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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AN Jul 18. 2023

#001. 첫 만남

DIY FAMILY


2021년, 제법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 우리는 처음으로 만났다.




그즈음의 나에게는 데이팅 앱을 통한 만남이 익숙했다. 

어플 켜고, 스와이프, 매칭되면 티키타카 대화 나누다가 괜찮아 보이면 만남 약속 잡기.

딱히 운명적 만남이나 진지한 관계를 원하진 않았다. 

목적은 그냥, 인간다운 인간 만나서 즐거운 시간 보내기? 

말라붙은 나의 연애세포에 작은 불씨나 지펴주면 더 좋고.


그 어느날에도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어플에 접속했던 것 같다. 

마구잡이로 왼쪽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하던 중, ‘그’와 매칭되었다.




그의 프로필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지만, 

깔끔한 문구와 내 취향 범위에 들어서는 사진들을 확인하고 잠깐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사진이 도용은 아닐지, 혹은 사기급의 보정을 거친 작품일지… 

약간의 걱정이 있었지만 가장 걸렸던 건 그의 분위기.


간헐적으로, 하지만 장기간 데이팅 앱을 사용했던 내 경험을 토대로, 

이런 차가운, 도시적인 분위기의 남자는 나같은 외형의 여성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가뭄에 콩 나듯 선호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는 어딘가 상당히 또라이같은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날 잘못 스와이프 했겠거니, 그냥 다 좋다고 스와이프하는 그런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판단이 우습게도 남자와의 대화는 꽤나 흥미로웠다. 

휴대전화를 잘 확인하지 않는지 느린 답장 텀도 편안했고, 예의가 묻어나오는 담백한 말투도 좋았다. 

그렇게 이틀 정도 연락을 주고 받은 후, 우리는 돌아오는 주말에 저녁 약속을 잡았다. 

저녁 약속을 잡은 후에도 루즈하지만 즐거운, 평탄한 일상 대화를 이어 나갔다.




며칠이 지나 마침내 토요일. 약속 장소는 이태원역이었다.

나의 루트는 버스에서 지하철 환승을 하는 경로였는데, 

도로가 생각보다 막히게 되어 약속 시간에서 대략 10분 정도 늦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시간 강박이 심했던 나였기에, 미안하지만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기대감보다는 짜증과 긴장감이 가득했다.


긴장감, 미안함, 짜증, 약간의 목적지 없는 분노가 뒤섞인 채로 이태원역에 도착했다. 

그는 이미 도착해 있다고 메세지를 보내왔다. 

뒤늦게 찾아온 설레이는 긴장감에 출구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약간 망설이다, 

늦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급하게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그리고 ‘그’가 보였다.



경로상으로 그 남자 또한 지하철로 도착했을 텐데, 

나를 기다리다가 무료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지 출구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었다.


사진보다 조금 더 차가워 보이네. 

모델 같은 느낌이다. 

머리가 엄청 작구나.


마르고 호리호리한 체형에, 건강하게 탄 듯한 피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경썼다는 느낌이 가득한 모습.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음,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게 생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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