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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영 Nov 20. 2024

영원(2)

                                                               

    1.     


    1580 세계로 가는 전철이 곧 출발합니다. 

    지정 좌석에 착석해 주세요.     


    진이 전철에 올라타자, 안내 방송과 함께 그의 고유 번호(@631212)가 적힌 좌석에 불이 들어왔다. 진은 알록달록한 좌석들을 지나쳐 가장 붉고 어두운 불빛이 깜빡이는 곳에 털썩 앉았다. 그러자 옆자리 소민이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진, 잘 다녀왔어요? 별일 없었죠?”

    “아… 네. 소민 씨, 일찍 오셨네요.”

    언제나 그렇듯 진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소민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아진과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덧 1,579번의 같은 듯 다른 세계를 함께 경험한 스무 명의 참가자는 이미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서로를 대했다. 그래서 전철은 늘 적당히 소란스러웠고, 딱 그만큼 다정했다. 

    이곳의 유일한 이방인인 진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달려가는 전철에 몸을 맡겼다. 우수한 승차감을 지닌 전철이었으나 다른 세계로 넘어갈 때 발생하는 약간의 메스꺼움만은 어찌할 수 없었던 듯했다. 진은 이게 당최 적응되지 않았다.     







    진은 언젠가 평행 세계 실험에 자원했다. 현 세계와 평행선상에 위치한 세계가 여럿 있다는 사실은 꽤 오래전에 밝혀졌으나, 다른 세계로 넘어가려는 시도는 빈번히 실패하는 듯했다. 다른 세계로 출발한 자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두 자취를 감춰버렸으니. 이를 두고 사람들은 ‘평행 세계에서 또 다른 자신을 마주쳐서 소멸해 버린 것이다.’, ‘돌아오는 방법을 몰라서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 ‘그쪽 세계가 더 좋아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 이런저런 그럴듯한 가설들만 내놓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미국의 존 웰스(John Wells) 박사가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실험에 성공했다. 박사는 다른 모든 세계에 존재하는 자신의 자아를 소멸시킨 뒤, 온전히 하나의 자아만 남기면 다른 세계를 넘나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존 웰스 박사는 자신을 기꺼이 실험체로 삼았고, 현 세계의 자아만을 남긴 채 모든 자아를 소멸시켰다. 이로써 단 하나의 영원불변한 존재가 되어 다른 차원의 세계를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간간이 이쪽 세계로 자신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모습 그대로 늙지 않고 벌써 백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으니, 사람들은 종종 그를 신처럼 추앙하기도 했다. 

    박사가 이 세계를 떠난 뒤 우리나라 정부도 평행 세계 관련 프로젝트를 몇 번이나 기획했으나 별 진척이 없었다.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방법은 찾았으나 돌아오는 방법은 알지 못했고, 다른 세계를 탐구한다고 해서 현 세계에 주는 큰 이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진행할 의지도 없었다. 지도자들은 비가시적인 것에 가치를 투자하는 일에는 늘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일 년 전, 잘 운영되던 항공 철도 V-8호선이 돌연 통째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랜 시간 그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하자 학자들은 V-8이 다른 세계로 넘어간 것이 틀림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역시 본격적인 평행 세계 관련 연구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늘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나 움직였다.     


    진은 공사장의 로봇 관리 사무실에서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오래된 사무실 스크린에서 나왔던 진행자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드디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하죠?”

    “네, 일명 <영원 프로젝트>라 칭하는 대규모 평행 세계 탐구 프로젝트가 약 일 년 간의 준비 기간을 마치고 드디어 베일을 벗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항공 철도 V-8 호선을 찾는 거죠?”

    “네, 일 년 전 이맘때쯤 사라진 V-8 호선을 우선하여 찾고요. 그 외에도 다수의 참가자를 모집하여 여러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내일부터 전국 단위로 참가자를 모집한다고 하는데요. 먼저 어떤 연구들이 진행되는지 정확한 설명을 듣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전문가를 모셨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사무실에 달랑 하나 있던 오래된 스크린 속 방송 영역은 항상 온라인 상태였는데, 그날따라 왜 이렇게 소리가 잘 들렸을까? 그리고 게시판 영역에 ‘영원 프로젝트 참가자 모집 공고’는 대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알고 띄워 놓았을까?                                                               





    선발된 자들은 현 세계(영원 프로젝트에서는 ‘0 세계’라 칭한다)에서 떠나와 평행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중앙 본부에서 요구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고 했다. 연구 기간은 돌아갈 방법이 개발될 때까지. 그러니까 평생을 프로젝트에 헌신할 각오가 필요하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미국의 성공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원 프로젝트는 좀처럼 진행에 속도를 붙이지 못했다. 문제는 낮은 지원율이었는데,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한국과학기술원 조승민 박사는 이렇게 분석했다.

    “핵심은 바로 삶 없는 영원, 자아 없는 영원에 있습니다. 실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현 세계의 삶’과 ‘다른 세계의 자아’를 모두, 완전히 포기해야 하니까요. 현 세계의 삶을 포기하는 것은 이때까지 이룬 자아를 포기하는 것과 같고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순간 그 어떤 세계에 속할 수도, 새로운 자아를 가질 수도 없습니다. 과연 인간이 자아 없이 영원히 사는 일이 가능할까요?”

    0 세계에서 떠나오는 순간, 0 세계를 제외한 모든 세계에 존재하는 자신은 사라지게 된다. 심지어 0 세계로 돌아갈 수도 없다. 다차원의 세계를 영원히 떠돌아다니는 하나의,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원히 존재하지만, 영원히 존재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정착하지 못하고 영원히 산다는 것, 그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진이 실험에 자원하고, 심사를 통과하고, 0 세계를 떠나는 일련의 과정은 마치 그래야만 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사실 진은 실험이 정확하게 무엇을 위해, 어떤 경위로 실시되는지도 몰랐다. 그저 어떤 단 하나의 가능성에 매달렸다. 어차피 지옥과 다를 바 없는 현 세계? 알지도 못하는 또 다른 나의 자아? 알 게 뭐야. 죽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는 3년 전에 이미 한 번 죽었었으니까.


    진이 무언가에 홀린 듯 1차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2차 면접 서버에 접속했을 때 서른 남짓한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간절한지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 사람 얼굴을 딱 한 번만 더 봤으면 좋겠습니다. 볼 수만 있다면 제가 뭘 못 하겠습니까? 다른 세계에는 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데.”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릅니다. 저는 지난 10년 동안 작은 연구소에 머물면서 이런 큰 세계를 꿈꿔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지원자들은 누군가를 한 번만 더 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표하거나, 자신이 얼마나 이 프로젝트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관한 소명 의식과 포부를 밝혔다. 심지어 영생에 대한 은근한 기대를 드러내는 자도 있었다. 역시 딱 한 사람, 진을 빼고. 뭐라고 했더라. 말을 하기는 했던가? 면접장을 나오면서 ‘아, 떨어지려나’ 따위를 생각했던 것도 같은데. 늘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면접이 끝나고 이틀 만에 진은 합격 통보를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뒤에 출발할 예정이니 주변을 모두 정리하라는 지시와 함께. 진은 내가? 대체 왜?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지만, 그것도 합격이라고, 기뻤다. 사실 그는 이 세계에 더 이상 정리할 것이 없었으므로 빠르게 출발하면 할수록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래서 선발되었을지도. 가진 것도 아쉬움도 욕심도 그 무엇도 없는 사람이라서.

    그렇게 그는 다른 세계에 있는 ‘전 진’들과 모두 작별을 고하고 미련 없이 0 세계를 떠나왔다.      






    어느덧 1580번째 전철 위, 진은 익숙하게 눈앞에 스크린 화면을 떠올렸다. 1580번의 여정을 거치며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2035년에 개발된 ‘스크린’만큼은 아직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스크린은 핸드폰, 컴퓨터 등 모든 통신기기의 대체제로 개인용 스크린과 업무용 스크린, 총 두 종류가 있었다, 개인용 스크린은 인간에게 내장되었고 업무용 스크린은 회사와 같은 건물 중심부에 설치었으며, 스크린 아이디는 개인과 기업을 식별하는 데 사용되었다. 스크린이 등장함으로써 모든 증명서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스크린의 고유한 아이디로 개인이나 기업과 통신(‘드랍’이라고 한다.)할 수 있었으며 원하면 눈앞에 화면을 띄워 조작하거나 정보를 검색, 저장, 재생할 수 있었다. 

    특히 개인용 스크린은 소유자에게만 보이고 들렸으므로 소유자와 다를 바가 없었고, 소유자가 받아들이는 모든 정보를 저장할 수 있었다. 처음 등장했을 때, 누군가는 이것을 혁명이라 칭송했고, 누군가는 이것 때문에 인간의 뇌가 서서히 퇴보할 것이라 비판했으며, 누군가는 스크린 자체가 진보의 상징인지 퇴보의 상징인지 알 수 없다고도 했다. 

    이처럼 스크린은 소유자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순간을 영상화하여 저장했다. 이를 날짜, 인물, 장소 등 다양한 카테고리별로 추출하여 재생시킬 수도 있었지만, 법에 따른 제재로 인하여 소유자가 그것을 열람할 수는 없었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죽은 자였다. 고인의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지인은 고인과의 기억을 추출하여 재생할 수 있었다. 물론 까다로운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기는 했지만. 

    스크린의 복원 메뉴에서 고인의 이름을 누르면 소유자가 바라봤던 그 사람의 모든 모습이 날짜별로 뜨고, 특정 날짜를 누르면 그날 인물과 공유했던 모든 순간이 재생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행동과 말을 되풀이한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그와 매일 만나지만 아무것도 나누지 못한다. 항상 만날 수 있지만 영원히 만날 수 없다. 이게 과연 행복한 일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진은 형이 죽고 난 다음 해에 바로 신청서를 냈지만 승인받지 못했다. 계속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3년 동안 반려 당했다. 

    아이디 센터의 스크린 복원과 담당자는 끝끝내 화를 내곤 했다.

    “아니, 전진 씨. 이렇게 계속 오셔도 소용없어요. 본인과 전찬 씨는 가족이 아니잖아요. 가족만 신청 가능하다니까요.”

    진은 매번 돌아서야만 했다. 우리는 가족인데, 형과 자신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아무것도 증명해 주지 못했으므로. 

    하지만 끝끝내 신청서가 승인되었다. 바로 진이 프로젝트를 떠나기 직전에. 어차피 현 세계를 떠날 운명이라 진이 어떤 기억을 떠올리든 상관없었을 테니 그랬을 것이다.

    진은 떠오른 스크린 화면에서 복원 버튼을 누르고 단 하나의 목록인 “전찬”를 클릭했다. 복원된 영상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내가 형을 본 게, 우리가 대화한 게 고작 이게 전부라니. 더 많이 볼 걸, 더 많이 이야기할걸. 이미 지겹도록 재생한 형의 모습이지만 그건 진이 유일하게 들고 온 0 세계의 추억이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익숙한 형의 모습이 진의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나 밉고 그리운.

    전철 안의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고 진은 눈을 감았다. 그러면 똑같은 영상이 반복된다. 보육 로봇 하나가 다정(多情) 센터 앞 상황을 살펴보러 나온다. 로봇은 유치원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그러다 아이의 손을 놓고 센터 앞에 버려져 울고 있는 자신을 품에 안는다. 로봇은 진을 계속 스캔하지만 실패한다. 그 아이에게 스크린 아이디는 물론 유전자 정보나 연구소 아이디와 같은 디지털 각인도, 그 흔한 ‘잘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따위의 메모조차 없었을 테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아이의 새로운 보금자리, 다정 센터는 복제 연구나 유전자 배양에 실패한 아이들을 기르는 보육센터 중 하나였다. 하지만 센터에는 연구소에서 공식적으로 위탁하는 아이들보다 진처럼 센터 앞에 버려진 아이가 더 많았다. 보육센터는 늘 윤리 문제로 논란이 되었으나 도통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화제가 되면 될수록 오히려 더 많은 아이가 센터 앞으로 버려질 뿐이었다.

    다정 센터에서는 이름이 없는 아이들에게 모두 온전하고, 무사히 자라라는 의미에서 전(全)이라는 성을 붙여줬다. 버려진 아이는 버려진 그날 ‘전진(全眞)’이 되었다. 

    센터는 이렇듯 온정적인 양육 방침을 표방했지만, 양육 방식은 그러하지 못했다. 보육 로봇들은 아이들에게 교육과 연구를 빌미로 싸움 붙이거나 고문을 했고, 명령에 순응하지 않으면 때렸다. 버려진 아이들은 스크린 아이디를 발급받지 못했으므로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진은 세상에 있지만 없는 삶을 살았다. 고문을 참지 못하면 맞았고 늘 두려움에 잠식되었다. 이 모든 것이 진정 22세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센터장은 우리를 때리면서 재워주고, 입혀주고, 먹여줬으면 제발 이름값을 하라고, 사람이 되라고 했다. 사람? 서로 때리고, 무엇이든 참아야만 하는 그런 게 온전하고 무사한 사람이라면, 정말이지 진은, 자라는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도 진은 자신이 ‘진짜 사람’으로 자랐다고 믿었다. ‘진짜 어른’을 만났으니까. 진에게 유일한 어른이었던 찬(澯)은 그보다 다섯 살 많은 형이었다. 찬은 공부를 잘했고, 센터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린 동생을 늘 데리고 다녔다. 진이 한창 싸우고 다닐 때도, 학교에서 환각초를 태우다 걸렸을 때도, 부모님이나 센터 소속원 대신 찬이 찾아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진이 형입니다. 저랑 따로 얘기하세요.”

    “센터 출신이 형은 무슨. 어른 데리고 와. 거기 센터에 보호자도 없어?”

    “얘가 나쁜 애는 아닌데, 제가 친형이나 다름없거든요. 정말. 저는 저기 옆에 청설고등학교 다니거든요. 여기 학교 스크린 아이디로 연락해 주시면…”

    “아니, 거기 보육원은 왜 그렇게 드랍을 안 받아? 바빠 죽겠는데… 다음에도 어른 대신 애만 보내면 찾아간다고 전해라.”

    “네네. 제가 잘 말씀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스크린 아이디도 없는 학생은 학교에서 유령과 다름이 없었다. 교사들은 진처럼 센터 출신 학생들을 최소한의 의무감으로 지도했다. 진이 혼날 때마다 찬은 아무것도 아닌 동생을 위해서 거듭 죄송하다고 했다. 자기가 뭐라고. 그러고는 아무리 뒤로 감춰도 떨림이 숨겨지지 않는, 잘게 떨리는 동생의 손을 붙잡고 함께 센터로 돌아갔다. 찬은 진이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아무 말 없이 그저 안아 줬다. 욕하고, 다그치고, 때리는 것보다 그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불쌍해서 그랬던 것도 같다. 그때는 그냥 무엇보다 작고 어린애가 너무 안쓰러웠을 것이다. 꼭 지난날의 저를 보는 것 같아서. 

    진은 형 앞에서만 펑펑 울었다. 저를 지키려 주변을 할퀴던 애가 그저 아이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보육 로봇이나 센터 직원에게 맞거나 애들이 놀릴 때도 울지 않을 수 있었는데, 형이 안아 주면 꼭 울게 됐다. 

    우리는 센터에서 가장 많이 맞는 문제아였지만 그것은 진에게 저들과 우리가 같지 않다는 방증이 되어주기도 했다. 형이 그게 옳다고 해서 괜찮았다. 전찬은 전진에게 그 누구보다도 어른이 되어주었다. 진은 우리가 부모를 몰라서 형과 같은 성을 가졌다는 사실. 그게 좋았다. 우리가 온전히 같은 성을 가졌다는 것이, 정말이지 가족 같아서.      






    센터는 잊을 만하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시설이라고 했다. 이 사업을 시작하고 발전시킨 자들은 짐승만도 못한 새끼들이라며 모두가 손가락질하며 욕했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마침내 센터에서 아이들이 서로를 때리게 되었을 때, 아이들은 짐승만도 못한 새끼가 어쩌면, 아주 어쩌면, 우리는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상황이 인간을 그토록 작게 만들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아이들을 구하고자 찾아오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입양을 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진은 그게 싫었다. 형이 그럴 때마다 자신을 보내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굴었으니까. 센터 직원에게, 그리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저를 떠밀며 우리 진이가 얼마나 착하고 성실한지에 관해 계속, 계속 이야기했다. 특히 자신이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는 제발 좀 가라고 화를 내더니 결국 빌기까지 했다. 내년에 성인이 되면 찬은 센터를 나가야 했으니까, 동생이 혼자 여기 남을 것을 걱정해서 분명 그랬을 것이다. 진은 그럴수록 더 많이 사고를 쳤다. 환각초에 중독되어 거리를 전전하며, 학교를 무단으로 결석하고, 끊임없이 누군가와 싸우며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아이인지 보여주려고 애썼다. 입양 가기 싫다고 온몸으로 소리치는 일, 어차피 엉망진창인 인생에서 진이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야, 그렇게 가고 싶으면 형 너나 가. 나는 가족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형은 이미 입양이 안 돼. 나이가 너무 많잖아. 너는 갈 수 있다는데 대체 왜 그래?”     


    진은 그럴 때마다 울음을 참으며 생각했다. 거짓말. 형은 분명 입양 1순위다. 형은 이미 어른스럽고, 착하고, 똑똑하다. 아니, 모든 것을 제쳐두고 형은 그저 천성이 좋은 사람이라 어느 집에 가도 사랑받았을 것이다. 잘 어울렸을 것이다. 형이 떠나지 못하는 것은 온전히 나 때문이다. 나는 형에게 짐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형을 보내지 못하는 것은….

    찬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원금 한 푼 받지 못하고 쫓겨나던 날, 진은 무작정 형을 따라 센터를 몰래 나왔다. 어차피 진은 센터 운영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사고만 일삼는 아이였으므로 굳이 잡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다정한 형은 애처롭게 울면서 매달리는, 갈 곳 없는 아이를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형제는 곧바로 국가 아이디 센터에 찾아가 스크린 칩을 삽입하고 아이디를 만들었다. 마침내 살아도 되는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국가 지원금을 받을 때 조금씩 떼서 모아두었던 돈을 모조리 털어 간신히 S-107 구역의 캡슐방 한 칸을 구했다. 

    진은 그 집에 입주하던 날 환각초를 모두 버리며 했던 다짐을 떠올렸다. 뭐든 잘될 것만 같았다. 이제 우리만 남았으니까.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정말이지 애를 썼으나, 점점 가난해지기만 했다. 애초에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정직하게 살면 살수록 나아지는 것 없이 더 나빠지기만 했다. 나는 주로 그곳에 있었고, 형은 오랫동안 밖에서 일하다 가끔 들어와서 쉬었다. 같이 산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을 함께했다. 나는 학교를 계속 다녔고, 형은, 우리 형은…. 그게 형을 갉아먹는 줄도 모르고.     


   




    1580 세계 8구역에 도착했습니다. 

    코드 번호 @631212는 전철에서 내려 개인별 임무를 확인한 뒤 수행해 주세요. 

    금일 보고 마감 시간은 Q 타임입니다.     


    진이 전철에서 내리자 1580번째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연구 초기와 비교해 보았을 때 주변 풍경이 확연하게 바뀐 것은 분명했으나 시간이 정확히 얼마나 흘렀는지는 몰랐다. 연구자들에게는 모든 세계의 날짜가 흐릿하게 보였다. 우리는 그저 하루를 A-Z 타임으로 나누어 생활했다. 사라진 V-8호선 탐색에는 가장 많은 인원이 배정되었으나 진척 없었다. 그동안 본부에서 얼마나 많은 담당자 변경이 있었을지, 우리의 연구 결과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우리는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GPS를 확인해 보니 0 세계의 서울, 혜화역과 같은 위치인 듯했다. 진은 함께 떠오른 스크린에서 빠르게 임무를 스캔했다. 그의 주요 업무는 ‘범죄자 추적’, 말 그대로 0 세계 범죄자들의 또 다른 존재를 찾아 범죄 유무, 특성, 공통점, 차이점 따위를 분석하는 일이었다. 중앙 본부는 ‘범죄자들이 지닌 자아가 본질적으로 악한 성향을 지니고 있는가?’,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순수 악이 진정 존재하는가?’, 그런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을 궁금해했다. 

    오늘 찾아야 할 사람은 박아희, 최강하, 안선아로 총 3명. 모두 0 세계에서 중대 범죄자들이었다. 물론 진에게는 모두 구면이었고.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인간은 본디 타고난 성질이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게 아니라면 기구한 삶이 끈질긴 필연일지도 모른다고. 어느 쪽이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삶에 저항하려고 하면 꼭 죽었다. 이 범죄자들도 그럴 것이다. 그게 이 연구가 진에게 알려준 전부였다.

    GPS에서 박아희의 위치가 깜빡거렸다. 어느 초등학교 근처. 

    “하……”

    도시의 소음에 불쑥 진의 한숨이 끼어들었다. 진은 매번 되뇌었다. 우리는 다른 세계에 개입할 권리가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매번 누군가가 처참하게 망가지는 현장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 악한 범죄가 개입될수록, 또 약하거나 어린 자가 끼어 있을수록 업무의 피로도는 높아졌다. 진은 GPS가 깜빡이는 초등학교 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임무를 마치고 신식 오피스텔로 위장한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진은 털썩 주저앉았다. 무척이나 긴 하루였다. 특히 마지막 마약사범 안선아는 어린 학생이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피로했다. 

    ‘안선아는 대체 무슨 경위로 그 병원에 갔을까?’

    ‘그 의사는 왜 그렇게 약을 많이 처방해 줬을까?’

    ‘안선아가 약을 들고 갔던 지하도, 거기 있던 사람들 전부 학생 같았지?’

    ‘걔들은 왜 나한테 약을 주지 않았을까? 그렇게나 약이 많았는데…. 왜 나보고 가라고 했지?’

    ‘형, 대체 왜 나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감정은 정말이지 면역이 안 되는 듯했다. 진은 이토록 오래 살았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매일 같이 무너지고 아파하는 자신이 어이없었다. 몸이 자라지 않아서 더 이상 마음도 자라지 않는 것일까, 감정을 가라앉히며 크게 심호흡했다. 아주 한참이 지난 후에야 틈틈이 적어 두었던 특이 사항들을 메인 스크린 위로 복사할 수 있었다. 진은 스크린 화면을 빤히 쳐다보다가 조금 다듬은 뒤 전송 버튼을 눌렀다.          


    자료가 정상 업로드되었습니다. 

    새로운 임무는 H 타임에 업데이트됩니다.          


    진은 소파에 파묻혀 업무용 인물 추적기를 다시 켠 뒤 형의 위치를 검색했다. 여전히 검색되는 사람이 없었다. 연구가 진행된 뒤 백여 번 정도는 형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든 세계의 형이 죽어버린 건지 더 이상 검색되지 않았다. 

    진은 형이 있을 때는 보통 하루 임무를 완수하고 나면, 남은 시간 동안 추적기에 형의 아이디를 검색해서 그 주위를 맴돌고는 했다. 형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가난했다. 그래도 그들은 성실했으며, 여전히 좋은 어른이었다. 진짜를 파는 사람은, 그게 뭔지는 몰라도,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은 0 세계의 형과는 다르게 진, 그러니까 나를 전부 잃었을 테니까. 그거면 됐다고.

    처음에는 벅차오르는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형에게 말을 걸어 보기도 했다. 다정한 형은 저에게 늘 잘해줬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하나의 세계를 떠나는 즉시 그 세계에서 모든 흔적이 사라지기 때문에 진은 매번 형과 작별해야 했다. 그러니까 만난 적도 없는 것처럼. 몇 번의 작별을 겪은 뒤 밀려오는 상실감이 견딜 수 없이 버거웠다. 어차피 아무것도 바꿔서는 안 되고, 바꿀 수도 없다. 나는 변함없는데 형은 자꾸만, 또 자꾸만 늙어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먼발치에서 형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게 과연 만족이었을까, 회피였을까.

그래서 진의 스크린에는 형이 백 명 정도 살고 있었다. 0 세계의 형을 제외하고 다른 형을 재생시킬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 어떤 형도 삭제하지 못했다. 다른 세계의 형은 놓치지 말아야지. 내가 먼저 놓지 말아야지. 그래봤자 저는 어떤 세계에도 개입할 수 없는 이방인의 신분이었지만.     






    다음날 진은 일어나서 한참 뒤에야 미적거리며 업무 창을 확인했다. 천기현, 백한 총 2명. 여전히 봤지만 보지 못한, 알지만 알 수 없는 사람들. 시드 볼트에서 일하는 자들이다. 진은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하고서야 밖을 나설 수 있었다.     






    시트 볼트는 찬의 직장이었다. 형제가 캡슐방으로 들어간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찬은 시드 볼트 전염병 연구소의 방역 담당으로 취직했다. 모두가 기피하는 업무였지만, 시드볼트에서 고졸인 찬이 담당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밖에 없었다. 진은 알 수 있었다. 형은 매일 연구소 직원들에게 무시를 당했을 것이고, 방역업무는 밤낮이 없었으므로 잠도 편히 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찬은 늘 시드볼트에서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희망을 위해 일하는 것이, 희망을 지켜내는 일이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냐고 했다. 진은 형이 자랑스러웠다. 

    그런 찬은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시드볼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진은 그런 형을 보며 자신을 원망했다. 형은 지독한 가난 때문에,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결국 형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래, 내가 다 망친 것이다. 형을.     


    캡슐이 인공 구름에 부딪혀 모든 것이 물에 잠기던 그 어떤 날에 진은 저도 일하겠다고 했다. 어차피 둘 다 망한 인생, 같이 벌자고 했다. 우리는 빚이 너무 많았고, 어차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진은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리고 형과 함께 일하려고 했다. 하지만 찬은 진을 단 한 번도 시드 볼트로 데리고 가지 않았다. 언제부터 형에게 시트 볼트가 사랑스럽지 않은 일터가 되었을까. 찬은 늘 당부했다.     


    “진아, 너는 네 이름처럼 살아. 형처럼 살지 말고.”     


    형제 사이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생겼다. 진은 형이 꽤 오랫동안 집을 비우면 배달 로봇 감시, 공동 캡슐 청소 등 일용직 근무자가 되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찬은 어느 순간부터 진이 일하는 것을 막지 못했고, 진도 찬이 시드볼트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았다. 알고자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을 테지만, 진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진짜를 파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될까 봐 무서웠으니까.     


    그러니까 형, 대체 진짜가 뭔데?     


    형을 만나면 물어봐야 하는데, 이제 진짜 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진은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누군가의 스크린 드랍을 받고 허겁지겁 달려갔던, 형의 일터였는지 대체 왜 형이 거기에서 그러고 있었는지 모를 그 사무실에서 느꼈던 상실감. 잊을 수가 없다. 나뒹구는 진액 병과 주사기, 그릇 따위의 파편들과 흩뿌려진 알약, 약초 잎사귀 그리고 그것보다 더 처참히 일그러져 쓰러진 사람들. 그 속에 섞여 있는 잔뜩 망가진 형의 모습을 봤을 때, 나는 어떤 기분이었더라. 유전자 복제는 고사하고 장례를 치를 돈도 없어서 형을 허망하게 떠나보냈을 때는? 그 뒤에 형 없이 홀로 보낸 시간은?     


    죄는 말이 없는 자에게만 쌓이고, 또 쌓여서 시간이 흐를수록 찬은 죄로 뒤덮여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럼에도 시드볼트는 망하지 않았다. 진은 조소했다. 형이 희망을 결국 지켜낸 것이다. 자신을 바쳐서까지.

    찬은 그게 억울했다. 형이 얼마나 선하고 여리고 다정한 사람인지, 그런 것은 오직 저만 알아서. 그래서 자신이 아무리 소리치고 울부짖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형을 떠나보내고 나니 우리는 철저하게 남이었으니까. 형을 갉아먹으면서 자란 저는 형의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전찬과 전진은 가족이었는데, 사람들에게는 같은 센터 출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늘 미래를 함께 그렸던 공범이었으나 그것을 증명할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형, 너는 꿈이 있어?”

    “그럼 있지. 너 독립하는 거.”

    “그게 무슨 꿈이야. 나 버리려고 그러지?”

    “야, 너는 무슨 말이 그래? 나는 네가 나를 좀 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형을, 형도 나를 버리지 못했다. 세상이 먼저 형을, 아니 우리를 버렸으니까. 전찬이 추락했을 때, 전진도 처참히 무너졌다. 어차피 0 세계에 우리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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