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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일신 Oct 28. 2022

공무원의 근평 그리고 승진

공무원도 근무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 우리 지자체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한다. 근평이라고 줄여 부르는데 S, A, B 이런 식으로 등급을 나눈다. 이 근평 등급이 낮으면 받을 때도 기분 나쁘지만 이 기록이 쌓여 승진 순위가 결정되므로 민감하다. 부서장들이 일단 등급을 분류하고 윗선으로 올라가는데 그래서 승진을 앞둔 직원들은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어필을 한다. 나중에 풍문으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절실함이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구나 싶을 때도 있다. 직원들끼리 뒷담화 하다가도 너도 그 상황 되어 봐라, 그렇게 안 할 사람 몇이나 되나, 결국 사람 다 똑같아라며 마무리를 할 때도.... 그런데 이 근평 기준이 받는 입장에서는 정말 명확하지 않다고 느낀다. 물론 기준을 명시되어 있다. 업무의 전문성, 창의성 등등. 그렇지만 본인 업무가 어렵지 않고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모두 내가 제일 고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근평 하는 부서장 입장에서도 어렵긴 할 것 같다. 그래서 어떤 부서장은 승진에 임박한 사람을 좋은 등급을 주고 어떤 부서장은 본인과 합이 잘 맞게 일한 직원 좋은 등급을 준다. 바로 이런 점이 직원들의 공분을 산다. 부서장들 마다 기준이 다르니 이게 누굴 위한 평가인가. 한 줄 세우기를 하려면 같은 기준으로 세워야 하는데 그 기준을 이해하는 방법들이 부서장마다 다르니 여기저기서 불만이 나온다. 나는 비흡연자지만 정말 먼 산보고 담배 한 개비가 생각나는 순간들 ㅜㅜ


이 근평의 시간이 오면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나 자리 옮겨야 하나. 업무 맡은지도 꽤 되었고 이 부서에서는 점수받기 글렀다 싶으면 '조직도' 보며 내가 갈만한 자리들을 찾는다. 이 자리 이번에 승진 차례래~ 누구 나간대~ 이런 정보도 중요하고 사실 부서장이 누구인가도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부서장 하고 잘 맞아야 일하기도 편하고 여러모로 수월하다. 팀장이 어려우면 그 팀만 힘들지만 부서장이 보통 아니면 부서 전체를 넘어 부서와 협조해야 하는 부서까지 힘들다. 팀장-부서장이 갈등이 있으면 가운데 낀 직원들이 죽어난다.

이런 종합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이 자리 저 자리를 고민한다.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속앓이 할 때도 많다. 속으로는 '어디 있으나 퇴직할 때 공무원으로 퇴직하는데 대충 아무 데나 있다 갈까, 이 하급직 공무원 생활 뭘 그렇게 충성하려고 하나' 싶다가도 동기나 비슷한 시기에 발령받은 직원들이 치고 나가는 것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남 앞서려고 내 점수 관리하라는 게 아니라 내 몫 찾아먹으려고 관리하는 거라고 주변에서 뼈 있는 충고를 해주신다. 그래서 대체 내 자리가 어디인고 하며 조직도를 열심히 본다. 그동안 해봤던 업무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며.


인사이동은 상반기, 하반기 각 1회씩 총 2번 정도 있다. 6개월마다 매번 바뀌지는 않지만 2년 이상되면 바뀌는 경우가 많다. 인사이동으로 업무가 바뀌면 인수인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은근히 크다. 인수인계가 어려운 이유는 업무가 다양해서이다. 일단 주민등록업무처럼 법정사무를 주로 맡는 업무가 있다.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 증명서 같은 서류는 그냥 아무나 떼 달라고 한다고 발급해 줄 수 있는 서류가 아니다. 본인이 본인 관련 서류를 발급받고자 할 경우는 거의 가능하다. 본인 신분증만 있으면 100% 발급 가능하다.(신분증이 너무 흐리거나 운전면허증 갱신기간이 지난 신분증은 어렵다. 무인민원발급기로 안내해드린다.) 그런데 본인 이외의 서류를 발급받고자 할 경우는 담당자가 바빠진다. 신청인이 발급을 요청할 자격이 있는가를 먼저 따져본다. 그래도 친인척은 자격요건이 명확하다. 그런데 이해관계인으로 분류되는 경우는 담당자가 즉시 발급을 하기가 어렵다.(이해관계인은 채권자, 법원 판결로 정보 요청 등이며, 즉시 발급은 3시간 이내 발급을 말한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법규와 지침을 바탕으로 판단하여 신청자의 자격요건을 검토한 후 발급을 하거나 불가 안내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긍하는 민원인도 있고 '아니거든~!!' 하며 우기는 민원인도 많다. 이 민원을 대처하는 게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런 업무는 정해진 법규 내에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업무 처리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러면 성과가 없는 업무 인가? 덜 중요한 업무인가? 민원 대응으로 쏟는 에너지는 성과로 분류될 수 있는가?


사업을 담담하는 사업부서들도 있다. 크고 작은 사업들을 진행하는데 건설 부서도 있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도 있다. 건설 부서는 우리 생활에 필요한 지방도로를 만들고 보수하는 일 등 주민생활에 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사업을 하고, 경제 부서는 주민 생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사업을 많이 진행한다. 상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라던지 전통시장의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라던지. 농정이나 산림 부서는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농업인이나 임업인을 대상으로 해당 분야를 보호하기 위한 수혜적 사업, 예를 들면 매년 작물의 시장 가격에 따라 농임업인들이 소득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 갭을 보전해주려는 직불금 같은 제도들이 있다. 이런 사업들은 1년 단위로 사업하는 경우가 많아서 관련 법규정과 계약 등 진행 절차, 그리고 간간히 관련 보고자료 등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 자체만으로도 바쁘고, 직원 한 명이 진행하는 업무도 있고 읍면 소속 직원 협조가 반드시 필요한 업무도 있다. 이럴 경우에는 최종 담당자 한 명이 성과를 낸 것인가? 수혜대상이 많은 사업이 더 성과가 잇는 것인가?


이번에는 행정지원 부서가 있다. 일반 대민행정은 아니다. 이 업무는 말 그대로 행정을 지원하는 업무이다. 기획, 예산, 인사, 경리 부서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부서들의 주 민원은 내부 민원이다. 직원들이 민원인인 셈이다. 공무원이 제일 상대하기 싫은 민원인 1위가 전직 공무원, 2위가 현직 공무원이라는 우수갯 소리가 있다. 그만큼 친분 있는 직원들이 오히려 더 껄끄럽다.  그리고 윗 상사가 내부 민원인인 경우. 매우 어렵다. 층층시하 시집살이하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시집살이시키는 만큼 공무원 인사고과를 받는 것에는 유리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한 번이라도 얼굴을 더 보는 직원을 챙기게 되니까. 그래서 타 부서들이 인사철만 되면 늘 지탄한다. 대체 인사의 기준이 무엇이냐!!


공무원의 업무는 정말 다양하고 방대하다. 이 업무들의 성과를 일렬도 세우는 것은 사실 나도 이 글을 쓰면서 헷갈린다. 민원업무 볼 때는 민원이 힘들다고 느꼈었는데 사업 업무를 볼 때는 정말 고달픔이 상상을 초월했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이다. 본인들이 맡고 있는 업무가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 너 있을 때는 편했어, 지금은 더 힘들어' 서로 입장이 바뀌어봐도 똑같다. 지금 맡고 있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행정은 성과의 기준이 뚜렷하지 않다. 가시적인 결과물이 있는 업무도 있고 없는 업무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처럼 수익을 창출하는 분야도 아니다. 그래서 절대적인 기준을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제발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다.)


공무원이 절대 양보하면 안 되는 2가지가 있다고 한다. 한 가지는 국외연수(업무로 국외 선진지 견학과 같은 공무 국외 출장을 가는 경우가 있다.), 또 한 가지는 승진. 이 두 가지는 지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내 몫으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놓치면 안 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공직생활에서 몇 번 되지 않는 기회들이다. 직원들 업무 역량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큰 경우는 많지 않다. 거의 중간에 고만고만하게 몰려있다. 이 가운데 몰려있는 사람들 중에 승진을 1번만 하고 퇴직하기도 하고, 승진 5번 하고 퇴직하기도 한다. 1번이든 5번이든 본인들은 늘 언제나 마음속 승진 순위 1순위였을 것이다. 내가 승진을 꼭 해야만 하는 이유를 가진 사람은 수도 없이 많지만 내가 승진 안 해도 되는 이유를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월급쟁이에게 승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절실하고 절박하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업무와 근평에 매우 예민할 수밖에 없다. 나를 포함한 절박한 자들에게 건승을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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