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술친구는 그 곳에서 내 가족이 되고
술이라면 예전보단 좀 질렸다. 평생 먹을 술, 이미 많이 먹었을까. 제 아무리 맛있는 음식에 곁들이는 술을 내가 좋아해도 내 의사로 먹는 술이 아니라면 한두 잔에서 끊고 싶다. 대학원에서 낮이건 밤이건 교수님과, 이전에 시달렸던 직장에서 그 야근 '도중' - 대체 왜 부어대듯 먹어야 했는지, 몸도 머리도 다음날까지 당최 납득을 못했던 기억 때문이다. 그러고도 살 만 해지면 세 끼를 연달아 먹었던 배달음식처럼, 밀가루처럼 또 술을 찾는 것이 말술인 자들의 운명인 것 같지만.
공식적인 회식이란 손에 꼽을 정도로 없는 곳이었다. 다들 정시에 칼같이 퇴근해도 집 가서 밥만 차려먹고 나면 잠 잘 시간이 되고 만다는 불쌍한 수도권 사람들이었다. 회식은 없고 또래들이 많은지라 술 좋아하는 몇몇끼리 가끔 맛있는 것 먹자는 핑계로 모여들곤 했다. 취해도 걸어가면 그만인 혼밥 자취생에겐 그건 좀 매력적인 제안이다. 이른 퇴근은 좋지만 너무 초라한 저녁밥, 어차피 아무리 편해도 몇 시간이나 굼벵이 신세, 자유시간이든 잠든 시간이든 별 다를 것 없는 어둠과, 그 안에선 고작해야 꿈틀거리는 움직임. 지겹다. 평소의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지만, 누군가 불러준다면 나가야 했다. 나는 점점 내 무한의 잠재력을 가진 술주머니에 힘입어 대외적으로도 미식을 핑계삼는 주도자가 된다.
직장인들 점심장사나 하는 곳에, 빌딩들만 천지인 곳에 뭐 맛있는 게 얼마나 있겠어.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 맛이란 건 어쩌면 내 기분에 따른 것일지도 몰랐고, 규모의 차이나 어둠의 차이일지도 몰랐다. 이전 직장도 통유리 빌딩들이 빽빽하긴 매한가지였지만, 아, 빽빽함의 차이일지도 몰랐다. 유리창의 크기와 건물의 간격, 공원, 푸르름, 광장. 그리고 그것은 규모도 맞고, 거기 다니는 직장인들의 여유, 통상적인 근무 시간, 표정에 스민 어둠의 정도도 분명 기여하고 있었다. 같은 통유리 빌딩이라도 어둠이 내릴 때, 빽빽한 바둑판 같은 빛들이 대비되는 세로형 빌딩과, 아직 하늘의 푸른 빛 또는 드문드문한 조명과 로고들이 비치는 가로의 빌딩이 주는 느낌은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내 방과, 그 동네의 공원만큼이나 차이가 큰 것이었다.
그 안에서 왠지 초반엔 좀 달렸다. 그 차이를 오롯이 느끼고 나니 감정 기복이 영 없는 나라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예전의 마음 속 어둠을 이겨내고 조금 큰 것 같은 나를 마주했으니, 이젠 좀 여유가 느껴지고 만 것이었다. 낯 가리는 내게 술은 (내가 그런 걸 즐기는 쪽은 아니라도) 가끔 친목을 위한 좋은 촉진제가 되어준다. 술을 먹는 대상은 시기마다 조금씩 바뀌어갔다. 처음엔 선배, 더 편해진 뒤엔 동기, 팀원, 후배, 그리고 가끔 임원과의 독대.
조금 취할 만도 했다. 내가 취하고 만 것이 술인지, 분위기인지, 성장에 대한 만족인지는 불분명했지만 그 이면엔 많은 다른 것들도 존재했다. 혼자 지내는 외로움, 가족이나 친구들을 보지 못하는 쓸쓸함, 좁고 어두운 곳에서의 생활,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중적이어지는 내 모습, 밝음으로 보상받아야 할 나, 견뎌내야 하는 성취, 인간관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나이대의 고민들.
나는 외로움 같은 단어와는 조금 거리가 먼 사람이고, 굳이 더 따지자면 외로운 걸 좋아하는 쪽에 가깝다. 누구하고나 거리가 필요한 사람, 내가 정한 규칙과 범주에 엄격하게 날 가두면서도 그 가두는 이가 반드시 '나'여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재미도 없게 살면서 스트레스도 엄청 받는 기묘한 사람이다. 나처럼 외로움도 못 느끼고, 해야할 것 혼자 다 잘 챙기고 사는 사람은 사실 자취하고는 딱이다. 하지만 그 어둠과 비좁음까지 아무렇지 않게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건 받아들여지는 문제는 아니었다. 되도록 좋은 사람이 있다면 어울리고, 밖에서의 시간을 늘리고, 바람과 빛과 여유를 가슴 속에 틈날 때마다 충전해둬야 했다. 어쩌면 어둠 속에서 처음 마주한 저 밑의 외로움이었는지도 모른다.
맛있는 것과 술은 누구나 무장해제시킨다. 그 안에서 먹어댄 것들은 내 방의 것보다 얼마나 다채롭고, 내가 마셔댄 것들은 그 방에서 굳어있던 내 몸과 마음을 얼마나 자유롭게 펴주었으며, 몇 시간이고 떠들어댄 수다는 혼자의 주말일 땐 단 한 번도 벙긋하지 않던 마음의 소리를 얼마나 쏟아내게 해주었는지. 그렇게 친한 이와 술을 마실 때마다 나는 내가 좀 사람같아지는 것을 느꼈고, 금방 가족같은 사이가 되었으며, 어느덧 술친구가 먼저인지 술이 먼저인지 모를 그 자리를 자꾸만 찾게 됐다.
술을 적당히 먹고 집, 아니 방 (아무리 좋게 얘기해도 집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양심상 그리고 정서상.)으로 돌아가는 길은 혼자 걸어도, 누군가 날 데려다 줄 때도 항상 좋았다. 일을 잘 마치고 나오는 뿌듯함이든, 돌아가는 길에도 느끼는 널찍한 가로의 여유든, 내가 잘 되어가고 있다는 안도감이든,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시간에서 느낀 만족감이든 그건 중요하진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밤길을 걸으며 느끼는 기분은 곧 '지금의 내 삶' 그 자체다. 내 삶에서 가장 감성적인 부분, 가장 큰 고민, 가장 큰 행복. 바람이 이는 밤길을 걸으며 지치고 한숨지어진다면 내 삶은 지금 좀 힘든 것이고, 밤길을 걷는 게 즐겁다면 나는 내 삶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었다. 밤은 그렇게 어둠을 통해 바깥으로만 향할 눈을 가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므로. 가장 진실된 나를 찾게 해주므로.
나는 그 방으로, 그 어둠으로 돌아가는 길이 늘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