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독립
그 공간에서의 기억이 몇 년이 지나도록 이렇게 생생한 건, 곳곳에서의 옅은 먼지색 기억이 좁은 만큼 겹치고 겹쳐 검정에 가깝게 더 진해졌기 때문이다. 그 공간 손바닥 만한 한 곳까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 없고, 그 때의 감정마저 여전히 고스란하다.
우울증과 싸웠을 땐 자존감이 많이 상처입은 상태였다. 내 스스로 그렇게까지 모자라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월급으로 때려맞는 사회적 멸시와 더 배운 자들의 저희들만큼 하라는 부당한 요구에 계속 주눅들어 갔다. 어쩌면 나는 좀 더 망가질 수도 있었지만 그나마 나를 지키고 있던 확신이 금방 회복탄성력을 발휘했고, 환경이 바뀌자 그것은 곧 감사가 되었다.
자취라는 건 부모님 입장에선 늘 걱정되는 것 투성이라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면 이런저런 이유들로 반대 당하곤 하는 것이지만, 내겐 죽은 듯 숨만 붙어 살았던 이전의 것과는 달라서 나를 좀 찬찬히 들여다보고 보살피게 되었으므로 이제 '결혼하기 전 꼭 해봐야 할 일'로 내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엄마가 해주는 것 말고, 그냥 늘 깨끗했던 집 말고, 아빠가 늘 고쳐놓던 것 말고, 진짜 가정의 주인이 되기 전에 내가 할 줄 아는 것들이 많아져야 했다. 하수구를 뚫고, 곰팡이를 닦아대는 것도 삶의 일부고, 번호키가 늘 당연하게 명랑한 소리로 날 맞아주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세탁 후 물이 저절로 콸콸 흘러내려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그런 게 스스로 견디고 해결해야 할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가끔 깨달아야 했다. 그런 문제들과 영원히 마주치지 않고 산다면 좋겠지만 문제를 많이 만날수록 해결할 힘이 생긴다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내 삶에 늘 주어지던 것들을 떠나 생활패턴은, 식사는, 집을 꾸미고 운영하는 건 어떻게 할 지, 못해봤던 걸 묘한 해방감에 한껏 즐겨본 뒤에 이건 이래서 안 되는 거였구나, 엄마 말이 맞았네 하고 가끔 우습게 부딪쳐봐야, 아니면 이건 나한테 안 맞았었네 라고 조명을 켜듯 진짜 나를 찾아간다.
나는 그 어두운 곳에서 어둠의 본질과 꼭 닮은 나의 내면과 마주했다. 인간이란 무엇인지 생각하던 때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렸다. 그 뒤로 진짜 사춘기라 부르던 때부터는 공부에 쫓겨, 삶의 변화와 이루어야 할 것들에 쫓겨 왜인지도 모르고 괄괄대며 다니면서도 정작 열 살 무렵 철학과 종교에 대해서도 고민하던 본성은 세상의 등떠밈에 그다지 생각이란 걸 하지 않고 지냈다. 지금 떠올려봐도 바쁜 것이 진짜 쫓김이었는지, 아니면 기계적인 삶의 쳇바퀴가 뇌를 멈추게 했는지, 사실 그런 건 다 핑계고 삶에 대한 고찰은 만사 제쳐두고 계속 했어야 했던 건 아닌지. 문득 뒤를 돌아보니 걸어온 길이 낯설었다. 그냥 쉬지않고 걸었지만 왜 걷는지, 어떻게 걸어야 안 아픈지는 딱히 생각하지 않았다.
다들 온갖 신경과 눈치를 남에 맞춰 곤두세우고 살지만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은 속에 무기 하나를 갖고 있다. 그들은 바깥의 타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영양가 없는 말에 어떻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어둠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빛을 따라 걸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자기자신이라는 변수가 하나 없기 때문에 기어이 앞으로 나아가고 만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는 확실하다. 나는 아직 제련 중이다.
나를 아끼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었다. 남의 시선에 무뎌지는 것, 내장과 같은 욕망 어린 삶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 나만의 낭만을 찾는 것, 그리고 그것들로 나와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것. 나를 좀 알게 되고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 지 겨우 감이 왔을 때, 나는 나보다 나를 아끼고 내가 나만큼 아껴야 할 가족을 맞이했다. 나를 더 아낄 수 있어야 남에게도 그 만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 방을 나설 때의 감정은 어둠을 처음 맞았을 때와는 많이 달랐다. 복도 통창의 햇살이 내 방까지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졌고, 조금은 내가 만족했던 것들을 두고 내려가는 것이 아쉬우려 했지만, 그 방을 치우면서 마지막까지 고마웠다. 잘 지내고 간다.
내 마음 속 초록은 볕 없이도 지켜졌다. 축축하고 음습한 곳에서 몸을 오그리고도 잘 버텼다. 잘 먹고, 자꾸 생각하고, 나를 지켰다. 바깥의 빛에 현혹되어버리지 말고, 내 성장판을 콕콕 건드려주는 용도로만 사용해야 했다. 바깥을 향해 찔러대서도 안 됐다. 좁은 곳에서도 빽빽하게 나를 쌓고 있으면 가끔 좋은 사람들이 찾아와 물을 주었고, 날 고립시키는 줄만 알았던 방의 벽들이 사라졌을 때 나는 기지개를 켜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는 좀 더 큰 것이 될 수 있었다. 내 속의 둥치는 좀 더 단단해졌고, 마침내 작은 숲을 품은 나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