. 내 존재는 거기 없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