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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일신 Sep 01. 2022

꼰대다

" 저기 어제 내가 말한 거 어떻게 돼가? 빨리 해줘야지. 지금 그게 급한 게 아니잖아. 그것부터 빨리해"


대부분 승진을 앞둔 상사는 직원을 달달 볶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동안 겪어본 팀장님들은 거의 그랬다. 반면에 퇴직 앞둔 상사는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거의 반 사회인이다. 자기가 그렇게 열심히 일했지만 나갈 때 되니 다 별거 아니더라부터 시작해서 애 잘 키워라, 건강 챙겨라, 일은 나 아니어도 다 잘 돌아간다 등등 후배들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라고 정말 늘 비슷한 말들은 전하신다. 예전에 작은 면사무소에서 근무할 때였는데(지금은 면사무소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말년이 되면 고향이 생각나시는 건지 다들 퇴직 코앞에 둔 분들이 고향에서 퇴직하고 싶다고 그 면사무소로 인사이동하여 오셨다. 반년 뒤 퇴직할 분이니 험한 소리 하기도 싫으실 테고 직원들도 뭐 적당히 비위 맞춰드리면 서로 편하니까 서로서로 좋은 게 좋은 거다하며 기분 좋게 지냈다. 그렇게 그분은 짝짝짝 손뼉 치고 퇴직 전 공로연수(공무원이 정년퇴직할 경우 반년에서 1년 정도 공로연수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공로연수기간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한다.) 들어가시고 이제 좀 일할 사람 오나 싶었는데 또......... 또 고향에서 퇴직하고 싶으신 분이 또........ 아니 그동안 뭐하고 퇴직할 때 되니 고향 발전을 위해 마무리하고 싶다나 뭐라나. 그럼 정말 다신 일 하실 일 없으니 최선을 다해 일하시던가. 막상 고향에서는 고향 주민분들과 척지고 싶지 않으시니 싫은 소리 한번 못하시고 아래 직원들 곤란하게 하시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도 퇴직하실 분들은 말년에 힘이 많이 빠져서 그런지 가끔 측은해 보일 때도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승진 앞둔 상사들이다. 이분들은 기운이 너무 넘쳐서 직원들을 달달 볶아댄다. 이분들의 니즈가 넘쳐나니 아래 직원들이 그걸 다 담아내질 못한다. 그럼 꼬옥 한소리씩 퍼붓는다. 너 그렇게 해서 앞으로 일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남들 보기에 눈에 띄는 일을 해야지, 이걸 일이라고 이렇게 가지고 있느냐, 내가 그때는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아니면 아니라고 했어야지 등등. 속으로는 '그럼 본인이 직접 하세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분들도 원하는 대로 착착 진행이 안되니 답답해서 그럴 테지만 직원들도 하나의 인격체인데 일하다가 감정이 상해버리면 정말 그때부터 직장생활이 어려워진다. 이렇게 한차례 쏟아붓고 나면 이분들도 아래 직원 눈치 보게 되고 '생각해보니 심하게 말했다'며 나중에 술 한잔 하며 풀자는 식으로 말씀하실 때가 있다. 엥???? 성질난다고 본인 하고 싶은 말 다 해놓고 미안하다고 급 사과하고 본인은 다 풀었다는 식?? 나는 이럴 때가 정말 황당하다. 사람이 귀가 2개요 입이 하나인 이유가 남의 말은 많이 듣고 말은 가려하라는 뜻 아닌가. 남의 사정을 듣으려고도 하지 않고 본인 하고 싶은 말만 뱉어놓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본인 마음이 불편하니 내가 사과하면 무조건 풀어라 이 말 아닌가. 더군다나 나는 술을 싫어한단 말이다. 그냥 처음부터 사과할 말을 안 하면 된다. 유치원 다니는 어린아이들에게도 남에게 상처될 말은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한 집에 사는 가족끼리도 상처될 말은 조심해서 말한다. 하물며 직장에서는 오죽하랴! 나는 이럴 때마다 내가 저 자리에 가더라도 절대 저러지 말자, 윗 상사-아랫 직원이라는 이런 수직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같은 동료라고 생각하고 존중하자라고 되뇐다. 


요즘 사람들은 술도 안 좋아하고 회식도 싫어하고 야근도 안 하려고 한다고 한 마디씩 하시는 옛 어르신(?)들이 계신다. 그래서 서로 유대를 쌓을 기회도 적어지고 직장문화가 삭막해진다고. 마치 모든 게 젊은 직원들의 태도 문제인 것 마냥 말이다. 조직 문화라는 게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구성원이 변하면 바뀌는 게 당연하다. 지금 신규로 들어오는 직원들이 앞으로 우리 조직 문화를 변화시킬 주인공들이다. 이 직원들의 문화가 20년 뒤 기성세대의 문화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타성에 젖어있는 야근문화, 회식문화는 저 옛 어르신(?)들 퇴직과 함께 점점 사라질 문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 많은 게 권력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금 앞에서는 일단 예예하고 따르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이런 불만들이 상당하다. 이 젊은 직원들과 교류하려면 기존 문화를 버리고 그들의 문화와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내가 신규로 들어왔을 때도 '참 요즘 애들은~' 이런 말 많이도 들었다. 그런데 우리 또래가 지금 들어오는 신규 직원들 보며 저렇게 똑같이 말한다. 이런 식이면 우리도 바로 꼰대가 될 수 있다. '그 말은 옛날 고대 벽화에도 있었대'라며 웃어넘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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