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난 혼자서도 잘 놀아

내 기준과 착각

by 포인셋


나는 늘 바빠서는 아니지만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없다. 잡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머릿속이 늘 제멋대로 흘러다니는 사람들은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되려 힘들다. 그들과 테마를 맞추는 데, 흘러가는 내 뇌를 붙잡아두는 데 추가적인 에너지를 써야하기 때문이다. 멍 때리며 딴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는 건 곧 내게 휴식이 없다는 것 - 늦은 야근 후 집에선 잠만 자고 나가야 하는 그런 것과 같았다. 그러니 남들이 볼 땐 그냥 집에 있는 것, 조금 무료해 보이는 것이지만 나에겐 여가이고 활동 중이다.


그 방에서도 그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남들처럼 진만 빠지도록 이동에 시간을 쏟지도 않았으니 여유 시간은 많았고, 오롯이 그 시간에 뭐라도 생산적인 것을 했다면 지금쯤 뭔가 한 가지는 이루었을지도. 하다못해 이 흘러가는 구름같은 것들을 다 붙잡아 온통 글로 저장해 두었다면 비라도 내릴 능력이 생겼을 것을. 이제 와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 것이라 언젠가 흘러갔던 구름을 다시 붙잡아 와 비가 내리기 직전까지 더 불어나게 만들 수는 있다. 지금 그렇게 벌써 몇 년 전 흘러갔던 조각조각의 솜뭉치들을 모아 글을 쓰고 있다.


그 곳에서 남는 나의 시간은 주로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것, 그 방에서의 구김을 펴줄 수 있는 것, 돈이 많이 들지 않는 것, 방에서는 할 수 없는 내 정신건강에 조금 더 유익한 것, 방과 바깥의 너무 큰 그 차이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이라야 했다.


일단 날이 궂지 않으면 무조건 산책을 나갔다. 그 근방은 조금만 걸으면 잘 조성된 주택단지와 공원, 아기자기한 가게와 식당, 도서관들이 많았으므로 몇 시간을 사색에 잠긴 채 정처없이 떠돌 수 있었다. 서로 다른 구조로 깔끔하게 지어진 이층집, 반듯한 톤다운 된 벽돌들, 날 것인 듯 가공된 목재와 석조물, 잘 가꾸어진 정원, 마당마다 놓여진 바베큐 그릴. 어떤 집은 나처럼 그 곳을 산책하는 이들이 종종 들여다보기도 하기에 가끔 언짢음이 느껴지는 가림막이 존재할 때도 있지만, 나는 그냥 그 균일함 속의 다양함, 여유로움이 내 눈 앞에 스쳐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어떤 이는 같은 것을 보고 그런 집에 사는 사람, 차, 집이 어떻고, 저건 얼마쯤일텐데 라고 생각할테지만, 그랬다가는 겨우 찾아온 마음 속 여유를 다 잃고 만다. 그런 건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난 그런 데 썩 밝지도 않고.) 산이든 바다든 도시든 - 사람이 제가 좋아하는 여유가 보이는 곳을 자꾸 찾아 걷는 것은, 실은 내 눈에 보이기만 해도 그것이 조금쯤은 내 마음속 여유로 찾아와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날 것의 자연'이 아닌 '초록으로 가꾸어진 쾌적한 도시'임을 알았고, 나는 그 곳을 많이, 많이 걸었다.


그렇게 떠돌다 보면 그 동네에선 늘 사고싶은 것이 보였기 때문에 저 가게에 수줍음을 견디고 들어갔다 올 지, 지갑을 열 지, 그런 고민을 꽤나 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가치에 비해 가격이 마땅했던 것은 사고싶은 욕구만큼 많지 않았지만. 때때로 그리 필요치도 않으면서 나는 무언가 채우고 싶은 욕심에 내 방엔 놓지도 못할 수제 가구점에 들어가기도 하고, 사소하게 타르트, 페스토, 캔들, 에코백, 스크럽, 색조 화장품, 과일칩 따위를 사들고 오기도 했다. 그리곤 파랗게 떨어지는 하얀 조명 밑에서 이걸 왜 사왔는지 당장 반품하고 싶은 후회를 느끼는 것도 그것을 사 들고 온 당사자인 나다. 그렇게 그 방은 어디서든 기분의 차이를 메우기가 좀 힘든 곳이었다.


가끔은 윗지방에 아예 자리를 잡은 친구들도 종종 만났다. 대체로 자잘한 구경거리에 큰 건물이 많은, 그러면서도 너무 붐비지는 않는 내 쪽으로 친구들이 와 주었기에 움직일 불편함이 없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지하철이면 꽤 거리가 있는 곳도 금방 갈 수 있는 곳이긴 했지만. 친구와 그 곳에서 무언가를 익숙하게 보고, 사고, 먹고 있노라면 나도 이젠 제법 그 곳에 흡수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지만 가끔은 편한 이 앞에서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고 마는 주변과는 다른 억양, 내 속으로 그리고 있는 다른 곳, 계산하며 느끼는 낯선 수요와 공급의 가치는 역시 아직도 내가 이방인임을 여실히 보여주곤 했다.


저녁시간은 이제 매일 운동이었다. 노래를 들으며 한 시간은 바깥을 걷고, 한 시간은 방으로 돌아가 요가와 근력운동을 했다. 그것은 너무 적은 생활움직임과 인스턴트로 물든 자취생의 건강을 위한 것이기도, 남아도는 시간을 채우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쭉쭉 뻗어야 하는 그 신체활동은 하면서도 계속 방향을 바꿔 테트리스처럼 내 몸을 그 방의 굴곡에 끼워맞춰야 가능한 것이었다. 강제성 없는 홈트는 누구에게나 지속하기가 힘든 것이어서 독하다는 소릴 듣기 딱 좋았지만, 그런 소릴 하는 이들은 그 방에서 가둬진 그 느낌과 아득하게 느껴지는 밤시간이 얼마나 더 독한 것인지 잘 몰라서 하는 말일 것이었다. 그렇게 운동은 나름대로 습관으로 잡혀갔고, 풍족한 식생활도 계속 이어졌으니 나는 점점 그 곳에서 근육질의 통통한 굼벵이가 되어갔다.


인기척이 좀 느껴지게 하는 TV는 그 방에 늘 틀어두어야 하는 것이었다. 정보를 얻을 것도, 재밌는 얘길 들을 것도 아닌, 적적함에 켜둔 남 떠드는 얘기. 그래서 소리가 커선 안 된다. 들릴락 말락하게 틀어 둔, 싫어하는 것이 나오지 않는, 매일 비슷한 프로그램들. 더 볼만한 것이 없나 채널은 늘 열심히 돌리지만 머릿속은 어차피 딴 생각.


내 휴식은 그렇게 산책과 운동, TV와 생각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꽤 빽빽했다. 그렇게 빽빽해야 불쑥 찾아와버릴 것 같은 지독한 어둠 속 쓸쓸함을 잘 달래어 돌려보낼 수 있었다. 스멀스멀. 그는 늘 멀지 않은 곳에서 나를 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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