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축복인가?

아빠로서 내 아이에게 미안해질 때

by 문군

둘만의 합의하에 아이 없이 사는 부부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딩크족이라고 부른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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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딩크족을 꿈꾸지 않았지만 아이를 낳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긴 했었다.

아이가 태어나서도 그런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아이에게 쏟아야 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아이가 내는 소리와 표정 그리고 몸짓들이 나에겐 그 이상의 행복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계속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그건 삶에 대한 나의 관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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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것은 정말 축복인가?

삶이란 것이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인지 형벌인지 난 헛갈렸다.

작고 미미한 행복을 위해 크고 강렬한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삶이 아닐까 싶었다.

기왕 태어났으니 사는 것이고,

기왕 사는 것이니 즐겁고 기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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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은 웃음이 아니라 울음과 함께 시작된다.

모든 사람이 울음으로 삶의 신고식을 하는 셈이다.

갓난아기들도 웃는 시간보다 우는 시간이 많다.

배고파서 울고 졸려서 울고 아파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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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마찬가지다.

매 순간순간 몸이 힘들고 마음이 아프다.

아침에 등교나 출근을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것부터 괴로운 일이다.

배가 고픈 것도 졸린 것도 피곤한 것도 이런 것을 참고 일을 하는 것도 다 고통이다.

어디 아프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괴로움이 몇 곱절로 늘어난다.

비단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때론 삶을 스스로 포기할 정도로 클 수 있다.

불교에서는 사는 게 모두 고통이라고 했다.

그 이유가 이런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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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보며 가끔은 미안하고 안쓰러울 때가 있다.

부모의 이혼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미안한 것이 있다.

'생'은 부모가 준 것이지만 나머지 '노', '병', '사'의 고통은 오롯이 스스로 감당하고 견디어내야 한다.

한창 젊고 예쁘고 정신적인 고민도 육체적인 고통도 적은 어느 시절 어느 순간으로 평생을 살 수 있다면 덜 안쓰럽겠다.

그러나 누구도 그럴 능력은 없다.

내 아이도 늙어갈 것이고 때론 아플 것이며 언젠가는 삶의 마지막에서 불안과 고통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고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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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내 아이는 지혜롭게 그 과정을 잘 견뎌내기를 바란다.

이왕이면 철학적인 성찰도 할 줄 아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

염세주의자 말고 낙천주의자가 되었으면 더 좋겠다.

그래서 삶의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을 즐겨 보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렇게 마음이 행복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러면 아빠로서 덜 걱정되고 덜 미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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