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주변엔 비싸고 좋은게 많은데

고급 세상 속 그저 그런 나

by 포인셋


다 커서도 한참 뒤에야 혼자 처음 살아보고 세상 물정을 뒤늦게 알았으니, 안 그래도 더 배운답시고 둥지를 늦게 떠난 우리는 부모님 세대보다 얼마나 더 경제관념의 확립이 늦었을까. 아마 이제 필요에 의한 문명의 발전은 더 나아갈 데가 크게 없어 보이는데도 그 안에서 인간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기 위한 노련함은 세상에 얼마나 많이 축적되었을까. 나는 알량한 과시와 이미 사회에 절여진 시각 말고, 진정으로 내 필요에 의한 소비를 하며 살고 싶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이 가장 크고, 화려하고, 비싼 곳에 발을 들인 나.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내가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한 회사 사람들이 그 곳의 주민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 곳에 거주하는 이가 많았다면, 아마 나는 더 오래 견디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밤마다, 주말마다 그 곳을 거닐고, 먹고, 써댔지만 우리는 근로자로서 그 곳에 머물렀고, 그 곳에 '상주하는 소비자'는 아니었다. 우리가 거기서 늘상 소비하는 건 점심, 커피, 술 정도에 한정되었다. 어쨌거나 입맛은 좀 비싸졌다. (맛에 까다로워진 게 아니라, 좀 있어 보이는 괜히 다양한 음식에 눈이 트였다는 뜻이다.)


그런 곳은 거기가 아니라도 많았다. 주말에 회사 쪽은 간간히 개미 한두 마리 정도가 얼씬하므로, 인구수로는 드라마인지 뭔지를 촬영하러 나온 사람들이 더 많아보였다. 먹거나 살 것이 많은 주거지 쪽엔 쇼핑하고 즐기기 위해 나온 타지 사람들이 많은 듯했다. 나는 그 화려한 한 가운데 단 하나의 어두운 점으로 '존재'하면서도 외지인으로서 그 곳을 소비하며 지냈다. 내가 얼룩이 아닌 점이어서 나았을 지도 모른다. 얼룩이었다면 집단이 되고, 차별이 되고, 어떤 시각에 의해 조금 괴로울 지도 몰랐다. 어차피 내가 늘 만나는 이들도 외지인이었기 때문에 상관은 없었다. 왜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떼지어 다니는 곤충들처럼 힘들게, 빽빽하게 그 곳에 살지 못하고 매일을 이동하며 살아야 할까. 모두들 자신이 사는 곳에서 일을 하고 소비하고 즐기며 살 수 있다면 훨씬 편하고, 비교도 덜 하고, 삶은 더 나아졌을텐데.


또래가 많다는 건 장단점이 있었다. 아직 젊으니 그 안에서 벌이라는 건 아마도 미래보다 차이가 더 소소하겠지만, 자기 안에 갖고 있는 상황들과 소비하는 건 많이 달랐다. 최소한만 쓰고 빚을 갚아야 하는 자, 명품에 올인하는 자, 그 사이 대다수는 주눅들지 않고 남들만큼은 쓰며 사는 와중에 결혼 자금을, 주택 자금을, 아이 양육비를 모아두려 한다. 남들만큼 쓰며 사는-, 그 부분이 문제다. 쓴다는 건 범주가 불분명하고 넓어서 쓰고 나면 그다지 남는 게 없었고, 내 돈을 남을 보며 쓰게 되는 것도 문제였다. 그 때의 동료들은 많이들 혼자 몸만 건사하면 됐거나, 나처럼 조금 취하기도 한 자들이 있어 (누군가는 눈치보며 따라왔을 지 모르지만) 때로 다음은 없는 것처럼 먹고, 꾸미는 데 월급의 큰 비율을 할애하기도 했다.


그 곳에 자리잡은 친구들의 삶은 좀 다른 것이었나. 처음부터 그 곳이 집인 사람, 성공을 위해 떠나 그래도 비슷한 수준의 사람을 만난 친구들. 그들 중에도 주거비에 버거워 하다가 딩크로 사는 친구, 아이의 교육 환경에 만족하며 사는 친구, 몇 번이나 더 나은 곳으로 이직을 반복하다 결국 적당한 여유와 그저 그런 벌이에 타협한 친구..지방이나 서울이나 삶은 그냥 제각각이었다.


다들 제 나름의 삶이 있었다. 각자의 욕심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그것을 결정했다. 지금쯤 결정지어진 그 욕심과 태도가 10년, 20년 뒤엔 만나기 어려울 정도의 큰 차이가 될 지도 모른다. 우리 삶엔 불쌍하게도 중간이 없다. 내가 살았던 빛과 어둠처럼, 어둠을 끌어안은 채 어떤 빛을 택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무언가는 포기해야 한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파스텔톤 자본주의는 없다. 회색 안의 미묘한 파르스름한 것이든 노르스름한 것이든, 제 나름의 색을 찾으며 살아야 한다.


거기서 나의 포지션은 늘 좀 정해진 것 같았다. 난 그 속에 영원히 마음까지 내어주진 못할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어쩌면 결국은 그리워하며 돌아갈 나. 그래서 굳이 욕심 내지도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스스로는 다행이라 여겼고, 예견됐던 대로 내가 택한 건 회귀였다. 그리고 많은 것이 변한 지금도 내게 그 결정은 의외로 '끝'이 아니다. 어둠도 겪어봐야 그게 어둠인지 안다. 생의 시간동안 아직도 모르는 더 많은 어둠을 끌어안아봐야 하고, 그래서 선택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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