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의 나는 굼벵이가 아니거든
회사생활에 대해서는 왠지 쓰기 쉽지 않다. 그 방과 바깥에서 지낸 내 생활 이야기도 장소와 감성에 따라 톤이 들쑥날쑥하긴 하지만, 특히 회사생활이란 건 쓰이는 시점에 따라 스탠스 자체가 많이 바뀐다. 나의 회사생활은 아마도 그 당시보단 조금 미화된 것으로 적힐 것이다. 그 때 두고두고 속 끓였던 인간관계나 시스템은 지금은 내게 문제가 아니고, 내 기억은 좋았던 밤길로만 남아있으므로.
방을 빠져나온 나는 어디서든 그런 그늘진 곳에 사는 사람의 모습은 아마도 아니었을테지만, 특히 회사 안에서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나는 회사에선 (처음엔 어버버 했지만) 꽤 빠르고 군더더기 없이 움직였다. 방 안의 나와는 완전히 달라야 하는 모습이다. (물론 그 방 안에서 '굼벵이'나 '번데기'로 칭해지는 내 모습이야말로 평소의 나와는 좀 거리가 있다.) 내 일에 감성적인 부분은 없었다. 정확하게 계획하고, 계산하고, 분석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꽤 좋아하는 일이었으니 내 기준에서는 그 일을 하는 명분, 결과의 희열, 그리고 주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낭만과 논리적 우아함이 있다고 느꼈다.
나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 여성이라면 왠지 모르게 조금쯤 전문직 여성에 대한 로망이 있다. (사실 난 다른데선 그다지 낭만, 로망 따위를 논하는 사람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사자 직업은 아니어도 나의 기술적 전문성을, 내 디자인의 독창성을, 내 추론의 합리성을 일적으로는 인정받고 싶다. 후에야 알았지만 그런 인정도 내가 받고싶은 종류의 것일 때, 내가 나를 인정하고 싶어할 때 좋은 것이었다. 내 로망은 결국 내가 바라는 나의 전문적인 모습, 나 자신의 인정에 있었다. 일에 대한 그 만족의 감정을 나는 그 방과 그 주변환경에 대한 감정으로까지 조금씩 묻혀 나온 것이었다. 그것이 내 만족의 본질이었다.
내가 가진 조금 다른 분야의 것과, 사업을 키우고 싶어하는 사측의 기회도 조금은 맞아 떨어졌다. 평소 휴식을 많이 가진 뇌는 다른 데 낭비하는 에너지가 없어서 회사에선 좀 유용하게 쓰였다. 나의 '빨리빨리'는 오히려 내 스타일이 자리를 잡자 아무도 날 닥달할 수 없게 만들어서 일 하기가 편했다. 나에게 엄격한 건 '나'여야만 좋은 것이 나온다는 걸 서로 잘 아는 파트너였기 때문에 나는 잘 조련당하고 있는 걸 알았지만, 그게 나의 일, 그 분들에겐 그게 일일 뿐이었다. 나에겐 자료조사와 연구기획에 대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고, 그 수단이 되는 서류들은 찍어내듯 빨리 갖다주었다. 나는 일찍 승진을 했고, 팀을 새로 꾸렸다.
어디서나 좀 그렇듯, 이 글에 익숙한 경험이 그 곳에서도 특히 도움이 됐다. 그걸 먼저 알아본 (사업에 관심이 많으셨던) 내 지도교수님이 나를 잘 조련, 이용하셨고 나는 내 이익을 걸고 이용 당했으며, 나는 거기서 이공계의 사업적 글쓰기에 대해 습득했다. 특허, 논문, 사업계획서, 각종 보고서, 수시 보고와 발표, 어떤 식으로든 어필하고 방어하는 능력..그런 게 원래 모든 대학원생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걸 꽤 힘들어 하면서도 조금쯤 즐겼다.
내게 원래 그다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온기'를 굳이 불어넣지 않아도 되는 글은 내겐 더 적합했다. 아마 방에서 하지 못한 말을 거기다 다 풀어내는 것 같기도 했다. 이공계의 사람들은 글과 먼 경우도 많아서, 상대적으로 내가 가진 것은 좀 돋보이는 것이 되었다. 실은 내가 가진 것은 그 두 가지가 전부였다. 그러니 더 많은 것을 짊어졌다면 내가 많이 힘들었거나, 좀 더 금방 들통이 날 지도 몰랐다. 혼자 내 결과만 감당하면 되던 때와 달리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나는 내 한계가 다가오는 것도 언제 쏟아질 지 모를 내 세탁기 위 쌓아둔 가전제품들처럼 불안하게 느끼면서, 아직은 어둠에서 못 다 한 활개를 치며 즐겼다. 머리를 나름대로 굴리고, 바쁘게 돌아다니고, 가장 밝은 실험 테이블에서의 일을 즐겼다. 그것은 내 이중생활 같았다. 그런 채워짐이 있다면, 굳이 초록이 아닌 광원 그 자체인 순백의 형광등도 괜찮았다. 그것은 좁은 방 아래 꺼져가는 것 같은 파리한 빛과는 또 다른 대비였다.
그 안에서 내 입지가 생기자 나는 좀 더 사람들과 교류할 만한 심적 여유가 생겼다. 또래 직장인들끼리 나누는 고민과 일상은 인생을 좀 대할 줄 아는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는 해학과 견딤이 거의 다라서, 난 몇몇의 동료에게서 그늘을 받아들이는 방식에도 여러가지가 있음을 배우기도 했다. 나는 그늘을 애써 걷어내거나 아니면 접어두고 지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가끔은 그들과 어울리며 더 밝아진 웃음 뒤에 그냥 귀찮은 듯 어둠을 가만 두고 공존하는 걸 택하는 나의 본성을 마주하는 것이 싫었지만, 늘 내 삶을 관통하는 태도가 그랬듯 그 때부터 지금까지도 받아들이고 있다.
그 방의 어둠은 결국 내 자신의 것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