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밑줄을 긋다
며칠 사이 두 권의 책을 더 구입했고, 그중 소설은 침대 위에 또 다른 에세이는 퇴근 후, 당신의 글은 출근 전 읽었습니다. 두세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습관은 동일한 물성의 책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소화하길 즐기는 욕심 덕분인데.
그나마 요령이 있다면 밤의 책이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낯선 단어와 잦은 인용을 검색하며 시간을 쏟느라 부산하다면, 그와 반대로 아침의 그것에는 긴 호흡을 두는 편입니다.
하루 삼십여분 시간의 틈에 놓았다 해도 이번만큼은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린 것은, 글밥의 세계에서 이만큼 솔직하게 자신을 벗겨놓는 이가 드물어 아껴 읽은 탓도 있습니다.
당신을 읽는 동안 저는 장면과 장면 사이에 스스로를 앉혀두고, 과거로 다녀오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문장에선 작중 수진에게 이입하고 주변을 보다가, 며칠 전에는 단막극을 보듯 페이지를 더듬길 수차례...
그도 그럴 것이 '용기'라는 것이 컵라면을 먹겠다고 하고 '용기'에 물을 붓고 기다리면 곧 라면이 되는 그것과는 달라서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불쑥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어서가 아닐지요. 이 며칠 동안 저도 덩달아 그때의 나에게 고생했다 수고했다며 멋쩍게 그러고 있더란 말입니다.
어느새 장마의 초입, 이런 날에 용기를 내는 법을 배웠으니, 다음 계절에 저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다른 누구도 아닌 저 자신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길, 그리고 이듬해 어느 날 당신에게 찾아가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