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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외곽 한국여자 Jun 26. 2024

어느 흔한 하루

 les misérables 불완전하니 인간이다

2024년 6월 25일 화요일


어제부터 한 번씩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요. 오늘도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듯 하구요. 어제 아이 음악원 합창 공연이 있어서 갔다가 마담 구를 보았거든요. 아이 수업은 지난주 월요일에 끝이 나서 다시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그 선생님을 보았습니다.


무대 구석에 놓인 크고 반짝이는 검은색 그랜드피아노 앞에 반주를 위해 서너 번 등장했었는데, 이때를 제외하고는 무대 밑 계단의 난간 한편에 비스듬히 기대듯이 서서 아이들 공연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있는 듯 없는 듯. 합창 담당 선생님 중 한 분, 지난 공연에서와 비슷하게 과감하게 차려입은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는 저 여자선생님과는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지난 시월 첫 수업을 할 때 봤던 어깨 길이의 머리는 이제 제법 길어 날갯죽지까지 내려오는 듯한데 단정하게 아래로 내려 묶고 단조로운 톤의 옷으로 전혀 눈에  띄지 않는 띄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치마도 무릎을 덮고 있고 평이한 하얀 운동화를 받쳐 신은 그런 차림. '전형적인'이라고 하기에는 제가 본 일본영화가 몇 편 되지 않지만.. 'おげんきですか'영화의 주인공처럼 그런 모습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갱끼데스까 영화도 기억이 전혀 나지 않지만 왠지 그 영화의 여자주인공이 입었던 치마가 저런 느낌이었다고 기억조작을 해봅니다. 눈밭에 서 있던 그 포스터조차 기억이 안 나는데도 왜 이렇게 그 주인공과 이 선생님이 비슷하게 느껴질까요. 어림짐작으로 일본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조차 확실하지 않네요.


혼혈은 아님이 확실하고, 아이 음악노트에 적힌 그녀의 필기를 보면 이곳에서 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프랑스어 필기체는 우리나라 혹은 영어의 필기체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죠. 아마 피아노로 유학을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 온 것 같다는 짐작만 할 뿐, 아이가 있는 30대 여성으로 월화목 이렇게 3일을 이곳 음악원에서 일을 하고 있고 출근 시간은 우리 아이가 첫 레슨인 것을 보면 16시 30분인 것 같다, 정도의 데이터만 가지고 있죠.


처음에 아이에게 이 선생님이 배정되었을 때 약간, 아주 약간 실망하기도 했어요. 이왕이면 토종 프랑스인이었으면 좋겠는데.. 우리가 우선배정에서 밀린 것인가, 하며 혼자 뇌피셜을 잠시 돌리기도 했었어요. 사실, 피아노는 9월 말이 되어서야 신청을 해서 10월 중순에 첫 수업을 시작했기에 어쩌면 마담 구만 빈 시간이 있어서 그쪽으로 배정된 것이 맞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또 어찌 보면 음악원 원장이 내가 아시아엄마니까 배려해서 같은 문화권 선생님을 배정해 준 것 일수도 있고요. 어떤 이유로 배정된 것인지 알 수 없고,  지금 와서 그 진실, 진실 따위가 존재하기나 할까 싶기도 하고 그것을 파헤쳐서 뭐 할 것인가 싶네요. 뭣이 중한지 생각해 보면.. 결국은 이 선생님은  우리 딸내미와 나에게 너무 좋은 사람이고 이제 이분이 무슨 말을 하든 믿음이 간다는 것, 이제는 내가 이 젊은 아시아 출신 엄마 피아니스트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는 거예요.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는 이 시간들이 참 감사하다는 것, 이것이 팩트입니다.


여기는 한국처럼 일주일에 몇 번 그것도 한번 가면 한 시간씩 연습도 하고 이론도 배우고 아이들이랑 놀고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아니에요. 일주일에 딱 한번, 우리 집 아이의 경우엔 월요일 오후 4시 50분에서 5시 10분까지 딱 20분간 레슨을 받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기의 ‘한국처럼’의 한국은 언 삼사십 년 전 내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니 ‘요즘 한국’은 어떤지 잘 모르겠네요. 물론 한국에서도 개인 레슨 받는 경우나 피아노 학원의 경우에도 연령별, 상황별로 달리질 것이고 이곳에서도 집단교습의 형태의 피아노 학원이란 것을 본 적이 없지만, 개인 레슨의 경우에는 더 길게 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에 우리 집으로 선생님이 방문하는 형태의 개인 교습을 몇 번 받았는데 그 경우에는 50분 수업이었습니다.



방문 레슨 얘기를 하니 또 누군가가 떠오르네요..

아주 옛날, 그때가.. 벌써 20년 전이네요. 물론 요즘은 30년 전, 40년 전까지 생각을 더듬어 올라가야 하는 경우가 많은 걸 생각해 봤을 때, 이십 년이면 양호한 편인 듯도 합니다. 하여튼 그때 저는 호주에서 일 년을 보내고 있던 20대 중후반의 생기발랄한 아가씨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친구들을 만났는데, 이 중의 한 명이 이 방문 레슨을 했었어요. 이 친구의 집으로 예약을 한 학생들이 찾아오는 형태였어요.


얘는 한국에서 대학교 3학년 때 휴학을 하고 어학연수를 하러 호주에 왔다가 동네 교회에서 한 남자의 적극적이고 끈질긴 구애에 다음 해 스물셋에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백옥 같은’이 무엇인지 진짜 여실하게 보여주는 그 친구의 피부에는 정말 잡티하나 없이 맑음, 그 자체였어요. 머리카락은 곱슬기 하나 없는 찰랑찰랑하고 평생 염색 한 번 해 본 적 없던 것 같은 태초의 천연색인 듯 신비롭기까지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가 나를 자꾸 집에 초대해서 밥도 해주고 국수도 해주고 케이크도 구워주고 했던 것이 고국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이젤 위에 놓여 있는 수채화그림과 남산만 한 배를 하고 있는 그 친구를 번갈아보며 이건 태교 때매하는 거냐고 영혼 없이 물어보고, 전자키보드는 아닌데 여러 가지 기능이 장착된 피아노도 띵까띵까 쳐보고, 그 옆에 있는 고급 피아노도 뚜껑을 살포시 열어 소리 잘나냐, 엘리제도 쳐보고.. 그땐 전혀 관심이 없던 ‘임신과 출산 대백과’도 감흥 일도 없이 열어서 보고 이건 어디서 샀냐 하는 류의 의미 없는 말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창문 근처 바닥에 드러누워 사진첩을 보았던 어느 평범했던 하루가 떠오르네요.


임산부와 함께 나도 등허리를 바닥에 대고 드러누워서 사진첩을 보는 데, 연애할 때 찍었던 사진들 뒤로 결혼사진이 이어지고 또 시댁에 갔을 때 그쪽 대가족과 함께 있는 내 친구의 뽀얀 얼굴이 동동 뜬 사진이 있네요. 지금 이 친구가 살고 있는 곳도 그렇고 남편의 직업도 꽤나 번듯한 것은 알겠는데, 시집이라고 하는 그곳의 대리석 기둥들과 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이십여 명 이상의 모습 하나하나에서 ‘좀 사는 집안’의 면모가 넘쳐흐르네요. 와, 집이 장난 아니네 무슨 대리석 기둥이 이렇게 굵을 일이야 무슨 궁궐이야 뭐야, 했더니 갑자기 사진첩을 몇 장 넘기더니 한 커플의 사진을 보여줍니다. 남편의 형과 그의 부인이라고 하면서 현재 런던에서 살고 있고 둘 다 의사라고 하네요. 그래, 뭐 인도사람들 학구열이야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지 근데 어떻게 큰 아들 작은 아들 둘 다 국제결혼을 했네? 하니까 둘은 의대에서 공부하면서부터 사귀어서 자연스럽게 결혼까지 했고 어린아이가 하나 있다네요.


그러면서 언니, 혹시 런던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 없어? 이래요. 야, 런던에서 대학원 다니는 게 장난이냐? 하니, 만약 내가 원한다면 저 집에 방도 많고 아이 한두 시간씩 봐주면 학비는 해결될 것이랍니다. 지금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지만 그때는 너무 뜬금없었고 아이를 한두 시간 봐주는데 대학원 학비에 숙식까지 하는 것을 내 친구가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됐다고 단칼에 거절했어요, 됐어. 그랬더니 이번에는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남편 동생이 있다네요. 3형제라고. 그리고 자기 시댁 정말 좋고 여유롭다네요. 응? 남편의 동생은 형과 마찬가지로 런던에 있는데 변호사라고. 그리고 아직 싱글이라고 덧붙입니다. 응? 그래서?? 나는 언니랑 동서지간이 되어서 가족이 되고 싶어. 엥?


사실 스물여섯일곱이면 결혼에 대해 생각해 봄 직도 하지만 그쪽 방면으로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던 상황이어서, 인도? 국제결혼? 이 또한 고사합니다, 됐어. 이 친구는 너무 아쉬워하면서 지금 당장 결정 안 해도 되니까 마음이 바뀌면 알려달라고 만남을 주선해 보겠다고 하네요.




아직 호주의 이 친구 기억을 모두 소환해 내지 않은 상황인데.. 이층으로 제이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내 방 앞에 멈춰 선다. 오늘은 아침부터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있어서 문을 열어둔 참이다. 흐름이 뚝 끊긴다. 들어와서 지지난주부터 지겹게 들은 문장을 되뇐다.


-머리가 너무 길어


몇 주 아래의 대화가 이미 수차례 반복된 바 있다.

-내 머리 sdf(노숙자) 같아

-그래, 그럼 지금 바로 잘라줄게

-지금은 아니고 오후에


시간을 확인한다. 오전 11시 정각. 11시 30분에 아이 점심 픽업을 가야 하는데.. 싶었지만 30분이면 충분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자르자 그럼. 하니까 웬일로 바로, 알겠단다. 마쳐야 할 일이 하나 끝나서 시간이 된다고 한다.


어제는 월요일, 재택근무가 아니었기에 파리 3구 - 파리 외곽 출퇴근 길에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찜통 같은 기차칸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얽히고설켜 진땀을 뺐을 터. 또 목 전체적으로도 털이 빡빡하게 자라서 그야말로  숨이 턱턱 막혔을 것이다. 저 호주 친구 얘기 타이핑은 바로 종료한다. 당장 일층으로 내려가서 헤어커트기와 가위부터 준비해야겠다.


함께 계단을 내려가면서 보자 하니 뭔가 걸음이나 눈빛이.. 아직 오전인데, 벌써 심상치 않다.

¨아니, 아침부터 벌써 취해서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네 정말. 아직 열한 시인데 남은 하루 어떻게 하려고¨

¨내가 취했다고? 너는 나를 너무 무시하는 거 같아.¨

¨그럼 안 취했니? 아이는 내가 찾으러 갈 테니까 침대에서 한숨 자, 제발. ¨

¨일하는 게 장난 같아? 돈 벌어오는 게 쉬워 보여?  ¨

¨내가 얘기했잖아. 힘들면 좀 쉬라고. ¨

¨꽁제 말라디(병가)? 누가 날 기다려줄 거라고 생각해?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되겠지. 그건 또 나일테고¨

¨꽁제 말라디는 벌써 결혼하고 10년 동안 얘기했던 거고, 그 상태로는 일 못해.¨

¨넌 요즘 일자리를 구하고 있긴 한 거야? 벌써 일 년이야. 그동안 뭐 한 거야?¨


그동안 뭐 했냐는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벌써 일 년이네.. 그동안 난 뭘 했었지..?


8월 여름 바캉스에는 아이를 데리고 3주간 한국에 들어가서, 나는 연수까지 받으러 다녔었다. 그리고 9월에는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점심때는 집에 와서 밥을 해먹이고 다시 학교에 데려다주고 두어 시간 뒤에는 다시 집으로 데려오고, 미술, 음악, 춤, 합창 이렇게 올해 처음 방과 후 활동을 데리고 다녔는데..


올해 통역일도 돌아보니 6개월이 다되어간다. 3일을 일했고 천유로 정도 받았다. 한화로 백사오십만 원 정도였고 집에 기름값 넣을 때 이것을 몽땅 쏟아부었다. 그리고 추가로 더 보탰다. 기름통 반통을 채우려면 이걸로 어림도 없다. 전쟁 여파로 기름값이 금값이다. 허나 아무리 기름을 때도 온기는 다 빠져나가버려서 정말 구멍 난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그동안 뭐 했냐고 할 때, 이 행사를 준비한 것부터 해서 여러 가지 자잔하게 했던 일들을 얘기했어야 했나.. 굳이?


작년 말부터 받기 시작한 실업수당이 9개월 나오는데 이것이 다음 달이면 끊긴다. 중학교에서 일한 것이 풀타임이 아니라 아이 하교시간에 맞춰서 파트타임을 선택한 이유로 큰돈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 초등학교 방학과 중학교 방학이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이 직장은 돈을 떠나서 내 상황에 적합했다. 방학 중에도 800유로 정도의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고 나름 공무원 연차도 차곡차곡 쌓여서 훗날 교사를 하고자 하는 대학생들이나 교사직 시험을 준비하는 예비 교사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터이다. 교사직은 아니지만 보조교사로 취급하여 봉급표를 인정해 준다. 그리고 아이들과 교사들을 합치면 천명 남짓이어서 프랑스에서 항상 혼자였던 내게 마치 천국과 같았고 그 시간들은 결코 돈으로도 살 수 없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의 잣대로 보면 매달 실업급여로 받는 380유로 한화 54만 원 정도 총 3500유로 정도는 자신의 한 달 월급과 비슷하기에, 마누라가 빨리 일자리를 구해서 조금 더 벌기를 원하지만 이상하게도 요즘에는 수동적으로 실업수당만 받고 추가로 뭘 할 생각자체를 하지 않고 있으니 답답할 것이다. 은행 대출금을 갚고 세금을 내고 슈퍼를 가고 보일러 기름을 넣고 그런 거 한다고 매일 일을 해도 마누라가 한 육백만 원 보태줘도 마이너스통장에 한숨을 쉬며 바캉스 한번 제대로 못 가는 현실 속에서 지친 것이다. 직장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삶의 질이 형편없음에 현타가 온 것이리라.


솔직히 4월에 임용시험이 있었다. 원서는 이미 2월에 다 접수가 되어 있었고, 시험 접수번호까지 다 받아놓은 상태였고, 필기시험 구두시험까지 일정이 다 확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두 달 만에 한 번씩 찾아오는 바캉스나, 가깝게는 주말 동안 번번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남편을 보면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계속 이곳에 있을지 없을 지에 대한 확신도 마찬가지였고. 현실적으로는 외국인인 내가 그 시험을 혹 통과한다고 해도 국적 관계로 공립 정교사는 어려울 것이고 사립으로 가면 매년 갱신한다는 보장도 없고, 더욱이 수업준비 시간이 한국에서의 그것과 비교해서 서너 배는 더 들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라, 지금 내 상황에서 풍전등화 같은 저 인간의 정신 상태에 따라 속절없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내 마음을 추스르며 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표도 쉬이 가시지 않았다. 시험 디데이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교육부에서 수험생을 위한 지침부터 해서 하루에 서너 통까지 메일과 문자가 오는 경우도 있었다. 시험이 다 끝나고 시험결과를 확인하라는 메일을 5월에 받았고, 6월은 또 학기말이라 여러 행사도 있고.. 그렇게 10개월이 지났다.


내가 한 마디 반박도 하지 않자 그는 다음 걸음을 떼고 내려가 거실 거울 앞에 선다.

-일단 좀 앉아있어 빗이랑 가위 가지고 올게

욕실 선반에 넣어둔 바비리스 헤어컷 키트와 가위 그리고 연분홍 보자기를 가지고 와보니 그는 바닥에 앉아 있다.

-아니, 거기 털썩 앉아있으면 어떡해.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아야지. 십 년을 이러는 데 오늘은 왜 이래. 진짜 제발 술 좀 마시지 마. 아침부터 도대체 이게 뭐야

이어지는 잔소리를 피할 요량인지, 오뚝이처럼 몸을 벌떡 일으며 세워선 응접실 의자를 가지고 온다.

-아니, 이거 말고. 여기 봐봐. 여기 의자에 깔아놓은 거는 머리카락이 붙으면 떼기가 힘든 재질이야. 부엌에 가서 우리가 매번 사용하는 의자를 가져와야지 오늘 왜 이래 진짜


제이가 부엌으로 중얼거리면서 간 사이에 커트기계의 충전상태를 확인해 본다. 불이 껌뻑껌뻑거리더니 금방 죽어버린다. 어쩔 수 없이 충전기를 연결한 상태로 그의 목 윗부분의 한 부분에 대고 실험을 해 본다. 찍. 거리더니 바로 꺼져버린다. 이미 기계에 머리카락은 한 덩어리가 물려있는 상태이다. 어쩔 수 없이 그 부분만 가위로 정리하고, 충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 일단 아이부터 찾아오고 나서 오후에 하도록 하자고 말한다.


그런데 갑자기 또 아이에 관한 얘기를 회사와 정치계 주요 인물들과 연결해서 하기 시작한다. 자기 회사의 50퍼센트가 아이가 없다, 마튜(18년을 함께 같은 사무실을 쓰는 동료)는 인사부 수장과 동거만 하지 아이를 가질지 물어보면 그런 미친 짓을 왜 하느냐고 한다는 말을 시작으로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도 아이가 없고 바흐델라(극우RN 수장인 마리 르 뺀의 조카사위로 요즘 화면을 장식하고 있음)도 마찬가지고 박대통령도 윤대통령도 아이가 없다는 얘기를 되는대로 막 갖다 붙여하며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시간과 돈에 대한 얘기를 해댄다. 여기에 정치적 인간, 그 이전에 개인의 선택에 대한 혹은 사정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난 아이 없으면 너랑 살 이유가 없어


순간 정적이 흘렀고 오른손으로 입과 턱을 사정없이 주물 딱거리다가 의자를 다시 부엌에 넣어두고는 비틀거리면서 나와서는 아이를 찾으러 간다고 한다.


-아니, 아이는 내가 찾으러 갈게. 점심 먹을 거 이미 준비해 뒀어

-아니, 내가 갈 거야

-아니, 너 상태를 좀 봐 걷지도 못하잖아

-아니, 나 멀쩡해

-일단 좀 자. 지금 상태 너무 안 좋아 보여. 내가 아이 찾으러 갈 거야

-아니! 내가 갈래!


오늘은 전체적으로 옷장 정리를 해야겠다. 이제 진짜 겨울이 간 것 같다. 6월 20일부터 공식적으로 여름이라고 하더니 얼추 맞아떨어지는구나. 어제 보니까 반팔옷 입은 사람이 노약자 중에서도 꽤 보이고. 지난주까지 입었던 손이 갔던 겨울옷은 넣고 여름옷을 꺼내서 옷장에 넣어야겠다.


-그 셔츠 입고 가려고? 지금 밖에 30도야

원래 입었었던 흰 티에 검은색 긴팔 남방보다 훨씬 심각한 두꺼운 회색 모직 겨울남방을 입으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제이. 몇 년 전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기 아빠에게 선물 받은 한겨울 남방..


-뭐야 그건 겨울 셔츠잖아, 다 벗고 그냥 반팔 폴로나 티셔츠 한 장만 입어. 엄청 더워 오늘

-난 이거 입을 거야. 이 셔츠가 좋아.

-덥다고! 또 땀 줄줄 흘리고 나면 너 상태가 더 나빠질 거고 그럼 난 남은 하루 어떻게 버텨! 됐어. 그냥 내가 아이 데리러 갈게. 넌 그냥 점심 먹기 전까지 좀 자.


어느덧 차키를 챙겨서 운동화를 신고는 경쟁하듯 빠르게 나가서 시동을 건다. 일단은 내가 뛰어도 대적할 수 없는 속도일 테니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기로 한다. 무사히 돌아오기를. 아이에게 못볼꼴 제발 덜 보이기를.. 왜 내가 더 빨리 나가지 못했었나 생각하면서 시계를 본다. 11시 35분.


20분이 지나고 아이가 먼저 들어온다. 올해 첫 더위에 찌는 듯한 차 안에서 짧은 거리였지만 푹 익어버린 딸아이도 제법 예민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이에게 샤워할 것을 권유했지만 싫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초대장을 줬는데 도대체 오는 건지 마는 건지도 모르겠고 엄마도 도와주지도 않는 것 같고 너무 화가 난다고 한다.


또 그 옆에는 제이의 돌림노래 같은 말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난 너무 나약해. 쟝 크리스토프 바래즈가 나한테 무리한 걸 요구하는 데도 나는 그걸 거절을 못하겠어. 그래서 나는 그 일들에 치여서 정작 내가 할 일을 못하는 경우도 많아. 사람들이 내게 계속 물어봐. 언제 잘릴 건지. 또 어떤 때는 아직 안 짤렸냐고 물어봐.



환난 같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아이가 물어본다.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주면 안 돼? 아빠 너무 부끄러워.

-알았어. 우리 사부작사부작 걸어서 가자. 차 안이 너무 덥더라. 아빠는 낮잠 좀 자게 하구


오후 1시 25분에 우리는 뙤약볕 속을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평화의 시간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 발 한 발 한걸음 한걸음에 재생의 시간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이 걸음 옮길 수 있는 두 다리와 두 발을 주심에 감사, 이 불타는 젊음의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주시고 이 세상 삼가만상을 볼 수 있는 시력을 허락하시고 새소리 우리 공주 노랫소리 들을 수 있는 귀한 귀 또 이름 불러주지 않으나 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


그리고 16시에 다시 아이를 찾으러 갔다. 이번에는 제이보다 더 빠르게 나가기 위해 서둘렀다. 아직 낮잠을 거부하며 술에 찌들고 스트레스와 피로에 찌들어 삶과 죽음의 그 언저리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잠투정 중에서 단연 손꼽힐 만한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마흔둘, 젊디 젊은 남자지만 첫 더위에 영혼까지 가출하고 비루한 몸뚱이도 감당하지 못하고 자식에 대한 확신도 사랑도 자신에 대한 연민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너에게 아이를 또 맡기진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 섰다. 서둘렀다. 더웠지만 빠르게 집을 나섰다. 여전히 햇살은 강했으나, 아이는 그새 이 급격한 온도변화에 익숙해져서 나를 기쁘게 맞아줄 것을 상상하니 어느새 걸음은 빨라지고 뛰어가고 있는 내가 있다.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휴대폰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학교에 도착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열댓 명 남짓의 학부모수를 보았을 때 아직 시간이 안된 듯하다. 그래도 내가 몇 분만에 학교에 도착했는지 궁금해서 폰을 보고 있는 한 엄마를 발견하고는 거기를 지나가면서 슬쩍 폰화면에 눈길을 두었다. 보일리가 만무하다. 눈도 예전 같지 않다. 라섹을 하면 노안이 더 빨리 오는 법.. 폰 주인이 나를 쳐다본다.

-아, 혹시 몇 시나 됐나 해서요

-네 시 이십구 분이네요

-아, 고마워요.


그러고 몇 분 사이에 어딘가에서 학부모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온다. 이사 오기 전에는 방과 후 픽업을 한 이십 분 전에 가도 학부모들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학교이야기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는 분위기였고 생일초대도 꽤 많았었다. 그런데 여기는 딱 픽업시간 맞춰서 아이만 딱 찾아가는 그런 풍경이다. 삶의 질도 교육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파리 외곽이다. 하지만 분명 상대적으로 부촌이었던 이사 전 동네보다 좋은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뜰 수 있기를 바란다. 삶의 문턱 어디에서든 혜안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갑자기 제이가 나타났다.

핑크색 마샤 도시락 가방을 들고. 두꺼운 청바지에 아까 입은 겨울 모직 남방과 그 안에 두꺼운 하얀색 티셔츠가 꽤 더운지, 아니면 그냥 저질체력이라서인지, 땀이 비 오듯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눈은 풀려있고 걸음은 비틀비틀..


만약 저 셔츠와 바지에 때가 묻어 꼬질꼬질하고 더러운 신발을 신고 있었다면 진짜 파리의 어느 지하철 역사에서 본 그들과 다른 것이 전혀 없다. 피로하고 지친 표정에 무엇하나 기대하거나 기다릴 수 없는 잃을 것 하나 없는 듯 현생과 전생 사이 어딘가에 표류하고 있는 사람들.. 이들에게선 특유의 냄새가 난다. 파리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그들의 영역표시는 영원히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을 듯 곳곳에 박혀있다. 움직임 없는 지하철 역사에 이 짙은 냄새가 파묻혀있다면, 이곳을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생동감을 더해주는 지하철도 승객칸에는 봉다리 봉다리 뭐를 알뜰하게도 담고 있는 그것들이 그들만의 수레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그 들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무척이나 경건해진다. 그리고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들이 픽한 자리는 무조건 옆 앞이 싹 다 비워진다. 바쁜 출퇴근 시간에도 이들은 네 자리를 차지하고 편히 이동할 수 있다.


다행히 아직 제이에겐 저 냄새는 나지 않는다.

그냥 술냄새, 니코틴 쩐 냄새 정도가 다다. 그런데 갑자기 저이들도 처음엔 저 냄새를 달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소름이 돋는다. 15년 전부터 제이는 파리의 노숙자에 대해 상당히 관심 있어했고, 사람이 살면서 시스템 밖으로 밀려나는 순간 그 어떤 비극이나 절망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그 존재감을 우리에게 확인시킬 것을 암시해 왔었다. 그 모습에 안쓰러워 나는 이 친구와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그를 도와주려고 했었던 것이고, 지금은 그 연약함이 너무나 버거운 것이다. 과연 우리의 미숙한 선택은 어떤 잔인한 결과까지 낳을 수 있을지 혹은 어떤 고통까지 넘어설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내가 데리러 간다고 했잖아. 너 지금 정말 상태 안 좋아 보여

순간 마음이 상한 제이는 마샤 도시락가방을 들고 오르막길을 따라 씩씩거리며 가버린다. 나는 너의 그 모습은 화가 아니라 슬픔에서 기인함을 알고, 그 가방 속에는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어제 샀던 초콜릿우유 200미리가 들어있음을 알고, 너는 지금 그 상태로 빵집을 들어설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 빵집은 술레만 가게인데.. 이런 식으로 딸내미 친구 하나가 또 떨어져 나간 걸 며칠 뒤 알게 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제이가 지나갈 때 시간을 알려준 엄마가 그를 유심히 보는 것을 봤다. 그리고 나와 잠깐 얘기하다가 떠나가는 것까지 본 듯하다. 나는 다시 그녀를 쳐다보았다. 다시 씁쓸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행히 우리 둘 사이에 있던 애 아빠는 그 반 애들이 나와서 자기 아들을 데리고 갔다. 1학년 선생님 두 분이 보이고 2학년과 3학년 선생님과 아이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이에 그 휴대폰 엄마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 발씩 다가섰다.


-여기 프랑스 여자들은 배우자가 심력과 체력이 너무 빈궁하여 마치 돌파구가 없는 듯 보일 때 보통 어떤 선택을 할까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 나는 포르투갈 출신이에요. 우리는 여기랑 비교했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아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좀 건강한 편인 것 같아요.

-아, 내가 작년에 일할 때 포르투갈 동료도 있었는데, 정말 긍정적이고 성실하고 참 좋은 사람이었네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가 비슷해서 사람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만난 범위 안에서 그 둘은 스타일이 꽤 다르더라고요 국민성이 있는 것 같아요

-네, 우리랑 스페인사람들이랑 언어 말고는 크게 비슷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포르투갈이 최근에 오랫동안 경제적 침체가 있던 상황을 넘어섰다고 하던데

-네, 유럽에서 이런 경제 위기를 넘어서는 선례는 거의 없다고 알고 있어요.

-그렇죠. 그리스만 봐도

-네, 이번 주 금요일에 우리는 가족들이 있는 포르투갈로 바캉스 떠나요.

-아 좋으시겠네요 이제 며칠 안 남았네요?

-네 나중에 포르투갈로 바캉스 꼭 한번 오세요 좋아하실 거예요

-네 그렇잖아도 바닷가 근처에 맛집이 많다고 들었는데, 근데 아이가 몇 학년이에요?

-3학년이에요

-아, 저기 애들 나오네요


-엄마! 이거 봐 리나가 나를 위해 그림을 그려줬어. 봐봐 여기 쥬뗌도 있지? 하트랑~

-아 그래, 아, 그럼 바캉스 잘 보내시고 나중에 또 뵐게요

-그래요, 좋은 오후시간 보내시고 다음에 봬요


아이는 나의 예상 그리고 바람대로 이 새로운 계절에 온전히 녹아 그것과 일체가 되어 있었다. 감사했다. 그때 제이가 빵봉투와 마샤 도시락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여전히 화가 난 상태이다.


-엄마, 무서워. 아빠 이상해

-제이, 그냥 우리 걸어갈게

-엄마, 무서워..

-괜찮아, 아빠 피곤해서 집에서 좀 자라고 했는데..

들은 건지 만 건지 몇 걸음 가서는 빨리 길을 건너오라고 한다. 주차장 앞에 서 있는 그를 못 본 척하고 돌담길을 따라 걸음을 재촉한다.

-이쪽이라고 이쪽!

-엄마, 부끄러워….

-괜찮아 봐 봐 앞에도 뒤에도 반아이 없잖아, 그렇지?

-그래도 부끄러워!


한참을 따라오다가는 포기하고 마샤 분홍색 도시락가방과 빵봉투를 들고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엄마, 우리는 차 안 타고 가?

-아무래도 차 안이 꽤 더울 거야, 오늘 점심 먹으러 올 때 기억하지?

-어.. 알았어

-그건 그렇고, 우리 앤돌핀 공주. 학교에서 오늘 오후에 기분 좋았던 거 3가지만 얘기해 줄 수 있어?

-음.. 첫 번째는 리나, 레나, 앙쥬, 그리고 네일라랑 술래잡기한 거. 그리고 리나가 스티치 볼펜 준거랑 예쁜 그림 그려서 나한테 준거

-세 번째는?

-세 개 다 했는데?

-리나 꺼는 두 개를 그냥 하나로 묶고 뽀너쓰로 하나 더 얘기해 주면 엄청 고마워~

-알았어. 선생님이 나를 아주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라봐준 거. 내가 뭘 잘했거나 칭찬받을 상황이 아니었는데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따스했어. 이 순간이 정말 기억에 남아. 근데 아빠 지금 도착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상태일까? 음… 1번. 캄다운된 침착한 상태  2번. 자고 있는 상태  3번. 베티즈(말썽) 부리는 상태.. 난 긍정적인 상황을 기대하면서 2번 고를게.


나는 왠지 아직까지 잠을 참고 바캉스 때나 할 행동을 오늘 대대적으로 할 것 같은 느낌이 왔지만 아이에게 나도 2번이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아이는 빨리 도착해서 자신이 정답을 골랐는지 확인해 보려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아이의 육감이란 것은 어른의 그것을 이겨냈다. 아이들의 희망적 메시지는 어른들의 걱정 근심을 이겨낸다. 차가 집 입구에 주차되어 있는 것에서 아이는 이미 환호성이다. 아빠가 도착했다. 그리고 내가 이층으로 올라가서 방문이 닫혀 있는 것을 확인 후 내려와서 맞네, 네 말이.라고 할 때 그 기쁜 표정이라니..


이제 잠을 자고 나면 피로가 좀 풀릴 것이고, 거기서 좀 더 풀려면 고기를 사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시 반. 여전히 바깥엔 체감온도 33도. 지난주까지는 20도 안팎이었고 다음 주에도 20도 안팎으로 예보되어 있다. 삼사일만 견디면, 심지어 즐기고 나면 다시 선선한 시간이 온다. 여하튼 아직도 작열하는 태양을 뚫고 정육점으로 가야 한다.


-엄마 고기 사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아 그냥 있는 거 먹으면 안 돼?

-네 아빠 고기를 사서 먹여야 해. 좋아하는 거 듬뿍 먹고 푹 자고 일어나야 내일은 베티즈안하지. 소에게 풀을 주듯이.

-깔깔깔깔. 소에게 풀을 주듯이?

-야, 너 이 농담 이해한 거야?

-어, 음무음무

-한국어 완전 잘하는데?

-알았어, 가방 준비해서 내려올게

-무거운데 무슨 가방이야, 그냥 가자~

-알았어~


아이는 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에 BD 베대, 연재식 만화를 만들고 있다. 오늘 교실에서 한 학생이 ‘할렐루야’라고 한 말에 담임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laïcité라이시떼에 대한 설명을 칠판에 써가며 아주 진지하게 강의했고 여기에 영감을 받은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다민족국가이고 역사적인 이유까지 더해져 종교에 대해 민감한 나라이다 보니, 학교에서는 종교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를 넘어 언급하면 안 된다의 분위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농담으로라도 ‘할렐루야’라는 말을 쓸 수 없다는 것을 딸아이는 오늘 알게 되었고 이것이 꽤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다 만든 베대를 부엌으로 와서 보여주고는 거실로 돌아가던 아이가 ‘아빠 뭐야’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전에 제이가 일어나는 소리도 들은 듯하다. 오후 다섯 시에서 일곱 시 반까지 잤으면 어느 정도 상태가 회복이 되었을 것을 예상했는데.. 아이가 다시 부엌으로 돌아온다.


-엄마, 아빠가 완전 알몸으로 내려오고 있어. 빡티 앙팀, 거기도 다 보여.

-어디?

-빡티 앙팀, 거기!

-팬티는 입고 있었겠지..

-아니야! 완전 다 벗었어.

-보이면 눈을 감지 그랬니..

-어?

-그니까..

-근데 왜 다 벗은 거야?

-더워서 다 벗고 잤나 보네..


참 매번 새롭지만, 이번 경우는 또 처음이라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저녁이 마무리 단계에 있고 아… 진짜 골고루 한다. 참 예상치도 못한 일이 예상치도 못한 시간에..


대화의 주인공이 부엌으로 들어선다. 팬티를 입고. 그런데 안팎이 뒤집힌 상태다. 아이는 배 주변에 난 털들과 불룩 튀어나와 있는 그 부분을 유심히 살펴본다.


-아빠 이제 팬티 입었네. 근데 뒤집어 입었어!


아이는 상당히 담담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쫄팬티 한 장을 장착하고는 냉장고 문을 연다. 우유를 꺼내더니 아이 컵에 따른다. 그리고는 오븐을 예열한다. 냉동실의 문을 열고 크루와쌍을 꺼낸다. 아침 먹을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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