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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Oct 29. 2023

일상

늘 반복되는 순간순간이 소중하다.

"주말엔 집에 혼자 있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외출을 좀 하시는 게 어떨까요? 점심과 저녁 식사는 제가 알아서 먹을 테니."


아들은 애써 존댓말을 써가며 남편과 내가 나가 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본인 외에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공부하고 싶고, 혼자 밥 먹고 싶고, 혼자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나가는 건 나도 좋다마는 아직 주말에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기에 막상 나가달라고 해도 망설여지는 쪽은 나였다. 내가 머뭇거리자 남편은 다 놔두고 오랜만에 "시내"나들이를 나가 보자고 한다. 아직 세탁기가 다 돌아가려면 20분이 남았고, 아들의 점심 식사도 준비를 해 주고 나가야 할 것 같다고 하자 남편은 그마저도 놔두라고 한다. 알아서 먹겠다는데 그냥 그렇게 하도록 시간과 공간의 기회를 주면 오히려 아들이 더 좋아할 거라고. 빨래도 다녀와서 널자고...... 결국 간단한 채비만 한채 우리 부부는 나들이를 시작했다.


오후 한 시.

어디로 가볼까. 

일단 밥부터 먹어야겠는데 며칠 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우리 지점 차장님이 진짜 맛있다고 추천해 준 보수동 책방골목 근처에 있는 중국요릿집으로 가자고 남편에게 제안했다. 


일요일 오후의 도로는 토요일의 그것보다 한산했다. 외곽 도로가 아니어도 편안한 드라이브 느낌을 살려 준다. 차 앞유리를 뚫고 들어오는 직사광선의 강렬함과 약간의 창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의 펄럭거림이 짝꿍처럼 우리가 탄 자동차를 따라다니는 듯하다. 


남편은 주말이라 보수동이나 남포동 쪽 주차장은 혼잡할 테니 오피스 단지가 밀집돼 있는 중앙동 쪽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는 편이 좋을 거라고 말한다. 남편의 말대로 중앙동은 한산했고, 주차장에 차가 거의 없어서 편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대신 보수동 까지 15분 정도 걸어갔다. 산책 삼아 천천히 가로수길과 골목길을 걸으니 어느새 세탁기 속 빨래며 아들 점심밥 생각은 다 사라지고 여고시절 처음 이곳으로 친구들과 왔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먹먹했다가 또 한편으로는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보수동 헌책방에 자습서 사러 간다는 명목으로 국제시장이며 남포동 거리를 쏘다녔던 열일곱, 열여덟 살의 내가 삼십 년이 지난 오늘 보수동 거리의 어느 곳에서 남편과 함께 걷고 있었다.


아침으로 옥수수 하나 먹은 게 전부였던 나는 식당에 이르자 급한 허기가 몰려왔다. 차장님이 꼭 먹어보라고 했던 간짜장과 삼선짬뽕을 주문했다. 그리고 탕수육도 먹어보고 싶다고 했더니 늘 그렇듯 남편은 "우선 주문한 것 먹어보고 부족하면 주문합시다."하고 나의 식욕을 제지한다.

주문하고 5분 정도 지나니 음식이 나왔다. 음~맛있다. 차장님 추천 맛집은 실패가 없다. 중간쯤 먹고 있는데 옆테이블 20대 정도의 남녀 커플이 탕수육을 먹고 있길래 남편에게 "배가 불러도 탕수육을 꼭 먹어보고 싶네요."하고 다시 한번 말했더니 남편도 아쉬운지 먹자고 한다. 바삭함이 눈으로도 느껴지고, 맛도 너무 좋아 우리는 탕수육 한 접시를 깨끗하게 다 비웠다. 식후 배부름을 기분 좋게 느꼈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으로 가보았다. 

몇 권의 헌 자습서를 사서 갈색의 빳빳한 비닐봉지 속에 넣은 채 마냥 즐겁게 다녔던 내가 보였다. 그곳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30년 전의 그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었다. 

남편이 물었다. "과년도 자습서로 공부하면 바뀐 내용 때문에 불편하지 않았어요?"

나는 대답했다. "음...... 내용이 바뀌었는지를 알아차릴 만큼 책을 다 본 적도 없고, 열심히 하지도 않아서 전혀 불편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빵 터지면서 웃는다. 아이러니하게 나는 웃음과 눈물이 같이 나온다. 왜 그런지는 알겠는데 그 묘한 감정을 지금 글로 표현하기에는 아직 어렵다.

천천히 걷다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가량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과 우리 부부는 서로 윈윈한 하루였다.

아들은 혼자서 운동도 하고, 기타도 치고, 자습도 했더니 좋았다고 한다.

일은 좀 밀렸지만 아들 덕분에 남편과 나는 다섯 시간의 휴식을 가졌다. 게다가 나는 그리움과 아름다움이 섞인 내 추억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은 분주하게 세탁기 속의 빨래를 널고, 아들의 교복셔츠를 다렸다. 나는 전복죽을 저녁식사 메뉴로 정하고 주방에 서 있었다. 아들은 식사 때 까지 자습하겠다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소중한 오늘이 이렇게 무사히 잘 마무리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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